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난 계절이 아니라, 내 안에서 계속 피어나는 시간
그날의 봄이 아직도 나를 부른다.
바람이 조금 따뜻해지기만 해도 어디선가 그날의 공기가 다시 흘러오는 것 같다. 햇살이 길어지는 오후, 꽃잎이 조용히 길 위에 내려앉을 때면 나는 가끔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본다. 아무도 없는 길인데도 누군가 나를 부르는 것만 같은 순간이 있다. 아마도 그건 사람이 아니라 시간일 것이다.
그날의 봄은 내가 처음으로 어떤 감정을 온전히 믿어 보았던 계절이었다.
꽃이 피는 속도를 보며 세상에는 이렇게 조용하게 시작되는 것들도 있구나, 그런 생각을 했던 날이었다. 그때의 나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살아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설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그날 이후로 나는 수많은 계절을 지나왔지만 봄이 올 때마다 마음 한쪽이 조금씩 흔들린다. 사람은 참 이상하다. 끝난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데 기억은 여전히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 골목도 그 벤치도 그날의 공기도 아마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변한 건 그 시간을 지나온 나뿐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 어떤 계절을 마음속에 하나씩 가지고 살아간다.
누군가에게는 여름이고 누군가에게는 겨울이겠지만 나에게는 언제나 그날의 봄이다. 사람을 잃기도 하고 사랑을 놓치기도 하고 때로는 이유 없이 울기도 하면서 나는 조금씩 어른이 되었고 조금씩 조용해졌다.
그래도 이상하게 봄이 오면 마음이 다시 살아난다.
아마도 그날의 봄이 아직도 내 안에서 끝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계절 속에 남는다. 그래서 가끔 꽃이 피는 길을 걸을 때면 나는 그 사람을 다시 만나기도 한다. 대화를 나누는 것도 아니고 손을 잡는 것도 아니지만 그저 같은 공기를 다시 한번 나누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조용해진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세상에 완전히 끝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사랑도 이별도 그리움도 모두 다른 모습으로 우리 안에 계속 살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봄을 좋아한다. 꽃이 피기 때문이 아니라 잊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다시 나를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날의 봄이 지금도 나를 부른다.
아주 멀리서 조용한 목소리로. 괜찮다고. 우리는 그때도 잘 살았고 지금도 잘 살아가고 있다고. 그래서 오늘도 나는 천천히 걸어간다. 어쩌면 또 다른 봄이 어디선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니까.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오늘의 내가 또 하나의 봄으로 남게 될지도 모르니까.
2026년 3월 4일 "오늘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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