제2부 모로코의 쿠리야(Korean) - 06. 모로코 전통 결혼식
모로코에 도착한 후 두 달 동안은 수도인 라바트(Rabat)에서 동기들과 함께 지내며, 홈스테이 및 현지어 학습을 통해 현지에 적응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렇게 현지훈련을 마친 후에는 각자의 임지로 파견되고, 2년 동안 살게 될 집을 구하고, 지역사람들을 만나고, 기관 사람들과 함께 각자의 자리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다. 이제 진짜 해외봉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2010년 6월 24일, 드디어 2년간 지내게 될 임지 티플렛(Tiflet)으로 떠났다.
티플렛(Tiflet)은 모로코의 수도 라바트(Rabat)에서 그랑택시(도시 간을 이동하는 6인용 택시)를 타고 가면 한 시간쯤(60km) 걸리는 작은 마을이다. 인구 7만 명의 티플렛(Tiflet)은 마을의 끝에서 반대편 끝까지 걸어가는데 고작 30~40분정도가 걸릴 만큼 작다.
모로코 전통시장인 ‘쑥’이 이 마을의 유일한 시장이며, 마을 내에는 버스도 없고, 대부분이 당나귀를 타고 다니거나 걸어 다닌다. 쁘띠 택시(3인용의 작은 택시)가 있긴 하지만 마을이 작기 때문에 미터기도 없고, 모든 지역을 고정가격 5DH(750원)에 이용할 수 있다. 또한 길거리를 지나가면 아는 사람을 거의 다 만날 수 있을 정도로 수도 라바트(Rabat)와는 달리 조용하고 아늑한 시골마을이다.
이곳에서 난 현지적응 훈련기간 중 2주간 또다시 홈스테이를 하면서 집도 구하고, 일하게 될 기관에 가서 인사도 하고, 동네를 돌며 지역을 파악하며 지냈다. 이번 홈스테이는 여성들을 위한 협의회 임원들의 가정에서 하게 되었다.
이들은 지역 유지들이며 모두 50세가 훌쩍 넘긴 나이로 퇴직을 하고 매일 반복되는 무료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이때 마침 내가 홈스테이를 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 난 홈스테이 아주머니들뿐만 아니라 협의회 임원들의 친구들에게까지 현지어인 데리자(Derija)를 쫑알쫑알 거리는 한국에서 온 장난감이 되었다.
한국에서 온 장난감에 아주머니들은 모두 신이 나서 매일매일 서로의 집에 초대하며 푸짐한 음식들을 차려주고, 커피숍을 데려가고, 친척집에 데려가고, 신발을 사주고, 친구들에게 소개하느라 분주했다.
안타깝게도 모두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 모든 일들이 진행됐다.
이렇게 난 티플렛(Tiflet)에 오자마자 티플렛(Tiflet) 아주머니들의 친구이자 장난감이 되어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가끔은 저녁을 밤늦게 먹는 모로코 문화에 따라 자정이 되어서 또다시 밥을 먹어야 했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 소개를 현지어로 계속해야 했으며, 수많은 사람들과 비즈(입으로 소리 내며 양쪽 볼에 하는 볼 인사)를 하며, 얼굴에 근육이 저릴 때까지 방긋방긋 웃어야 했다.
그래도 지역 유지분들인 아주머니들 덕분에 난 소화가 될 시간도 없이 풍족하게 먹고, 이곳저곳 지역 행사에 초대받는 등 넘치는 사랑을 받으며 지냈다. 티플렛(Tiflet)에 온 후 한 달 동안은 거의 아주머니들과 아침, 점심, 저녁을 함께 먹으며 지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주머니들과 함께 시장도 가면서 티플렛(Tilfet) 구석구석을 구경하고다니던 어느 날이었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아주머니들과 마을 끝자락에 있는 경치 좋은 커피숍에서 커피한잔을 하고 있는데, 아주머니들을 알아본 지역 관리인들이 인사를 하러 다가왔다. 무스타파라는 아저씨는 티플렛(Tiflet) 구청에서 근무하시는 분이셨고, 그 외 이름 모를 의사, 경찰관, 공무원 등의 또 다른 티플렛(Tiflet) 유명 인사들도 많이 만났다. 모두들 여성 협의회의 임원인 아주머니들과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인 듯 했다.
