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레언니 Nov 29. 2023

삶은 개구리 증후군 (1)

 아무리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자국이 있다. 유난히 도드라져서 감추려 해도 감춰지지 않는 자국 말이다. 우리집에도 그런 자국이 있다. 가끔 우리집 공주가 “엄마, 왜 벽에 멍이 들었어?” 하고 묻곤 하는데 그럼 나는 대답 대신 씨익 웃고 만다. 공주는 대답이 듣고 싶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나를 바라보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해줄 수가 없다.


 벽에 멍이 들게 된 사건은 공주를 임신한 지 7주쯤 되었을 때 일어났다. 동호회에서 만나 결혼까지 한 우리 때문에 동호회 친구들은 이미 난리가 나 있었고, 게다가 내가 임신까지 했으니 겹경사라며 집들이를 독촉했다. 결국 3월의 첫 날이 집들이 날짜로 결정되었고, 꽤 많은 친구들이 집들이에 왔다. 평소에는 동호회 연습실에 갔을 때만 몇몇이 서로 얼굴을 볼 수 있었기에, 이렇게 다 같이 모이는 일이 흔하지 않아 왁자지껄 분위기가 좋았다. 


 밤이 깊어가자 하나둘씩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고, 남편과 친하게 지내던 친구 몇 명만 남게 되었다. 친구들이 사온 술을 거나하게 마셔서 기분이 좋았던 남편은 이미 취할 대로 취한 듯 보였지만 그에게 “취했어, 그만 마셔.”라는 말은 분노 상승 버튼을 누르는 것과도 같았기에 좋은 날 그 버튼을 굳이 누르고 싶진 않았다. 당시 나는 임신 7주쯤이었을 때라 늦은 시간까지 자리를 지키는 것이 꽤 힘들었고, 남편에게 뒷정리를 부탁하고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안방으로 들어가 잠이 든 뒤 얼마쯤 지났을까. 인기척이 없어서 다들 갔나 싶어 거실로 나갔더니, 친구 한 명이 대자로 뻗어 있었다. 그런데 다른 친구 한 명과 거실에 분명 있어야 할 남편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내가 원했던 대로 성실함을 갖춘 남자이긴 했다. 하지만 그 ‘성실함’에 꽂혀 간과한 것들이 너무 많았을지도 모르겠다. 한 부서에서 오래 근무했기 때문일까. 그의 업무 스트레스는 상당했고, 그는 그 스트레스를 술로 달래곤 했다. 가볍게 한두 잔만 마시고 들어간다던 것이 서너 잔으로 늘어나는 것은 시간 문제였고, 급기야 술을 마시면 연락이 안 되기 시작했다. 결혼 준비를 하면서도 그가 술을 마시면 연락이 안 되는 일이 꽤 자주 있었고, 어느덧 술버릇이 되어 갔다. 


 끓는 물에 개구리를 넣으면, 개구리는 그것이 뜨거운 물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채고 뛰쳐나와 살 수 있다. 반면에, 차가운 물에 개구리를 넣고 물을 아주 서서히 데우면 물이 뜨거워지고 있음을 알아채지 못하고 결국 죽게 된다고 한다. 아마도 개구리는 아예 알아채지 못한 것이 아니라 ‘응? 좀 뜨거워진 것 같은데?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겠지?’ 하는 안일한 태도를 가졌던 게 아닐까. 

 사소하지만 점점 고조되는 위험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그에 대한 적절한 대응을 하지 않으면 결국 큰 화를 당하게 된다는 이 ‘삶은 개구리 증후군’이 나에게도 적용되는 것 같다. 나는 그때 알아채야 했다. 내가 발을 담그고 있는 물이 뜨거워지고 있음을, 내가 지금이라도 발을 빼지 않으면 더 큰 화를 당할 거라는 걸. 하지만 삶은 그리 녹록치도, 간단하지도 않았다. 이미 양 눈에 콩깍지가 단단하게 씌워져버린 나로서는 이 물의 온도를 알아챌 정신이 없었다. 그러는 사이 물은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었다.






