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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Oct 17. 2020

조영은의 <왜 나는 늘 허전한 걸까>

이 책은, 임상 심리학을 전공한 저자가 병원에서 일한 경험을 담은 책이다.

임상가로 일하며 만난 사람들에게서 본 ‘우울, 불안, 불만족감, 공허한 느낌, 결핍감, 막연한 갈증, 배우자나 연인에 대한 집착, 막연한 분노, 신체증상 등’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었다. 바로 채워지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저자는 이를 ‘허전함’이라는 단어로 묶어 각 현상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와 해결법을 제시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의 근원인 걸까?(p309)”


마음의 갈증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p309)”


도대체 왜 우리는 이러한 허전함, 마음의 갈증을 느끼는 것일까. 허전함은 외로움과는 어떻게 다른 것일까. 타인과의 문제가 없다면 허전함은 느껴지지 않을까. 저자가 말하는 허전함이란 무엇일까. 저자에 의하면, 허전함과 외로움은 다르다. 외로움은 타인과의 관계로 인해 사라질 수 있지만 허전함은 그렇지 않다. 즉 우리가 허전함을 느끼는 것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도 물론 느낄 수 있지만, 타인과의 관계가 돈독할지라도 허전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자기 존재와 관련된 허전함을 느끼기도(p311)” 한다는 것이다.


안정된 가정을 꾸리고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런 외부적인 상황과 상관없이 공허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어린 시절에 해결하지 못한 트라우마풀지 못한 채 쌓아온 마음의 상처여전히 물음표로 남은 실존적 의문 등 허전함이 오직 자신과의 관계에서 오기도 하기 때문(p311)”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어릴 때는 ‘평범함’에 대한 간절한 소망이 있었다. 평범한 환경에서 살고 싶었다. 이제 어른이 되고 평범함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알게 되면서 평범에 대한 집착은 내려놓고 있다. 그리고 때론 평범한 가정이란 것이 과연 존재할까라는 생각도 한다. 타인에 눈에 비친 가정은 평범하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상처 없는 사람은 없다는 생각도 든다. 그 크기와 깊이가 다를 뿐, 제 나름대로는 모두 자기만의 상처를 안고 있는 듯하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채워지지 않는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막연히 던져진 세상에서 실존하는 이유와 삶의 이유를 스스로 찾아야 하기 때문이고살아가는 의미를 스스로 부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p309)”


또한 저자는 말한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허전할 수밖에 없는 동물이라고.

‘시간 이동이 가능하다면 어느 시간, 어느 곳으로 가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가르치는 중학생 아이에게 한 적이 있다. 아이의 대답은 태어나기 이전이라고 했다. 항상 부족함 없이 사랑을 표현하고 아껴주고 물질적으로도 부족함 없이 채워주시는 부모님과 따뜻한 가정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였기에 왜 그런 대답을 했는지 조금 의문이 들었다. 왜냐고 물었더니, ‘내가 원해서 태어난 게 아니니까요’라고 말했다.


그렇다. 우리는 처음부터 우리가 선택하지 못한 것들에 둘러싸여 세상에 던져졌다. 중학생 아이도 아는 사실을 나는 아마 잊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선택하지 못한 더 많은 것들을 앞에 두고 무엇이든 내 의지로 할 수 있을 거라 과신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로 인해 할 수 없는 것들 앞에서 혼자 지치고 좌절했던 것은 아닐까, 라고 묻게 된다.


때때로 마음의 갈증을 느끼는 것도, 해결되지 못한 깊은 상처로 인해 어느 순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게 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허전함을 모른 척하며, 아무렇지 않은 척해도 텅 빈 마음은 텅 빈 그대로일 뿐이다.


이 책을 읽은 것은, '지금' 마음이 허전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하지만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읽어두고 싶다’는 강한 이끌림을 느꼈다.