늘 그렇듯이 새로운 사람을 소개받을 때마다 아주머니들은 나를 데리자(Derija)를 한다고 소개해주었고, 그들은 동양인이 서툴게 자신들의 말을 하는 게 신기한지 나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쏟아 부었다. 사실 현지훈련 때 일상생활의 대화위주로 배웠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었던 말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저 자기소개와 가족소개, 앞으로의 계획, ~하고 싶다. 맛있다, 기분 좋다 등의 간단한 말만 할 수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나의 짧은 데리자(Derija)가 아저씨와 아주머니들에겐 충분히 신기하고 즐거운 일인 듯 했다. 마치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외국인이 시골마을에서 시골 어르신들에게 둘러싸여 ‘잘한다. 잘해.’ 박수 받으며 한국말을 서툴게 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물론 피곤할 때도 있었지만 사람들 만나기를 좋아하는 성격이라 하루하루 잊지 못할 시트콤을 찍으며, 아주머니와 아저씨들과의 대화를 즐기곤 했다.
커피숍에서 티플렛(Tiflet) 유명 인사들을 만나다 보니, 우연히 전 티플렛(Tiflet) 시장 딸의 결혼식에까지 초대 받게 되었다. 난 그저 ‘초대해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말할 뿐이었지만, 협의회 임원 분들은 시장 결혼식에 초대받은 것 자체가 영광이며 매우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하면서 나에게도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사실 난 임원 분 중에 한 명인 나자트(Najat) 아주머니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던 중이었기 때문에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저 아주머니들을 따라 결혼식에 참석하게 되어 있었는데도 말이다.
며칠이 지났을까 어느덧 결혼식 당일이 되었다. 모로코의 결혼식은 보통 밤 9시에서 10시 사이에 시작되는데, 아주머니들은 이른 아침부터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하고, 결혼식 때 입을 모로코 전통의상 카프탄을 세탁소에 맡기고, 옆 마을에 가서 시장님에게 줄 비싼 선물까지 사오는 등 정신없이 바쁘셨다.
저녁 6시가 되자 아주머니들 모두 한 집에 모여 꽃단장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는데 난 그저 이런 모습들이 신기해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던 중 스미샤 아주머니는 나 또한 *카프탄을 입어야 한다며, 당신 딸이 어렸을 때 입었던 카프탄을 가져다주셨다.
나를 생각해주는 스미샤 아주머니의 마음이 고마웠지만 옷을 입는 순간 벗어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왜냐하면 모로코 여자들은 보통 매우 통통한 체격이라서 작은 체구인 나에겐 그 옷이 엄청나게 컸던 것이다. 아무리 이리저리 옷에 핀을 꼽고, 예쁘게 꾸며보아도 내 몸에는 너무나 큰 카프탄이었다. 그래서 난 필사적으로 이 옷 대신 내 옷 중 가장 예쁜 옷을 입고 가겠다고 했지만 아주머니들은 완강하셨다.
사실 한국에서 옷을 많이 가져오지 않았던 나는 모로코 전통시장인 *메디나에서 샀던 핑크색 *튜니크를 입고 가려고 했었다. 하지만 아주머니들은 결혼식, 그것도 전 시장님 딸의 결혼식에는 예의를 갖춰야 하기 때문에 일상복인 튜니크를 입고 갈 수 없다며 반드시 카프탄을 입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하여 나는 차마 거울을 보기 부끄러울 정도로 너무나도 큰 카프탄에 아주머니의 높은 굽 신발까지 신고, 아주머니들의 장식품을 팔과 목에 주렁주렁 달고서야 시장님 딸 결혼식에 가게 되었다. 나는 너무나 부끄러웠지만 나를 꾸며놓고 아주머니들이 얼마나 만족해했었는지를 생각하면 내 부끄러움이 이상하다 싶을 정도였다.
어쨌든 밤 9시가 되어서 아주머니들과 나는 시장님 딸의 결혼식장으로 갔다.
