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 자유인들에게 고함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단순히 먹고사는 것만이 아니라, “삶의 목적과 의미”가 필요하다.
최근 코로나 상황 때문에 알게 된 신천지라는 종교에 2030 세대가 많이 빠져든 현상 이면에는 기존의 기성 종교와 철학들이 그들이 정신적 필요를 채워주지 못하는 것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신천지 현상은 결과가 아닌 원인을 봐야 한다.
삶의 목적과 의미를 자신이 아닌 외부의 누군가로부터 찾고자 했을 때 생길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지금 우리 모두가 목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나는 어떤가를 돌아보게 된다.
우리 모두는 태어나면 잠깐의 유년 시절을 포함하여 19년간 집과 학교라는 두 라인을 왔다 갔다 하며 달리는 ‘미성년 라이프’라는 고정된 트랙 위를 달린다.
어릴 때는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안전하고 튼튼한 성과 같았던 ‘집’이 사실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알았고, 삶의 정답을 알려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학교’와 선생님 또한 그렇게 든든한 조언자가 되지 못하다는 사실을 차츰 깨닫게 된다.
시간이 지나 졸업을 하고 성인이 되어 처음으로 트랙에서 벗어나 맞닥뜨린 ‘사회’라는 거대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광활한 필드를 달려야 하는 상황은 자유로움과 동시에 불안함과 막막함, 그리고 두려움을 안겨준다.
그런 상황에서 "넌 네가 원하는 어디든 갈 자유가 있다."라는 말은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 태어나서 지금껏 19년간 늘 정기적으로 연료를 주입받아오며 달려오던 사람에게 그 말은 곧, 이제 미성년 개런티가 끝났으니 지금부터는 각자가 알아서 연료를 구해서 달리라는 말과 같다.
그 말을 듣고 제일 먼저 드는 감정은 ‘이제 자유다!’ 라기보다 ‘이제 어떡하지?’에 훨씬 더 가깝다.
‘대학’이라는 추가 트랙에 진입하여 성년인 듯 성년 아닌 성년 같은 추가 개런티 기간을 더 할 수도 있지만, 고민의 마감 기한만 연기될 뿐 트랙이 아닌 필드에서 연료를 구하는 진짜 방법 따윈 학교에서는 거의 알려주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 ‘졸업’이라는 날은 오고, 길고 긴 ‘학교’라는 트랙에서 벗어난다.
다시 주위를 둘러본다. 똑같은 허허벌판이다. 고개를 돌리니 또 다른 새로운 길들이 나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드문드문 ‘주유소’들도 보인다. 그렇게 많은 이들처럼 ‘취업’이라고 하는 톨게이트를 지나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그 길을 다시 달리게 된다.
그렇게 그 길은 ‘직장’이라고 하는 나의 새로운 트랙이 된다.
내가 달리고 있는 직장이라고 하는 이 길의 끝에는 결국 주유소가 없는 지점이 올 것이라는 것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30마일마다 주유소가 보이는 안락한 이 길을 벗어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트랙에 따라 연료의 양이 넉넉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적어도 연료가 떨어져서 멈춰 설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정해진 길로만 그것도 일정 범위의 속도로만 달려야 한다 것이 가끔 답답하기도 하고, 같은 길을 달리는 다른 이들 때문에 힘들 때도 있지만, 주변을 둘러봐도 트랙의 종류만 다를 뿐 다들 나와 비슷하게 사는 것 같다고 느낀다. 그렇게 적응과 합리화를 거쳐 착각의 단계로 접어든다.
이게 바로 ‘인생’이구나, 생각보다 별게 없구나.
몇 년간 비슷한 날들이 이어진다. 이제는 이따금 한 손으로 운전하며 길 밖의 풍경을 볼 여유도 생긴다. 그곳에 갈 수는 없지만 잠깐 엿볼 수는 있다.
나보다 더 좋은 직장 트랙을 달리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길 밖 벌판을 달리며 고군분투하는 사람들도 보며 내가 저기에 없음을 안도하기도 한다. 개중에 자신만의 트랙을 만들어 멋지게 달리는 사람도 보이지만, 저 사람과 나는 애초에 타고 태어난 것이 다르다 라는 합리화로 쉽게 지금의 길의 안락함에 감사를 표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따금 불쑥불쑥 올라오는 불안과 두려움의 소리가 들린다.
