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정 Apr 02. 2021

가훈의 탄생


반품사절


남편이 아끼는 나무 도마가 두 동강이 났다. 도마로서의 역할을 다한 도마를 바라보며 새로운 역할을 부여하고 싶었다. 가늘고 긴 나무조각을 책상 위에 올려 두고 약 한 달간 고민했다. 그 위에 그림을 그려볼까? 사진을 달아서 장식할까? 그러다 남편과의 대화 중 반품사절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여기다 반품사절이라고 쓸까? 라고 묻자 남편도 좋다고 했다. 반품 ‘금지’냐고 되물었지만 단호하게 ‘사절’이라고 정정했다. 처음에는 사절이나 금지나 비슷하지 않을까 하면서 남편의 의견대로 글씨를 적었다. 이자카야 메뉴판 같기도 하고 영업중이라는 푯말 같기도 한 이 나무판을 보며, 문득 이게 바로 우리집 가훈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우리집 가훈이 탄생했다.     


사전적 의미로 사절이란, 사양하여 받지 않는다는 것이고. 금지는, 법이나 규칙, 명령 따위로 어떤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의미다. 반품금지라는 단어는 남편과 나와의 둘만의 약속이 된다. 하지만 사절이라는 단어를 쓰게 되면 그의 부모님이나 우리 부모님, 가족에 대한 시점이 들어가게 되므로 사절과 금지는 다른 무게가 된다. 남편은 농담처럼 “너만 반품 안 되는 거 아니고 나도 반품 안돼”라는 말을 하곤 했다. 그 말이 이렇게 함께 산 지 3년차 부부의 가훈이 될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새해의 목표를 세우듯 부부가 된 우리에게도 가훈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줄곧 했다. 이제 막 토대를 짓는 단계이기에 기둥이 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아직은 뿌리가 연약한 우리 부부를 지탱해 주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었다. 정직, 성실, 믿음, 사랑... 교과서에 나올 법한 단어들도 떠올리긴 했지만 역시 그것들은 왠지 너무 멀다. 과연 이 사회는 정직과 성실이 중요한 사회라고 말할 수 있는가, 라는 의구심도 솔직히 지울 수 없었다. 법에 걸리지만 않으면 당당할 수 있는 사회, 오히려 그것이 영리해 보이는 사회. 이런 세상에서 어떤 가훈을 정해야 하는가, 라는 회의감도 있었다. 그렇게 가훈에 대한 바람을 포기하고 있던 참에 우연히 가훈이 찾아왔다. 도마에서 가훈으로 새로 태어난 나무푯말이 지금은 집 한가운데에 당당히 자리잡고 있다.    

  

그와 나라는 씨앗의 화분그리고 가족이라는 영양제


처음 결혼을 결심할 때는 이건 우리 둘만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둘만 잘 지내면 되는 일이고 우리 둘이 잘 해결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몇십 년 동안 다른 삶을 살아온 ‘그와 내’가 하나가 되어 한 곳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우리를 둘러싼 주변 환경의 도움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화분에 씨앗만 뿌리는 것보다는 영양제를 줄 때 더 잘 자라는 것처럼 말이다.     


얼마 전 정말 이젠 답이 없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남편과 싸운 적이 있다. 사소한 문제였음에도 말이다. 그때 이런 고민을 유일하게 말할 수 있는 둘째언니에게 전화를 했고 언니는 한참 내 얘기를 들어주고 자신의 경험담을 얘기해 주며 나를 다독여 주었다. 그리고 대화 끝무렵 언니는 말했다. 동생인 내가 언니에게 소중하듯, 제부도 우리 가족이기에 똑같이 소중하다고, 아들 없는 우리집에서 아빠에게 아들처럼 살갑게 대하는 제부가 아빠에게도 소중한 사람일 거라고. 언니의 마지막 그 말은 여전히 가슴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결혼 후 가족에게 가장 고마운 점은 바로 이런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란 이유 하나만으로 나의 남편을 가족으로 받아주고 믿어주었다. 물론 가족들에게 살갑게 대하고 적극적으로 다가간 남편의 노력도 클 것이다. 하지만 동생이 선택한 사람이니까, 내 딸이 고른 남자니까 당연히 좋은 사람일 거라고 무조건적으로 믿어주는 가족들이 너무 고맙다. 그리고 부부싸움을 한 상황에서조차 팔이 안으로 굽지 않고 제부도 소중한 우리 가족이라고 말해주는 언니가 너무 고맙다.   

   

# 4월 4


4월 4일은 시어머님의 기일이다. 한 번도 직접 뵌 적은 없지만 내 꿈에 찾아오셔서 자상한 미소를 지어주시기에 왠지 친근하다. 어머님 기일에 소박하게라도 우리만의 제사를 지내자는 말에 남편은 극구 반대다. 할 수 없이 어머님을 생각하는 마음을 담아 편지 쓰듯 일기를 적는다. 서로 많이 다른 우리 부부. 세상에서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을 또 만날 수 있을까 할 만큼 사랑하지만 우리는 아직 싸우는 법이 서툴다. 사소한 일임에도 화를 내고 섭섭해하는 내 그릇 크기에 나 자신에게 화가 날 때도 많다. 아무리 책을 많이 읽고 일기를 쓰며 노력해도 아내로서의 나의 그릇은 참 작다.


마음으로 어머님께 편지를 쓴다. “너무나 소중한 이 사람, 우리 잘 살 수 있도록 우리 부부에게 지혜를 주세요, 우리를 지켜봐 주세요, 어머니”라고. 

작가의 이전글 쓰고 싶다는 농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