모로코의 전통의상은 '질레바, 카프탄, 튜니크'가 있다.
*질레바 : 끝이 뾰족한 모자가 달린 옷으로 사계절, 남녀 모두 평상시에 입고 다니는 모로코 평상복이다.
*튜니크 : 웃옷과 바지로 만들어진 일상복이다.
*카프탄 : 결혼식이나 특별한 행사 때 있는 전통 옷이다.
*메디나 : 모로코의 옛 시가지로 한국의 인사동과 남대문처럼 모로코의 전통의상 및 신발, 장식품을 파는 곳
보통 일반 가정에서는 신랑 집 옥상을 꾸며놓고, 가족 친지들과 조촐하게 결혼식을 한다. 하지만 내가 처음 가게 된 모로코 결혼식은 티플렛(Tiflet)의 전 시장님 딸의 결혼식이 아니던가. 역시나 마을 끝에 위치한 공터에 어마어마하게 큰 결혼식장이 차려져 있었다.
커다란 원형으로 세워진 천막 입구에는 바닥에 카펫이 깔려 있어 마치 영화배우들이 레드카펫을 밟고 들어가는 분위기를 연출했고, 그 옆으로는 작은 불빛을 내는 전구들이 길을 밝혀 축제의 분위기를 더했다. 그뿐만 아니라 손님이 올 때마다 하객들의 ‘인증샷’을 찍기라도 하듯 커다란 카메라를 어깨에 멘 카메라맨이 연방 셔터를 눌러댔다.
안 그래도 어린애가 어른 옷 입고 온 듯 너무 큰 카프탄 때문에 부끄러운데, 카메라맨이 나타나자 나는 얼른 아주머니들 뒤로 숨어 카메라에 안 찍히려고 요리조리 피해 다녔다. 그렇게 레드카펫을 밟고 들어서자 이번에는 모로코 전통 악단이 하얀 전통의상을 입고 전통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결혼식장 내부에는 수십 개의 원형 탁자들이 세팅되어 있었고, 검은색 양복을 빼입은 현대의상 악단도 연주를 하고 있었다. 아주머니들과 한 테이블에 앉아서 주변을 살펴보니 곳곳에 설치된 모니터를 통해 카메라맨이 찍고 있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어 ‘이거정말 보통 결혼식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모로코 친구와 함께 일반 가정의 결혼식을 가고 나서야 이날의 결혼식이 얼마나 거대하고 웅장했었는지, 내가 이날 초대 받았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아주머니들과 결혼식장에 도착한 때는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우리가 도착한 9시 전부터 경쾌한 음악과 화려한 불빛들로 당장에라도 결혼식이 시작할 것 같았는데, 이게 웬걸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나도 하객들만 계속해서 들어올 뿐 결혼식은 시작되지 않았다.
슬슬 피곤함에 눈이 감겨오고, 나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하객들의 시선도 부담스러워졌지만 결혼식은 시작되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아주머니들에게 도대체 언제 시작 하냐고 물어보았지만, 조금만 더 기다리라는 답변만 돌아올 뿐이었다.
그렇게 모로코 전통음악 소리에 귀가 멍멍해질 때쯤이었다. 결혼식장 입구 쪽으로 사람들의 시선이 몰리기 시작했다. 그때 시각이 12시 10분이었다. 안도의 마음과 함께 이제야 시작하는구나 싶어 사람들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바라보았다. 곱게 꽃단장을 한 신부가 가마를 타고 등장하고 있었다.
신부 앞에는 나를 초대해준 티플렛(Tiflet) 전 시장님과 신랑으로 보이는 남자가 있었다. 마침내 모로코 음악은 정점에 달하듯 점점 커지고, 하객들의 축하소리와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마치 연예인의 결혼식을 보는 듯 신랑 신부의 모습이 모니터를 통해 실시간 중계가 되었다.
