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모로코의 우스떼다(Teacher) - 11. 고마워 얘들아 사랑해
아이들보다 마음을 빨리 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때 묻지 않은 순수함으로 2년 동안 수없이 나를 따뜻이 감싸 안아 주었던 60명의 아이들. 이 아이들 덕분에 난 2년간 수많은 난관과 속상함 속에서도 늘 행복한 꿈을 꿀 수 있었다. 그들과 함께여서 가슴 뛰는 설렘과 온몸에 퍼지는 전율을 느낄 수 있었고, 모든 것에 끝없이 감사할 수 있었다. 2년간 나를 시골마을 티플렛(Tiflet)의 행복한 선생님으로 살게 해준 60명의 내 사랑 꼬꼬마들. 그들과의 만남은 내겐 큰 축복이었다.
막내아들로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자라서 늘 울음과 떼가 많았던 5살 울보 쟁이, 수에드.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에 다가오지도 못하고 멀리서만 나를 바라보던 5살 아스메인. 똘똘하지만 새침때기여서 선생님이 없을 때면 아이들 앞에서 선생님 흉내를 내던 5살 꼬마 선생님, 히바.
조그마한 몸과 손으로 꼼꼼히 색칠하던 6살 꼬마 예술가, 헤비브. 예술적 재능이 뛰어나 늘 창의적인 대작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뚝딱 뚝딱 만들던 6살 재주꾼, 모하메드. 또래보다 한 뼘이나 큰 키로 또래의 어린 녀석들을 동생처럼 돌보던 어른스러운 6살 꼬마 엄마, 자하라. 똘똘해서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놓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마음이 급해 말을 더듬던, 6살 아민.
타고난 목청과 리듬감으로 깜짝 놀랄 노래 실력을 자랑하며 모든 행사의 독창을 거머쥔 7살 꼬마 싱어, 파떼이마. 가정형편이 어려워 겨울에도 맨발로 다니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해 늘 내 가슴 아프게 했던, 7살 아민. 운동신경이 뛰어나 고리 던지기 명수지만 수다쟁이라 수업시간마다 귓속말을 하던 7살 수다쟁이, 아야. 만화 속에서 튀어나온 인형 같은 외모와 새침한 성격으로 모든 남자아이들의 로망이었던, 7살 셀마. 늘 저 멀리서 환한 미소로 달려와 “선생님이 너무 좋아요.”라며 내 품에 안기고, 또래보다 늘 의젓한 모습으로 7살 여자아이들의 왕자님이었던, 떼떼까지.
60명의 아이들을 모두 소개하지는 못했지만, 한 명 한 명의 아이들이 내게 보여준 티 없이 맑고 순수한 눈동자들은 내 가슴에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작은 것 하나에도 환호하던 아이들의 환한 미소와 아이들과 내가 만들어갔던 작은 에피소드들 역시 내겐 값을 매길 수 없는 행복한 선물이다.
나에게 늘 감동을 주던 내 사랑 꼬꼬마들. 그들에게 받은 무한한 사랑 역시 잊지 못할 마음 속 선물 중에 하나다. 한 번은 신발이 낡아서 새로 산 샌들을 신고 간적이 있었다. 그 신발을 보더니 한 아이가
“선생님, 신발 샀어요? 예쁘게 신으세요.”
라며 모로코식 축하인사를 내게 건넸다. 갑작스런 그 아이의 축하인사에 “고마워. 잘 신을게.”라며 답을 했었는데, 이 모습을 보던 다른 아이들이 저마다 반짝거리는 눈을 내게 맞추며 “선생님, 예쁘게 신으세요.” 라며 축하인사를 건네는 게 아닌가. 시장에서 편하게 신으려고 고른 신발이기에 그리 예쁘고 비싼 신발도 아니었는데, 아이들은 마치 내 신발이 금신발이라도 되는 것처럼 축하를 해주어 내 발을 부끄럽게 만들었었다.
그리고 며칠 후, 어디선가 한 아이가 달려와서는
“선생님, 저 선생님하고 신발이 똑같아요.”
라며 자랑하듯 내 앞에 발을 내밀었다. 맙소사. 정말로 내 신발과 똑같은 모양의 샌들을 신고 있는 그 아이. 그러고는 자랑스럽게 친구들에게 신발을 자랑하며 “나 선생님하고 신발 똑같다.”라고 하는 게 아닌가. 얼굴에는 마치 천하를 얻은 듯 함박웃음을 띠고서는 말이다.
그저 시장에서 산 4,500원의 투박한 샌들이었는데, 아이들은 내가 선생님이라는 이유로 나의 투박하고 낡은 샌들마저 신데렐라의 유리 구두로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신발은 그저 시작에 불과했다. 60명의 관찰의 눈빛들은 나를 늘 주시하고 있었고, 내가 치마를 입고 간 날은 “선생님, 치마 예뻐요. 새로 샀어요? 예쁘게 잘 입으세요.”라고 하고, 바지를 입고 간 날에는 “선생님, 바지 예뻐요. 새로 샀어요? 예쁘게 잘 입으세요.”라며 나의 옷차림마다 늘 관심을 보이곤 했었다. 이렇게 아이들의 관심과 사랑을 한몸에 받은 덕분에 허름한 옷을 입더라도 새 옷을 입은 것처럼 기분이 좋아지곤 했었다.
매일 침이 가득 묻은 입으로 내 볼에 뽀뽀를 해서 계절이 바뀔 때면 내게 감기를 옮기는 주범이었지만, 늘 양팔 벌려 내게 달려와 안기는 아이들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이런 아이들의 순수한 마력은 수업 중간에 가슴 속에서부터 번져오는 짜릿한 전율을 느끼게 했다.
특히 어렵기만 했던 동요를 작은 손과 발을 열심히 움직여 율동을 하며 한 목소리로 따라 부르는 아이들을 볼 때면 온몸에 퍼지는 전율에 혼자 눈물을 글썽이곤 했었다.
늘 내가 주는 것보다 그 이상의 것을 보여주던 기적 같은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들. 아이들과 함께라면 매 순간순간이 행복하고 감사했다. 시간이 흘러 이 순간들이 추억이 된다고 해도 늘 내 가슴속에서 빛나고 있을 보석 같은 시간들을 난 영원히 기억하련다.
“낯선 이국땅 모로코에서 늘 나를 위로하고 날 아낌없이 사랑해주었던
나의 꼬꼬마들아. 정말 너무너무 고마워.
그리고 너무너무 사랑한다. 얘들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