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30일, 릭의 근황
#릭의근황 #긴글
0.
먼저 이전에 올린 포스팅에 생각보다 많은 분들께서 걱정을 해주시고 격려의 말씀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아프고 나서 며칠은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가 조금 회복이 될 무렵, 새해 같이 할 프로젝트들로 기존에 이야기를 진행시키던 분들과 가까운 지인분들께는 소식을 알려야 할 것 같아 겸사겸사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 가볍게 포스팅한 것인데 정말 많은 분들이 응원해주셔서 좋았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1.
하루하루 조금씩 나아져서 지금 현재의 몸 상태는 거의 정상입니다. 어제는 반나절 외출도 잠깐 다녀왔어요. 급성 췌장염으로 분명 처음엔 제대로 허리도 펴지 못하고 반죽음 상태로 실려왔는데 지금은 멀쩡하니 좀 신기하네요. 제가 사고나 큰 병으로 입원을 한 적이 이번이 처음이라 더 그런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담낭(쓸개)제거수술만 남았습니다. 수술은 내일 목요일로 잡혔구요. 네, 이제 공식적으로 "쓸개 빠진 놈"이 되기 직전인 상황인 거죠. 속담 속에서만 있던 인물이 제가 된다고 하니까 뭔가 기분이 묘하네요. (웃음)
급성 췌장염의 원인은 크게 2가지인데요. 하나는 술이고, 다른 하나는 담석이랍니다. 저의 경우에는 이런저런 검사를 해보니 담낭의 기능이 거의 0%랍니다. 사실상 죽은 상태인 거죠. 다행히 담도에는 담석이 발견되지 않아서 담낭만 제거하면 된다고 합니다. 다행히 담낭수술은 맹장수술 다음으로 간단한 수술이라고 하네요. 그리고 담낭이 없어도 소화기능에는 큰 영향은 없다고 합니다. 물론 멀쩡할 때에 비하면 자극적인 음식과 너무 기름진 것은 피하는 것이 좋겠죠. 특히 술은 이제 거의 못 마신다고 보면 됩니다.
연초부터 이렇게 강제명령 같이 '바른생활습관'을 가지게 되는 것도 나쁘진 않네요.
2.
몸 상태가 많이 회복되어서 어제는 의사의 허가를 받아서 오래간만에 바깥으로 외출을 했습니다. 이런저런 밀린 볼일과 일 관련으로 연락 못 드린 분들에게 연락도 드리고 난 후, 그동안 간호로 고생한 아내 회사로 깜짝 서프라이즈 픽업을 했어요. 맛있는 한정식에서 같이 저녁도 먹었습니다. 그동안의 보상과 앞으로 다가올 수술에 대한 미리 보상이랄까요. 그리고 오랜만에 집에서 오붓하게 같이 영화 보다가 밤에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네요.
잃어봐야 소중한 것을 안다는 말을 그냥 머리로만 알고 있었는데 직접 당해보니 많이 다르더라구요. 그동안 당연하게만 여겼던 것들이 소중한 것이었음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3.
급성 췌장염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어요. 그저 체했나 정도의 거북함에서 배를 찢는 고통까지 떨어지는 것은 순식간이더군요. 정말 어쩔 줄 모르겠더라구요.
새벽에 방바닥에서 끙끙거리며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 이상하게 생각하고 눈을 뜬 아내 덕분에 병원 응급실에 제 때 올 수 있었습니다. 저의 두 가지 행운은 1) 결혼하여 옆에 아내가 있었다는 것과 2) 집 바로 근처에 대형 종합병원이 있었다는 것이었어요.
누구나 고통 속에서는 별의별 생각이 들기 마련이라고 합니다.
제가 고통 속에서 생각한 것은 2012년 눈 앞에서 직접 목격한 친척분의 죽음 이후 스스로 가장 많이 던진 질문이었어요. (참고 링크 : My self funding shop 마셀펀 스토리)
"내가 지금 죽는다면, 뭐가 제일 아쉬울까?"
