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도 달콤한 날이 있어요.

나는 참는 아이 - 열한 번째 발걸음

나는 참는 아이, 윤현이


조용히, 초콜릿 하나를 올려두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는 말 대신

달팽이 한 마리를 조심스럽게 그려 넣었습니다.


좋아하는 마음은 종종 서툴고,

혼자 있는 시간은 꼭 외로운 것만은 아니라고


오늘 아이는 아주 작은 행동으로 그런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조용히 번져나가는 아이의 진심에

오늘도 잠시 머물러주시면 좋겠습니다.



#11. 나는 참는 아이 - 열한 번째 이야기


[4월 1일 수요일]

오늘은 만우절이다. 모두 장난을 쳤다.
나도 장난을 해보고 싶었다.

선생님 책상에 초콜렛을 몰래 올려놨다.
쪽지도 썼다.

'선생님, 오늘은 쉬세요. 초콜렛은 윤현이가 드려요'

선생님이 웃었다.
나를 바라보고 말했다.
"윤현아, 고마워. 정말 달콤했어."

나는 초콜렛을 먹지도 않았는데,
하루 종일 달콤했다.



[4월 3일 금요일]

체육 시간에 달리기를 했다.
나는 좀 느리다.

약을 먹으면 몸이 무거운 느낌이 든다.
그래도 열심히 뛰었다.

뒤에서 어떤 애가 웃으면서
"달팽이다!" 말했다.

나는 참고 또 참으려 했는데
눈물이 났다.

교실에 돌아와 그림을 그렸다.
나는 달팽이를 그렸다.

등에 별을 얹은 달팽이.
느리지만 반짝이는 달팽이.
나는 그 달팽이가 좋다.

나 같아서.



[4월 5일 일요일]

일기장을 꺼내고 의자에 앉았다.
오늘은 아무 일도 없었다.

아무 일도 없는데 그냥 좋았다.
그런 날도 있는 것 같다.

기침도 조금 덜 나왔다.
약을 바꿔서 그런가? 좋아진 걸까? 잘 모르겠다.

난 아직도 혼자 있는 게 무서울 때가 많다.
근데 오늘은 혼자인 게 그렇게 무섭진 않았다.

이런 날은 안 참아도 돼서 좋다.


엄마의 노트


윤현이는 초콜릿을 건넸고, 그림을 그렸고,
일기를 썼다.
그 하루들이 특별하진 않았지만,
아이는 그 안에서 자기만의 감정을 잘 건넸다.

‘오늘은 쉬세요’라는 말 안에,
아이는 자기를 잘 바라보는 어른에게
기꺼이 마음을 내어주는 아이였다.

‘달팽이’라고 놀림을 받아도
윤현이는 화를 내기보다 종이에 달팽이를 그렸다.
등에 별을 얹은 달팽이.
윤현이가 좋아하는 달팽이다.
느리지만 반짝이는 모습이 자기 같다고 했다.

일요일엔 혼자 있는 게 괜찮았다고 했다.
기침도 줄었고, 마음도 조금 덜 불편했다고 했다.
참지 않아도 되는 날이었다.

그런 날도 있다는 걸 알아가는 윤현이를 보며
나도 조금 안심이 됐다.


아빠의 노트


회사 일 때문에 요즘 정신이 없다.
그래서 이건 그냥 짧게 쓴다.

윤현이가 킨더 초콜릿을 먹을 때
“ 하나만” 해도 소용없다.
나는 이미 여러 번 실패했다.

그러니까 다음엔 아빠 책상에 하나만 올려줘.
진짜 하나만.

아빠는 이만 다시
윤현이가 좋아하는 치킨값 벌러 가볼게.

# 아빠가 진짜 하나만 바란다
# 사실 킨더 초콜릿 몰래 한 개 먹어봄
# 왜 아빠만 안 주나요
# 윤현이 눈치 없다
# 치킨값은 오늘도 아빠가



ADHD 아동은 감정을 직접 말로 표현하기보다,
그림이나 상징을 통해 마음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윤현이처럼 ‘달팽이’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건
자기감정을 정리하려는 자연스러운 방식이며,
비언어적 회복력의 한 형태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이의 마음은 언제나 조용히 다가옵니다.
크게 말하지 않아도, 꼭 설명하지 않아도요.

오늘 저는 아이의 마음을
초콜릿 하나와,
달팽이 한 마리 안에서 발견했습니다.



《나는 참는 아이》는
앞으로도, 한 편씩 조용히 인사드립니다.
당신이 조용히 기다려주는 그 시간 속에서,
윤현이는 자기 속도로 천천히 다가오고 있어요.
그걸 알아주는 마음이,
아이에겐 가장 따뜻한 발자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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