하객들이 워낙 많은데다 가마를 탄 신부를 보조해주는 가마지기들과 악단까지 들어서니 그야말로 결혼식장이 터질 듯 꽉 찼다. 이렇게 악단의 연주와 하객들의 박수를 받으며 가마를 타고 등장한 신랑 신부는 높은 상단에 위치한 하얀 의자에 앉아 하객들을 향해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밤 12시에 드디어 결혼식이 시작된 것이다.
신랑 신부가 입장하자 목에 나비넥타이를 맨 청년들이 음식들을 서빙하기 시작했다. 하객들을 대접하는 음식 역시 가정형편과 비례하는데, 이날은 웅장하고 화려한 결혼식장만큼이나 대단한 음식들이 선보였다.
모로코의 내륙지방인 티플렛(Tiflet)에서는 해산물이 좀처럼 구하기 힘들어 값비싼 음식에 속했는데 이날의 첫 요리로 해산물세트가 나왔다. 게다가 연이어 들어온 이름 모를 커다란 생선 한 마리와 양고기, 후식으로 과일과 케이크까지 비싼 음식들이 줄지어 테이블에 올라왔다.
이렇게 계속해서 나오는 음식들을 동그란 테이블에 둘러앉아 먹고 먹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신랑 신부는 모로코 전통 의상에서 현대의상으로 갈아입고 다시 등장했다. 신랑 신부는 다시 하얀 의자에 앉고, 가족과 친지, 친구들의 사진촬영이 시작됐다. 하객들이 많은 만큼 사진촬영도 끝이 없었다.
이 사이 다른 하객들은 모두 준비된 음식들을 먹고는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때 하객들의 흥을 돋우는 녹색 옷을 입은 사람이 있었는데, 하객들 모두 그 사람에게 환호하기 시작했다. 내가 보기에는 그냥 모로코 아저씨인데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니 모로코에서 아주 유명한 가수란다. 뿐만 아니라 모로코 사람이면서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여자가수까지 등장해 그야말로 축제가 따로 없었다.
예쁘게 차려입은 하객들은 가수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엉덩이와 어깨를 흔들며 모로코 춤을 추기 시작했다. 정말 얼마나 흥이 났는지 좀 전까지 점잖게 밥을 먹던 사람들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모두가 어깨를 들썩이며 춤을 추고 있었다. 우리 아주머니들 역시 신이 나서 춤추는 무리와 함께 한두 시간 가량을 흔들었다. 아주머니들의 성화에 나도 춤을 출 뻔했지만 내 몸보다 두 배나 큰 카프탄을 입고는 도저히 출 수가 없어 신기한 광경을 멀리서 구경만 할 뿐이었다.
그렇게 먹고, 춤추고, 노래하기를 몇 시간 동안 반복하고도 어느덧 신랑 신부와 하객들은 모두 하나가 되어서 또다시 춤을 추고 있었다. 정말 모두가 즐기는 결혼식 축제였다. 이렇게 춤추고 노래하던 결혼식은 12시에 시작하여 새벽 5시가 되어도 끝이 없었다.
사실 나는 눈은 뜨고 있었지만 이미 반쯤 잠들어 있었는데, 워낙 큰 소리의 모로코 음악이 끊임없이 흘러나왔기 때문에 편안히 졸수도 없었다. 이런 나의 상황을 아셨는지, 춤추다가 지치셨는지 신나게 춤추시던 아주머니들은 새벽 4시 반이 되어서야 아쉬움을 뒤로하고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결혼식 다음날은 아주머니들과 함께 밥도 먹지 않고 잠만 잤다. 처음부터 결혼식이 12시에 시작할 줄 알았으면 체력분배라도 할 것을, 그러지 못한 나는 모든 체력이 방전되어 버린 것이다.
이후 일반 가정의 결혼식에도 가게 되었는데, 결혼식의 규모가 크건 작건 동이 틀 때까지 모두 함께 먹고 춤추는 것은 똑같았다. 그만큼 모로코 사람들이 흥이 많기 때문에 별을 보며 춤추는 흥겨운 결혼식이 아닐까 싶다.
경건한 우리의 결혼식과는 달리 한바탕 춤사위를 벌이며 즐기는 모로코의 결혼식은 꼭 한번 경험해 볼 만한 모로코의 문화임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