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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Aug 23. 2021

살아야 하는 이유 한 가지를 찾았다

나에게는 크게 두 번의 변태가 있었다. 아마도 그런 것 같다. 십 대, 이십 대 초반까지의 나를 알던 사람이 이십 대 후반에 만났을 때 예상치 못한 변태에 많이 어리둥절해 했다. 그리고 삼십 대의 나를 알던 사람이라면 사십 대가 된 지금의 나를 보며 또 한 번 놀랄 게다. 그게 두 번째 변태가 아닐까 싶다.  

   

첫 번째 변태는, 교회를 떠난, 종교가 없는 나의 삶 때문이다. 학창 시절의 나를 알던 사람이라면 그렇게 오랫동안 그리고 그렇게나 깊이 종교 속에 있던 내가 그렇게 순식간에 무신론자가 되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지각변동처럼 찾아온 삶의 변화에 나 자신조차 많이 혼란스러울 정도였으니까. 그 혼란을 견디느라 이십 대를 다 보낼 정도였으니까.


그리고 지금의 나는 사실 가끔 나도 놀란다. 결혼과는 무관한 사람이라 여기며 살아왔는데 결혼을 했고 결혼과 함께 남편의 취향이 나에게 스며들어 혼자였던 나에게는 상상할 수 없었던 취미와 습관들이 생겼다. 식성도 바뀌어 버렸고 스타일도 바뀌었다. 또 한 번의 지각변동이다.     


삶이 예상대로 흐르리라 믿었던 건 아직 삶을 모르기 때문이었다. 삶을 안다면, 아니 그냥 주어진 삶을 한 번이라도 살아봤다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이건 나이가 주는 선물이 아닐까 한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잃어가는 것만은 아니다.      


물론 아직도 자주 혼란스럽다. 지금의 삶이 정말 최선인지 모를 때가 많다. 아직도 삶의 땅에 깊게 뿌리내렸다고는 자부할 수도 없다. 한 가지 일에만 십 년 넘게 종사하고 있지만 그 일이 가끔 나를 배신하기도 한다. 어른이라 불리는 나이지만 어른이라 불리기에 부끄러운 모습도 많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과 어른스러워진다는 것이 반드시 비례하지 않음을 자주 깨닫는다.      


그럼에도 삶의 시계는 계속해서 흐른다. 끄적이는 이 순간에도 1초, 1초 흐르고 있다. 죽는 순간까지 앞으로 몇 번의 변태를 거듭할지 궁금하다. 살아야 하는 이유는 그리 많지 않지만 그래도 한 번 살아봐야 할 한 가지 이유는 확실하다. 이 삶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살아 보지 않으면 절대로 알 수 없다는 것,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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