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릭킴 Rickkim Mar 01. 2020

'워보이'와 '신천지'

삶의 의미와 목적은 누군가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1.

어제 브런치에 오랜만에 올린 최근의 코로나19와 신천지와 관련된 생각들을 정리하며 제일 먼저 떠올랐던 이미지는 영화 <매드맥스4>에서 나왔던 ‘워보이’들이었다. 


(영화를 안 분들을 위해 짤막하게 배경 설명을 하자면) 핵전쟁 이후 모든 것이 황폐화되고 몇 안 되는 생존자들이 서로를 잡아먹는 아포칼립스 세계를 배경으로 ‘임모탄’이라고 하는 보스를 섬기고 떠받들며 그를 위해 싸움과 약탈을 하며 충성하는 젊은 청년들이 바로 ‘워보이’다. 


영화에서는 핵심 이야기의 몰입을 위해 자세히 언급되진 않지만, 스토리 속 ’임모탄’이 만들어 놓은 규율이나 사후 세계에 대한 약속, 그에 따른 종교의례와 같은 행동들을 엿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조폭 두목이라기보다는 컬트 종교의 ‘교주’에 훨씬 가깝다.


2.

영화 속 주인공 일행을 추격하는 ‘워보이’ 들을 보며 난 단순한 악역으로의 혐오감보다 애잔함을 더 많이 느꼈다.


미래가 불확실한 엉망진창인 세상 속에서 방사능으로 인한 선천적 돌연변이 질환으로 단명할 수밖에 없는 잔혹한 운명을 지니고 태어난 소년들에게 살아있는 동안 서로 의지할 수 있는 동료들을 주었고 나를 믿고 싸우다 죽으면 ‘발할라’라고 할 수 있는 천국으로 갈 수 있다는 “삶의 의미와 목적”을 준 임모탄을 따르는 ‘워보이’들. 


흰색 상의와 검은색 바지를 입고 체육관 바닥에 바둑판처럼 정렬하여 엎드려 구원받기 위한 144,000명 안에 들기 위한 시험을 진지하게 보는 영상 속의 그들은 ‘워보이’들과 많이 닮아있었다.


그들을 보며 여러 생각들을 자문해보았다.


“ 애초에 내가 믿고 있는 진실이 거짓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 나는 또 다른 ‘워보이’가 아니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 진실 속에 무기력하게 살다가 죽는 것이 더 좋은 것일까? 거짓일지 몰라도 무언가를 위해 살고 있다는 착각 속에 죽는 것이 더 좋은 것일까? 


워보이 Warboy 3/4(Blue) ⓒRickkim 2020.0229


3.

영화는 ‘눅스’라는 워보이를 통해 조금이나마 그 질문들의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자신에게 ‘삶의 의미와 목적’을 줬던 임모탄을 존경하고 맹목적으로 따르던 그였지만, 주인공 일행과의 만남을 통해 그가 믿고 있던 삶의 의미와 목적이 그저 주어진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영화 말미에는 자기가 직접 ‘자신만의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아낸다.


우리는 오류가 많고 완전하지 않다. 내 말이 진짜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상황 속에서 누구를 믿어야 할지도 모를 수도 있다. 내가 지금 믿고 있는 어떤 것이 진실인지 가짜인지 어쩌면 평생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어떤 것을 믿을지 말지를 직접 선택할 수는 자유는 아직 남아있지 있지 않을까? 


자신의 삶의 의미와 목적은 누군가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찾아야 한다. 물론 그것이 틀릴 수는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직접 선택한 것에는 누군가를 향한 원망과 후회가 남지 않는 법이다. 모두가 정답을 찾아 헤메는 시대에 일단은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

2020년 3월 1일 낮

#릭의어느날의생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