결혼 전 어느 날, 그날도 그는 퇴근 후 동료들과 함께 술자리를 가졌다. 일주일에 두세 번이 기본이 되어버린 그의 술자리에 지쳐있던 나는 밤이 깊어지자 ‘술 좀 그만 마시라’는 톡을 보냈고, 그에게서 알아볼 수 없는 글자들이 답장으로 왔다. 이미 취할 대로 취했다는 것을 직감한 나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은 갔으나 받지 않았다. 음성사서함으로 연결한다는 안내 음성에 종료 버튼을 누르고 다시 전화를 걸기를 수차례. 그렇게 다섯 번 만에 그가 전화를 받았다. 


 “술 취한 것 같은데 이제 그만 마시고 집에 가는 게 어때.” 차오른 분노를 최대한 누그러뜨리고 그에게 말했다. 돌아온 답변은 가관이었다. “엉에~” 아마도 “뭔데?”를 말하고 싶었나보다. “뭐가 아니고 그만 마시고 집에 가라고...”라는 말을 마치자마자 횡설수설하는 그의 말들이 휴대폰을 타고 내 귀로 흘러들어왔다. 그 말들 중에서 유일하게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들이 있었는데, 그것은 지금까지 살면서 다른 연인들에게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말, 바로 욕이었다.


 너무 충격적이었던 터라 말을 잇지 못하고 휴대폰만 간신히 붙잡고 있었는데, 할 말을 마친 듯 그가 먼저 전화를 끊었다. 몇 분이 흘렀을까. 멍하니 내가 들은 말을 곱씹어보고, 이게 무슨 상황인지 고민하다 다시 전화를 걸었을 땐, 전원이 꺼져있다는 안내 음성만 들려왔다. 불안해진 나는 차로 40분 거리나 떨어진 그의 집과 회사 근처를 돌아다니며 그를 찾기 시작했고, 우여곡절 끝에 겨우 찾아낼 수 있었다. 인사불성인 채로 자기 두 발로 제 집에 들어가 곯아떨어진 그를. 이후에 우리가 어떻게 화해했는지, 그가 나에게 사과를 하기는 했는지는 사실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에게 술이란 억압된 자신을 봉인 해제하는 용도로 쓰이는 듯했다. 온갖 잡념을 벗어 던지고 시원하게 해갈시켜주는 역할. 그런 사람에게 “술 좀 그만 마시라.”는 말은 분명 듣기 싫은 말이었을 거다. 유일한 탈출구를 틀어막는 것처럼 들렸을 테니까. 그래서인지 그는 그 말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치 마징가z의 로켓 주먹이 발사라도 되듯 분노 게이지가 단박에 상승했다.


 이후에도 그는 술을 마시면 자주 휴대폰을 잃어버리거나, 길을 잃거나, 정신을 잃었다. 엄밀히 말해서 자기 자신을 잃는 것이다. 그때의 나는 그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괜찮아. 이 정도는 괜찮아.’ 하고 그 일을 합리화하거나 수긍해버리곤 했다. 술 문제만큼은 그와 대화가 되지 않는다고 내 스스로 판단하여,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받아들이는 쉬운 길을 택했다. 결혼준비를 할 때쯤에는 내가 한 선택을 돌이키는 것이 두려웠고, 술 문제에 대해 그와 원만한 합의점을 찾는 일은 버거웠다. 물론 처음엔 나도 “다신 그러지 않을게.”라는 그의 말을 믿은 적이 있다. 연인 사이에 ‘다신 그렇지 않겠다’는 말이 클리셰처럼 뻔한 대사였다는 것을 나는 왜 몰랐을까. 




 이제와 생각해보면 우리는 한 어항 속에 살고 있는 개구리 부부였다. 어느 한 마리도 “물이 뜨거워지고 있으니 도망치자.”라거나, “같이 살 방법을 찾아보자.”라는 대화는 하지 않은 채, 현실에서 각자도생할 방법만을 찾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어항 속에 살고 있던 남편 개구리는 또 얼마나 많이 ‘이 정도는 괜찮아’를 되뇌고 있었을까. 

이전 03화 남편을 향한 신앙심 (2)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