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참는 아이 - 열 번째 발걸음
물건이 아닌 마음이 도착한 날,
그 상자를 열자 할머니의 따뜻한 손길과
할아버지의 정성이 함께 펼쳐졌습니다.
아이의 눈으로 본 사랑은,
과자의 포장지보다 부드럽고,
삼겹살보다 뜨겁고,
계란보다 더 단단했습니다.
오늘도 누군가는 말 대신
택배로 마음을 전합니다.
그 조용한 사랑의 소리를
작은 손이 껴안아 안녕이라고 말합니다.
# 10. 나는 참는 아이 - 열 번째 발걸음
[3/29] 사랑이 도착했습니다
[3월 29일, 금요일]
어제
할머니가 전화를 하셨다.
"윤현아, 내일 택배 보낼게!"
나는 바로 소리쳤다.
"택배! 택배!!!"
할머니는 자주 나한테 뭘 보내주신다.
나물도 보내시고,
계란도 보내시고,
삼겹살도 보내시고,
과자도 보내시고,
음료수도 보내신다.
근데 이상하다.
할머니는 항상 이렇게 말한다.
"고기 너무 많이 먹지 말고, 골고루 먹어야지~"
근데.. 택배에는 삼겹살이 있다.
과자도 있다. 음료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가끔 생각한다.
할머니 말은 진짜 말이 아니고,
택배가 진짜 말인 것 같다고.
할머니는 택배로 말하신다.
"윤현아, 니가 좋아하는 거 잔뜩 보낸다!"
그런 뜻이다. 나는 안다.
어젯밤에도 나는 계속 생각했다.
‘내일 택배! 내일 택배!’
학교 끝나고 집에 왔는데
택배가 안 와 있었다.
나는 현관 앞을 두 번 왔다 갔다 했다.
"왜 안 와...?"
좀 실망했다.
근데 조금 있다가,
띵동!
벨 소리가 났다.
나는 문 쪽으로 달려가서 소리쳤다.
"왔어! 왔어! 할머니 택배야!!"
엄마가 상자를 가져오셨다.
나는 바로 말했다.
"엄마! 빨리 열어줘! 지금! 지금!!!"
엄마가 손 씻고 온다고 해서
나는 계속 따라다녔다.
"빨리!! 빨리!!!"
엄마가 결국 상자를 열었다.
계란!
삼겹살!
나물!
과자!
음료수!
나는 과자 봉지를 껴안고 말했다.
"할머니 최고..."
말도 안 하고 그냥 껴안았다.
그 택배는 그냥 상자가 아니었다.
할머니의 마음 상자였다.
할머니가 보내주신 계란은
진짜 맛있다.
할아버지가 키운 닭이 낳은 계란이라서 그런 것 같다.
엄마가 계란후라이를 해주셨다.
고소한 맛이 났다.
나는 그 계란을 다 먹고 말했다.
"할아버지 계란 말고는 못 먹겠어."
나는 또 외친다.
"삼겹살!"
그러면
할머니는 말씀하신다.
"고기 너무 많이 먹으면 안 돼. 채소도 먹어야지~"
근데 오늘 택배에도
또 삼겹살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과자도 있고,
음료수도 있었다.
나는 안다.
할머니는 ‘안 돼’라고 하지만,
택배로 ‘그래, 먹어’라고 하신다.
할머니는 말보다 택배로 마음을 보여주신다.
할머니한테
"사랑해요!"
하고 말하고 싶었지만,
나는 과자를 하나 더 꺼냈다.
입은 과자를 먹고,
마음은 할머니를 껴안았다.
오늘은 좋은 날이다.
할머니 택배가 온 날이니까.
그 상자에는
물건보다 더 많은 게 들어 있었다.
할머니의 마음,
할아버지의 사랑,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
나는 속으로 계속 말했다.
"할머니 최고."
"할아버지, 또 보내주세요."
"아니, 그냥.. 사랑해요."
윤현이는 종종 말한다.
"할머니가 세상에서 제일 예뻐요. 엄마보다 예뻐요."
그리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과자를 먹는다.
나는 그걸 들으며 잠깐 억울한 얼굴을 하다가도,
웃음이 난다.
윤현이는 할머니를 정말 좋아한다.
할머니가 택배를 보낸다고 하면
그 전날 밤부터 설레고,
학교에서 돌아와서 문 앞을 두 바퀴 돌고,
상자가 도착하면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친다.
"왔어! 할머니 택배야!"
그리고 상자를 열고,
과자를 껴안고,
"할머니 최고..."
속삭이듯 말한다.
윤현이는 말로 표현하는 데는 서툴지만,
좋아하는 사람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가장 예쁘다고 말해주고,
가장 맛있다고 말하고,
가장 최고라고 외친다.
오늘도 윤현이는 말한다.
"할아버지 계란 말고는 못 먹겠어."
그리고 삼겹살을 외친다.
할머니는 “고기 너무 먹지 마라~” 하시면서
삼겹살을 또 보내주신다.
윤현이는 그걸 안다.
말은 다르게 해도,
택배는 진심이니까.
그리고 나는,
그 진심 안에서
윤현이가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지를 본다.
윤현아,
고기 너무 많이 먹으면 안 돼.
채소도 먹어야 해.
골고루 먹어야지.
이건 맨날 하는 말이지?
근데 시장에 가면
나도 모르게 삼겹살부터 집어 든단다.
윤현이가 제일 좋아하니까.
삼겹살부터 사고,
계란도 꼭 챙긴단다.
우리 할아버지가 키운 닭이 낳은 거니까
윤현이가 “다른 건 맛없어서 못 먹겠어” 하니까…
과자도, 음료수도
하나 둘 고르다 보면
손수레가 금방 가득 찬단다.
"너무 많이 사지 말자."
속으로 말하면서도
계산할 때 보면
윤현이 좋아하는 것만 골라져 있어.
그리고 그걸 박스에 담고
테이프를 붙이고
주소를 쓰고 나면
내 마음이 거기 같이 들어간 것 같아.
윤현아,
할머니는 말은 이렇게 해도
니가 좋아하는 거 보내면서
제일 많이 웃고 있는 사람이야.
택배가 도착했다.
삼겹살, 계란, 과자, 음료수.
다 윤현이 거다.
진짜 하나도 안 나눠준다.
할머니가 보낸 과자...
과자 한 개쯤은 나 줘도 되지 않냐?
그건 꼭 혼자 다 먹더라.
그래도 네가 맛있게 먹으니까 됐다.
...근데 진짜,
과자 한 입만.
한 입 정도는 줄 수 있지 않니?
ADHD 아동은
상대 기분에 맞춰 말하기보다는
자신이 느낀 감정만 솔직하게 표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엄마보다 할머니가 더 예뻐요”라는 말도
진심으로 그렇게 느꼈기 때문에 나온 말입니다.
윤현이는 아직 '표현을 예쁘게' 하는 방법은 모르지만,
사랑이 마음에 가득 찼을 때,
그걸 꼭 꺼내놓고야 마는 아이다.
오늘도 택배 안에 담긴 마음을
윤현이는 몸으로, 말로, 과자로 꺼내 안았다.
그게 윤현이만의 “사랑합니다”라는 말이다.
오늘도 윤현이 이야기를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누군가의 마음 상자가
당신에게도 조용히 도착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안에는
따뜻한 마음이 가득 들어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