당시에는 몸이 묶인 회사원이었기 때문에 떠오른 아이디어나 생각들을 '다음에 해야지'라는 생각으로 잔뜩 적어두기만 했었을 때라, 만일 내가 지금 죽는다면 내가 가진 그런 아이디어 중 무엇 하나 시도하거나 밖으로 꺼내보지 못하고 죽는 것이 너무 아깝게 느껴졌어요.
그런데 이번 고통 속에서 던진 같은 질문에서는 놀랍게도 몇 년 전 그때만큼의 아쉬움은 없더군요. 그 뒤로 회사라는 기차에서 나와 좌충우돌 크고 작은 실수도 많이 했고 아직 밖으로 내보이지 못한 내 안에만 있는 것들도 많이 있지만, 나름 지난 몇 년간 많은 시도를 직접 했고 그때와 비교하면 내 밖으로 내보인 것들이 많이 있었으니까요.
또, 최근에 준비하고 있는 내 생각에 만들어지면 많은 사람들에게 유용하게 쓰일 것에 대한 아이디어도 이미 나와 함께 하는 동료들과 많이 공유해둔 상태이니 뭐... 내가 없더라도 나름 뒤를 이어주겠지라는 생각을 하니, 신기하게도 옛날에 같은 질문을 던졌을 때처럼 억울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갑자기 옆에서 걱정하는 아내의 얼굴을 보니 '아... 맞다. 나 결혼하고 1년도 안되었는데...'라는 생각과 함께 갑자기 엄청나게 억울해지더라구요. (웃음) 그러고 보니, 집에서 병원까지 고통 속에 끙끙대며 실려오는 그 짧은 시간에 참 별 생각을 다 했군요.
4.
아직 수술 하나 남았지만, 평소 생각하지 못했던 교훈을 얻었다는 점에서 나름 나쁘지 않은 2019년 첫출발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짜 나를 움직이는 것은 내가 인식하는 나보다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내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최근에 하고 있는데, 이번 일로 더 확신하게 되었어요. 음.. 비유하자면, 마치 왕과 국민의 관계랄까요? 말하고 이끄는 것은 왕이지만, 그 말을 국민이 따라주지 않으면 다 소용없는 것처럼요.
그런 의미에서 전 상당한 '독재자'였을지도 모르겠네요. 나를 돌보는 것에 너무 무심했으니까요. 저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닝겐'이라 나중에는 또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겠습니다만, 이제부터는 말은 못 하지만 진짜 나를 움직이는 인식하지 못하는 나에게 좀 더 귀 기울이고 더 잘해줘야겠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건강 챙기겠다는 뜻입니다)
5.
마지막으로 여러분이 참고하실 만한 제 경험에서의 가벼운 조언입니다.
'몸의 낌새가 이상하다고 느끼시면, 일단 병원에서 검진을 받으세요.'
돌이켜보면 저도 분명히 몸 상태가 이상하다는 낌새는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볍게 생각하고 몸의 신호를 무시했었죠. 단순히 운동이 부족한가 보다. 이젠 나이가 들었나? 라며 제가 그것을 똑바로 마주하지 않았기에 병원을 가는 것도 자꾸 미뤘던 것이죠.
자주 체하고, 더부룩하고, 가끔 식은땀 흘릴 정도로 급체를 하는 등의 소화 기능이 떨어진 게 스스로도 느껴질 상황이시라면 먼저 병원에서 상세한 검사를 받아보시실 권합니다. 보통 '위'를 먼저 의심하시는데, 저처럼 췌장이나 담낭의 문제일 수도 있답니다.
f.
이상입니다. 쓰다 보니 좀 길어졌네요.
그럼, 수술 잘하고, 회복 잘하고 돌아오겠습니다.
쓸개 빠진 저라도 환영해주세요. (웃음)
감사합니다.
:
2019년 1월 30일 아침
* 본 글은 제 개인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올린 글을 공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