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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Oct 17. 2020

알랭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1. 사랑은 질병이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 것일까. 사랑의 처음과 중간, 그리고 마지막을 그대로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 왔다. 나의 그런 바람은 훨씬 오래 전에 알랭드 보통에 의해 실현되어 있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내가 내린 결론은 ‘사랑은 질병’이라는 말이다. 사랑은 병이다. 지독한 망각을 동반한 질병. 언제나 시작과 함께 끝을 생각하고 마는 나이기에, 그러면서도 시작의 달콤함만 알고 끝의 날카로움을 잊고 마는 나이기에.


사랑이 미친 짓임을 안다고 해서 그 병으로부터 구원을 받을 수는 없다어쩌면 지혜로운또는 전혀 고통 없는 사랑이라는 개념은 무혈 전투라는 개념과 마찬가지로 모순일지도 모른다.(p269)”


소설형식으로 쓰여진 이 책에서, 주인공 남여의 사랑도 결국 현재 진행형이 아닌 과거 완료형이 된다. 그들의 만남은, 처음에는 절대적 필연이라 느껴졌지만 종국에는 우연이 된다. 그것이 그들의 사랑이 끝나는 순간이다.

사랑의 끝이 주는 고통으로 인해 자살까지 생각했던 그, 그러나 그는 시간과 함께 그녀를 잊는다. 그녀와의 이별을 그는 이렇게 표현한다.


클로이와 보낸 시간은 주름이 잡히며 폭이 좁아졌다수축하는 아코디언 같았다내 사랑 이야기는 얼음 덩어리와 같아서현재로 들고 오는 동안 차차 녹아버렸다.(p257)”


한 때는 그녀와의 시간이 반듯하게 펴져서 현재로 있었다. 하지만 그 시간들에 점차 주름이 생기며 폭이 좁아지고 점차 과거가 된다. 한 사람의 삶이 책이라면 그녀는 그의 책의 단 몇 페이지에 적힌 혹은 몇 줄의 문장이 된다. 그렇게 고통스럽던 이별의 아픔도 녹아 버린다. 망각이다. 그는 결국 이렇게 말한다.


사랑은 분석적 정신에게 겸손을 가르쳤다아무리 확고부동한 확실성에 이르려고 몸부림을 쳐도 (중략분석에는 절대로 결함이 없을 수 없다는 교훈따라서 아이러니로부터 절대로 멀리 벗어날 수가 없다는 교훈을 가르쳐주었다(중략내가 다시 한 번 빠지기 시작했다는 것.(p273)”


사랑 앞에 겸손을 배웠다고 그는 말한다. 자신이 내린 ‘과거의’ 그녀와의 사랑의 끝에서 알게 된 것은, 그것이 불변의 진리가 아니라고, 그러니 다시 해 볼 수 있는 거라고 그는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사랑에’ 다시 빠진다고는 표현하지 않았다. 그저 빠지기 시작했다고만 썼다. 이 문장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그는 왜 ‘사랑’이라는 단어를 굳이 쓰지 않았을까. 사랑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조심스러웠던 것일까.


2. 사랑과 불안


예전에 일본인 지인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한국인들은 일본인들에 비해 ‘사랑한다’는 낯간지러운 말을 참 잘 한다고. 그는 나와 동갑내기였기에 세대의 문제가 아닌 국민성의 문제인 듯 들렸다. 생각해보면 확실히 일본인은 좋아한다는 말을 더 선호한다. 하지만 한국어로 ‘좋아한다’보다는 ‘사랑한다’가 연인 사이의 언어로서 더 정확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한다는 말은 분명 말하기 쉽지 않은 말이다. 반말을 나누는 사이에서, 사랑‘해’가 아닌 사랑‘합니다’로 발화 될 때. 나는 그 말이 낯설게 들린다.