이대로 정말 괜찮은 건가? 정말 이 길 외에 다른 길은 없을까? 혹시 내가 찾지 못한 것은 아닐까? 이렇게 길을 달리다가 ‘퇴직’이라고 하는 개런티 기한을 축하하는 여유 연료를 가득 받고 벌판으로 내려와 연료가 다하기 전까지 느긋하게 주변 풍경을 즐기며 서행하다 영원히 멈추는 것이 최선일까? 혹시 타의에 의해 개런티 기간이 오기 전에 길에서 벗어나 벌판을 달리게 된다면, 주유소가 없는 그곳에서 내가 혼자 연료를 구하며 잘 달릴 수 있을까?…
인생이라는 레이스의 중반을 지나면 내가 달리고 있는 길을 지탱하고 있는 ‘평온한 일상’이라는 판이 생각보다 훨씬 얇다는 사실을 막연하게나마 깨닫게 된다. 그저 평소엔 그걸 특별히 의식하지 않고 달릴 뿐이다. 내가 달릴 동안에 별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하지만, 내가 의식을 하건 하지 않건 그 사실은 변함이 없기 때문에 문득문득 찾아오는 불안은 어쩔 수 없다.
난 내가 볼 때 끝이 뻔한 길을 끝까지 달리고 싶지 않았기에 내가 달리던 직장의 트랙을 중도에 벗어나 벌판으로 내려왔고, 현재도 자유와 불안이라는 두 친구들을 나의 뒷자리에 태운 채 말 그대로 좌충우돌하며 고군분투 중이다. 그나마 위안이라고 하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벌판에서 달리는 것에 점차 익숙해진다 랄까.
옛날 내가 ‘미성년 라이프’를 벗어날 무렵 들었던 말을 다시 한번 곱씹어보았다.
넌 네가 원하는 어디든 갈 자유가 있다.
이 말은 정해진 트랙 위에 있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말이다. 지금이 이동의 자유가 없는 중세시대도 아니고 언제든 내가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다는 자유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월요일 아침 9시까지 회사를 가야 하는 삶을 사는 사람에게 "당신이 원하면 회사를 때려치우고 언제든지 훌쩍 떠날 수 있다."라고 말해주는 것만으론 그 사람의 화만 돋울 뿐이다.
아니, 누가 그걸 모르냐고?!
'원하는 어디든 갈 자유가 있다'는 말은 트랙을 벗어난 사람에게만 의미를 가진다. 내가 원하는 곳을 곳을 갈 수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선 정해진 트랙에서 벗어나 먼저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트랙을 벗어나 자유롭게 달리는 이 삶을 7년째 살고 있는 나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자유인으로 사는 것은 결코 만만치 않지만, 동시에 매력적이기도 하다.
내가 하기에 따라 연료가 풍족한 멋진 오아시스를 발견할 수도 있지만,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서 멈춰버릴 수도 있는 미정의 불안정한 삶. 하지만, “삶의 목적과 의미”가 주어지기만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적극적으로 그것을 찾아 헤매는 멋진 삶이기 때문이다.
최근 코로나19 확산 추이를 지켜보며 예상보다 이 상황이 장기간 이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벌써 2주 넘게 이어지는 이 상황으로 크고 작은 행사나 각종 모임들은 진작에 취소되거나 연기되었고, 외식업을 비롯한 자영업자나 오프라인 기반의 사업체를 운영하는 분들의 매출 하락폭은 생존의 위협을 받을 정도라고 한다.
이런 시기는 모든 사람들에게 어려운 시기지만, 특히 트랙 바깥을 달리는 자유인들에게는 심각함이 남다르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나는 지금 어떻게 해야 할까?" 자문해본다.
이런저런 조언들과 글들을 찾아보지만, 결국 이제껏 해왔던 대로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내가 걱정해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은 불필요한 불안감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냉정하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하나씩 해가는 수 밖에는 없다. 지금까지 늘 그랬던 것처럼 그 답은 내가 직접 찾아야 한다. 그게 바로 내가 선택한 "자유인의 삶"이니까.
아무리 어려운 시기도 언젠가 지나간다. 한국이 망할 것 같았던 IMF 같은 위기의 시기도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때를 어떻게 바라보고 준비했냐에 따라서는 오히려 전에 없던 새로운 기회로 이어지지 않았나.
부디 모든 자유인들이 꺾기지 않고 이 시기를 잘 넘을 수 있기를. 나와 같은 이 땅의 모든 “자유인”들에게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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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29일
코로나19가 한창인 한국에서
"신천지 60%가 20대"···청년들은 왜 신천지에 끌릴까
https://n.news.naver.com/article/025/0002979483?lfrom=facebook
'코로나19 이후' 노리는 PTSD… '공포'를 떨쳐라
http://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2/14/2020021400110.html
코로나 19, 그 이후의 온/오프라인 산업의 변화
https://brunch.co.kr/@curahee/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