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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레언니 Mar 09. 2023

인간은 한 치 앞을 못 본다.

나불거리는 입과 손가락을 어찌할 도리가 없구나

"나는 엄마처럼 실패한 결혼 하고 싶지 않아."


4.3kg의 아이를 낳은 스물다섯의 엄마가 쉰다섯이 된 그 해, 그녀에게 말했다. 엄마는 동정심에 결혼을 선택했노라 했다. 동정했던 남편은 가정에 관심이 없었다. 무능력했고 무기력했다. 아이의 분유값을 위해 억지로 내쫓겨간 공장에서 손가락 하나를 잃은 아이의 아빠는 그 원망을 자기 부인에게 쏟아냈다. 그렇게 10년을 오롯이 아이를 위해 버텼던 그녀는 결국 이별을 택했다. 100만 원을 겨우 들고 나와 온갖 일을 하며 아이를 지켰다. 무능력한 남편에게서 얻는 첫 아이였으며, 그녀가 품었던 세 아이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이였다. 그녀는 그 아이를 지켜야만 했다. 그래서였을까 그 아이의 아빠에게서 도망치듯 나온 2년 뒤 그녀는 아이에게 새로운 아빠를 만나게 해 주었다. 


그런 그녀에게, 다 커버린 아이는 실패한 결혼이었노라. 상처를 주었다. 새아빠, 엄마, 나는 단란한 가족이었지만 유년시절의 기억 때문이었는지 나에게 나의 가족을 꾸리는 일은 사치이며 두려움이었다. 시작하는 연애에 늘 지겨움이 느껴졌고 지속되지 못했으며, 애인 같은 건 혹, 남편 같은 건 내 삶의 걸림돌이라 생각하던 때였다. 나를 위한 꿈이 있었고, 나만을 살기에는 풍족했다. 예민함과 까칠함은 뒤에 숨기고 그저 되는 대로 즐기며 살던 때, 그를 만났다. 


처음은 쉬웠다. 시작이 쉽듯 끝도 쉬울 것이라 생각하며 그를 만났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시종일관 진지했고 나를 이해하려 했다. 밑도 끝도 없이 나를 이해하는 통에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그는 한결같이 내 숨겨왔던 예민함과 까칠함이 밀려올 때에도 그는 나를 이해했다. 


내가 틀렸을 때에도 기다려주고 믿어주고 미안해하는 그가 좋다. 다소 속도감 있는 관계의 전개과정이 나조차도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그와 있는 시간의 안정감과 평안함이 좋다. 죽으라면 죽는시늉도 할 줄 아는 그의 태도에 늘 감사하다. 내 주장을 펼치느라 늘 그의 이야기를 귀담지 못할 때도 기다려주는 그의 인내심이 나에게 필요하다. 


요즘 부쩍 닮았단 얘기를 듣는다. 같은 시간에 웃고 같은 곳을 바라본다. 다소 빠른 전개가 주변 사람들에게 당황스러울지 모르겠지만, 잘 살 수 있다 호언장담하기보다 재밌게 살아볼게 축복해 줄래? 하고 애교를 부려본다. 


남자가 결혼을 밀어붙이면, 여자도 모르는 사이 결혼준비를 하고 있다던데 아무래도 내 얘기인 듯하다. 







6년 전, 한 치 앞은 커녕 코 앞도 내다보지 못했던 내가 결혼을 한답시고 썼던 글이다. 망할 년. 달린 입이라고 나불거리기는. 이제와 후회하면 뭐 하나 싶지만, 구구절절 나불거리던 입은 결혼 생활 1년이 되지 않은 시점에서 그제야 나불거리기를 멈추었고 삶이 끝난 듯 초점을 잃은 눈이 되어버렸다.


역시나 앞으로 쓸 글들이 또다시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 내 후회가 될지언정 입만은 살아서 나불거리던 '나'로 돌아온 것에 대한 자축. '나'로 살아내지 못한 6년간의 반성. '내'가 되기 위해 되뇌는 삶의 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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