“‘나는 당신을 좋아한다라는 큰 말이 주는 위압감은 하지만 당신이 그것을 직접적으로 알게 할 만큼 좋아하지는 않는다고 덧붙임으로써 누그러뜨릴 수 있었다.(p36)”


사랑의 말을 아낀다는 것을 나는 이렇게 해석한 것인지도 모른다. 당신이 알게 할 만큼 나는 당신을 좋아하는 것은, 사랑하는 것은 아니야, 라고. 불안. 불안인 것이다. 사랑의 정도가 깊어질수록 동반될 수밖에 없는 불안, 두려움으로 인한 부정적인 감정이 아닐까 싶다.


스스로 사랑받을 만한 존재라고 확신하지 않는 경우에 타인의 애정을 받으면 무슨 일을 했는지도 모르면서 훈장을 받는 느낌이 든다.(p63)”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타인과도 제대로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을 어느 책에서 읽었다. 자기 자신을 제대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과 타인과 건강한 사랑을 나누는 것. 이것은 언뜻 상관없는 듯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나는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확신하지 못하면 상대의 나에 대한 사랑을 제대로 받아주지 못한다. 왜 나처럼 이러이러한 문제를 가진 사람을 왜 그는 사랑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으니까.


연인들은 단지 그들의 행복의 실험에 수반되는 불확실성과 위험을 견딜 수 없다는 이유로 사랑의 이야기를 끝내버릴 수도 있다.(p186)”


나는 늘 이별을 생각하며 사랑을 한다. 습관적이다. 그 밑바탕에는 자기 혐오가 깔려 있다. 나는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아니다 라는 생각이다. 이 생각과 싸우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했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나는 그 생각을 지우지 못했다는 걸 알게 된다. 이 생각은 결국 끝내버리고 싶은 충동을 이겨내지 못하게 만든다. 이 충동은 “ 우리의 연애가 자연스러운 종말에 이르기 전에 끝내버리고 싶은 충동(p185)”이다.


3. 모든 사랑은 실패였다


나는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싫어한다이것은 나는 이런 식으로 너를 사랑하는 위험을 무릅쓸 수밖에 없다는 것이 싫다는 근본적인 주장과 통한다.(p183)”


나는 자전거를 타지 못한다. 물론 타려는 시도는 나름 했다. 친구가 뒤에서 잡아준 적도 있고 직선 정도는 달릴 수 있다. 하지만 결국 자전거를 능숙하게는 타지 못했다. 왜냐하면 나는 한 번도 넘어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자전거 안장에 앉기 전 부터 넘어질 것을 생각한다. 두려워한다. 제대로 달리기 전부터 이미 넘어지지 않도록 발을 뗄 생각부터 한다. 그래서 결국 단 한 번도 넘어진 적 없이 더불어 제대로 달리지도 못 한 채 지금까지 자전거는 타지 못한다.


나의 모든 사랑은 실패했다.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의문도 든다. 도대체 성공한 사랑은 무엇일까 라고. 사랑의 성공 기준이 결혼이라면 결혼에 이르지 못한 사랑은 모두 실패일 게다. 하지만 결혼한 사람 중에서는 이 말에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게다. 또는 결혼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실패하지 않았다고 말한 사람도 있을 게다.


하지만 적어도 나의 사랑에 대해서는 모든 사랑은 실패‘였다’. 과거형이다. 현재형, 미래형으로 쓰고 싶지는 않다. 사랑은 지독한 망각을 가진 질병이니까. 그리고 아직 나는 살아 있으니까. 적어도 과거형으로 닫아 두고 싶다. 실패였다, 라고. 

적어도 나는. 내가 자전거를 타지 못하는 이유처럼 여전히 실패였다.


어쩌면 어떤 사랑은 아름답거나 고귀한 존재와 사랑의 동맹을 맺음으로써 우리 자신과 우리의 약점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충동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중략어쩌면 우리가 원했던 것은 사랑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어쩌면 그저 믿을 수 있는 어떤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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