어릴 때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느낌이 있다. 소용돌이치는 블랙홀 안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밤에 쉽게 잠이 들지 않아 잠들기 위해 애쓸 때 느꼈던 것이기도 하고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고 이어져, 나를 잡아먹을 것 같은 두려움에 빠졌을 때 찾아온 것이기도 하다. 지금은 그런 블랙홀의 두려움은 다행히 사라졌다. 여전히 쉽게 잠들지 못한다. 잠들기 위해 뒤척이는 시간을 견디어야만 하는 것도 여전하다. 하지만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공포감에서는 해방되었다.


다만 그 대신, 가끔씩 꿈속에 나오는 사람들이 있다. 제대로 애도하지 못한 채 내 안에 엉킨 실로 남아 있는 사람들이 나의 복잡한 마음을 대변하듯 나오곤 한다. 그들과의 시간이 한때 나의 삶의 전부였기 때문에, 그럼에도 충분히 애도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를 괴롭히는 것인지 아니면 그들이 여전히 나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꿈속에서 이어지는 것인지, 도대체 무슨 이유인지 나는 모른다. 나는 언제쯤 이 꿈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도 나는 알지 못한다.


외로움과 고독과 친해지면서 그것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방법들을 하나씩 익혀가면서 허전함에 대해서도 조금은 익숙해지고 있다. 익숙해지고 있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해결할 수 없는, 나 스스로 어찌 할 수 없는 것들 앞에서는 여전히 무력하다.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잘 읽지 못하고 감정을 공유하는 데 서투른 것은성장하면서 감정을 인정받아 본 적이 없어서 그럴 것이다우리들은 성장과정에서 누군가가 자신의 감정을 알아주고 이해해주는 경험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게 된다그럼으로써 타인의 감정 또한 이해하게 되고자연스레 타인과 친밀함을 나눌 수 있는 공감 능력도 생겨난다.(p38)”


2016년. 아직은 이 2016이라는 숫자가 낯설다. 그렇게 기다리던 숫자인데 낯설다. 모두들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 소망을 주고받는다. 하지만 난 올해는 그 어떤 소망도 품지 않기로 했다. 계획도 미리 세우지 않았다. 간절하면 이루어진다고 친구는 말한다. 그 말을 듣고 생각했다. 그동안의 내 소망은 간절하지 않았던 것일까. 어떻게 하면 간절할 수 있을까. 인생이 기대하는 간절함의 기준치는 무엇일까. 내 간절함은 얼마나 가벼웠다는 것일까.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의 마지막 구절이 떠오른다. 그는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자기 자신에게 묻는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p388)”라고. 나는 2016년 12월 31일의 나에게 묻는다. 넌 무엇을 기대했냐고.


마음이 건강하다는 것은 완벽한 행복완벽한 자신감완벽한 자기상을 갖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불완전하고 부족한 모습도 수용할 수 있는 것이대로 충분하지 않은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것완벽하지 않은 부모와 나 그리고 결점이 있는 타인을 수용할 수 있는 것아픔을 알면서도 현실에 발 디딘 채 긍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건강한 낙천성을 갖는 것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마음의 건강이 아닐까.(p184)”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 올해 나에게 내가 허락할 수 있는 소망은 그것이다. 그리고 지혜를 갖고 싶다. 포기해야만 하는 한계 앞에서 겸허히 수용하는 용기, 극복할 수 있는 한계 앞에서는 극복해내는 힘, 그리고 그 둘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질 수 있는 해가 되길 바라는 것. 이것이 올해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이다.


해가 지는 것이 두려워 일출을 보지 않을 텐가이별이 두려워 만남에서 물러설 텐가죽음이 두려워 삶을 피할 것인가삶을 직면한다는 것은 분명 불안을 동반하지만회피적인 태도는 더 많은 대가를 치르게 한다물론 두렵겠지만 실패하고 거절당한 들 어떠며때로 좌절한들 또 어떠한가우리에게는 또 다른 내일이 있지 않은가.(p196)”


서평을 쓰기 전부터, 교장선생님의 아침 조회사처럼 내가 내 글이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어 도저히 쓰지 못했다. 며칠 서평이며 책을 가까이 할 수 없었는데 이 서평을 마칠 수 있어 다행이다, 정말.

올해 첫 날을 서평으로 시작할 수 있어 다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것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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