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모로코의 우스떼다(Teacher) - 09. ‘백문이 불여일견'
모로코의 유치원 교사는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않고, 지역에서 불어를 할 수 있다는 이유로 추천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때문에 현지인 교사 및 유치원 원장은 유아교육의 중요성 및 교육방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 당연했다. 이를테면 유아의 발달단계의 이해와 이에 적합한 교육보다는 모든 연령의 아이들에게 일괄적인 주입식 글자 교육만을 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을 혼낼 때 손이나 막대기로 머리나 몸 등 아무데나 때리는 것이 교사들의 훈육방법이었다. 아이들의 인격과 의견의 존중은 당연히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심지어 이에 대한 문제의식도 없었다. 또한 예체능 교육의 필요성 및 중요성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였고, 교수법에 대한 교육도 필요한 상태였다.
한 달 한 달 현지인 교사들과 수업을 해나가면서 여러 가지 문제점을 발견한 나는 티플렛(Tiflet) 시민의 집의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사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학기 중간에 유치원 원장과 기관장과의 협의 하에 교사교육을 시도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기관에서는 교사교육의 필요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였고, 그저 지속적으로 KOICA 봉사단원이 파견 될 것이므로 봉사단원을 통한 예체능 교육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KOICA 봉사단원의 파견은 일시적인 수업에 그칠 뿐,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현지인 교사를 교육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교사교육을 위한 시간을 얻기에는 기관장과 유치원 원장의 의견이 너무나 확고했다. 이에 하는 수 없이 다음 학기를 기다리며 시간 나는 대로 현지인 교사의 교육방법에 대한 어려움을 질문 받고, 상황에 맞는 교수법을 설명해주는 방식으로 교사교육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3월 주말의 어느 날, 우연히 프랑스 영화 ‘코러스(Chorist)’를 보게 되었다. 영화 ‘코러스(Chorist)’는 2차 세계대전 직후 프랑스 작은 기숙사 학교에서 돌아갈 곳 없는 쓸쓸한 아이들에게 마티유 선생님이 교사로 부임해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통통한 체격의 마티유 선생님은 강한 체벌로 다스리는 교장에 맞서 아이들의 닫힌 마음을 열기 위해 포기했던 음악을 작곡하고,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친다. 점차 아이들의 하모니가 교내에 울려 퍼지면서, 문제아였던 모항주도 변하고, 토요일마다 하염없이 아빠를 기다리는 전쟁고아 페피노는 마티유 선생님에게 마음을 연다.
교사와 학생 간의 따뜻한 교감과 사랑이 담긴 영화 ‘코러스’. 영화 속 주인공 마티유 선생님이 천둥벌거숭이 같은 아이들과 고지식한 교장과의 의견 차이를 극복하고, 보수적인 학교에 적응해 나가는 모습이 마치 모로코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나의 모습 같았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보는 내내 마티유 선생님에게 공감되어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위로를 받기도 했다. 상처받고 외로워 더욱 어긋나는 아이들을 ‘음악’으로 따뜻하게 품었던 마티유 선생님. 그리고 마법처럼 변해간 아이들의 이야기가 내 가슴을 뜨겁게 울렸던 주말이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나는 이 영화를 기관의 아이들과 선생님들과 함께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 영화는 아직 아이들의 권리가 존중되지 않는 이곳에서 선생님들이 스스로에 대한 반성과 통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해줄 것이다. 또한 7개월째 동요를 가르치지만 음의 구분이 없어 소리만 크게 지르는 아이들에게 아름답게 노래 부르는 본보기로 이 영화는 적격이라고 생각했다.
이후 기관장을 설득하여 금요일 오후 3반 60명의 아이들과 3반의 선생님들, 유치원 원장, 기관장, 경비원까지 모두 초대하여 영화 ‘코러스(Chorist)’를 상영했다. 지금까지는 아이들을 위한 영화만 한 달에 한 번씩 보았었는데, 이날 처음으로 어른들과 아이들을 위한 영화를 상영한 것이다.
그렇게 모두 모여 한 시간 반의 영화를 본 후, 3명의 현지인 선생님들과 유치원 원장과 함께 영화 감상평을 나누었다. 유치원 원장과 3명의 선생님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의 노랫소리에 놀랐고, 주인공 마티유 선생님이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에 너무나 감동했단다. 또한 아이들을 때리고, 윽박지르던 영화 속 강압적인 교장의 모습이 자신들의 모습과 비슷하여 놀란 듯했다.
물론 영화를 보고 난 후 아무도 서로에게 아이들을 때리고 윽박지르던 교육방법이 나쁘다고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영화 ‘코러스’는 현지인 선생님들에게 올바른 교육방법에 대해 스스로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주었다. 이렇게 처음 이루어진 어른들을 위한 영화 상영, 그리고 서로의 감동을 나누고 스스로를 돌아보았던 우리들의 첫 교사교육이 끝이 났다. 그리고 영화의 감동에 젖어있는 아름다운 분위기를 깨는 유치원 원장의 한 마디.
“소피아 선생님도 우리 아이들에게 음악을 알려줘서
코러스처럼 합창을 하면 좋겠네요.
얘들아 따라 해봐 도~레~미~”
“하 하 하;;; *인샬라”
* 인샬라 : 하늘이 허락하면 그렇게 될 것이다. 라는뜻으로 이슬람에서 어떤 일의 결과는 '알라'에 뜻에 달려있다는 뜻으로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자주 쓰는 말이다.
도레미파의 음계도 구분이 안 되는 선생님과 아이들 그리고 음치인 나에게 합창이라니. 순간 돌처럼 굳어졌지만 어쨌든 첫 교사교육이자 어른들을 위한 첫 영화 상영은 훈훈하게 끝이 났다.
이날 이후 갑자기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다가 아름답게 노래를 부르게 된 것은 아니었고, 선생님들이 강압적인 교수법에서 온화한 교수법으로 바뀐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분명 교사들과 아이들 모두 조금씩 변화하고 있었다. 정말 백번 내가 이들을 말로 설득하는 것보다 한 번 보여 주는 것이 더 빠르다는 ‘백문이불여일견’이라는 진리를 깨달은 날이었다.
‘코러스’ 상영과 현지인 교사와의 교육방법 토론으로 이루어졌던 현지인 교사 교육은 작지만 많은 변화들을 이끌었다. 물론 함께 활동하는 현지인 교사 3명은 성격에 따라 수용정도에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모두들 교육방법에 대해 변화하려는 의지가 있었기에 조금씩 아이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아이들을 때리고 혼내는 대신 칭찬을 하면서 강압적이던 교수법에서 온화한 교수법으로 조금씩 변화하였다.
기적은 멀리 있지 않았다. 현지인 교사들의 작지만 조그만 교육방법의 변화와 그 변화에 보답하듯 변하는 아이들이 바로 기적이었으니 말이다.
“스위야~ 스위야~ ”
*스위야 : 모로코식 아랍어(데리자)로 ‘조금씩’ 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