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모로코의 우스떼다(Teacher) - 04. 부딪히고, 깨지고
7월 1일부터 9월 12일까지 기나긴 모로코의 여름 방학이 지나갔다. 그 기간 동안 나는 티플렛(Tiflet)에서 2년간 살 집을 구하고, 살림을 장만하며 모로코에 적응해가고 있었다. 그리고 9월 13일. 새 학기의 출발점 앞에 섰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한국의 자원봉사자를 공짜 노동력으로 생각하면서 과다한 업무량을 요구하는 유치원 원장의 태도가 새 학기가 되어서도 단 0.01%도 바뀌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내가 이곳에 온 KOICA 봉사단원 중 유아교육분야에 처음으로 파견되었기 때문에 원장은 해외 봉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런 그를 설득하기 위해 처음에는 영어로, 그다음에는 데리자(모로코식 아랍어)로 종이에 내 의견들을 써가며 손짓, 발짓까지 하면서 나의 활동 계획들과 KOICA의 역할을 설명했었다.
하지만 3개월이 지난 9월, 그 모든 것은 도돌이표가 되어 다시 반복해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게다가 영어를 하지 못하는 기관장은 이러한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일정과 업무에 관한 나의 의견은 유치원 원장 선에서 멈추었고, 기관장에게는 전혀 전달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3개월째 나의 의견과 생각을 무시한 채, 자신의 욕심에 의해 한 반의 아이들을 맡아 글자를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원장에게 나는 참을성에 한계를 느꼈다. 하지만 화를 내기보다는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했기에 꾹 참고 기관장에게 다음날 다시 미팅을 하자고 했다. 마땅히 상의할 상대도 없어 난 절정의 심리적 스트레스로 어떻게 할지 막막했다. 답답함과 억울함, 슬픔 등 모든 부정적인 감정이 나를 뒤흔들었다. 정말 너무나 답답하고 힘이 들어 그만 포기하고만 싶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어느 순간
‘그래, 좋아. 기관장은 지금의 상황을 모르니, 기관장을 충분히 설득시키자’
이렇게 마음먹고는 나의 의견을 담은 제안서를 작성하기로 했다. 먼저 한글로 그리고 다시 불어로. 두 달간 공부했던 불어 실력을 동원해 나의 상황과 KOICA의 입장,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들을 적어 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완성된 제안서.
제안서는 먼저 KOICA 사무소에 나의 입장과 상황을 설명하는데 사용되었고, 내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신 관리요원들의 적극적 도움으로 피드백을 얻어, 수요일 회의 때 기관장에게까지 전달되었다. 그리고 기관장과 유치원 원장과의 긴 회의 끝에 그 다음날 회의 때가 되어서야 난 기관장의 OK 사인을 받을 수 있었다.
길고 길었지만 결국 문제는 해결되었다. KOICA 사무소에서도, 현지 기관의 기관장도 사전을 뒤져가며 작성한 제안서를 보고 나의 노력과 나의 의견을 이해한 것이다. 그리고 나의 제안 또한 받아들여졌다. 힘들었던 만큼, 기쁨은 배가 되어 돌아왔다.
이렇게 정말 답이 없는 것처럼 답답하고, 화가 나고, 억울하고, 짜증나고 포기하고 싶은 상황에서 또다시 ‘노력하고, 상대방을 충분히 이해시키고, 배려하며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법’을 배웠다. 왜 늘 배움은 쓰라린 아픔과 함께 찾아오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이것이 나의 첫 번째 부딪힘과 깨짐이었다.
물론 그 뒤로도 서로 생각이 다른 기관장, 유치원 원장과 2년간 무수히 부딪혔지만, 이 첫 번째 경험이 나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하며 설득할 수 있는 약이 되어주었다. 너무나 힘들었지만 마치 예방주사처럼 나를 더 강하게 키워준 잊지 못할 첫 번째 미팅. 이 예방주사 덕분에 남은 기간 현지인 교사와의 갈등에도 오뚝이처럼 이겨낼 수 있었고, 그때마다 또 다른 방식으로 현지인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워나갈 수 있었다. 물론 그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아 죽을 것 같이 힘들어 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