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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Oct 17. 2020

배르벨 바르데츠키의 <상처 없이 사랑하고 싶다>

그런 날이 있다. 도저히 어떤 것을 할 수 없는 날. 혹은 반대로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상상이 가지 않으면서도 어떻게든 반드시 해내고 싶은 날. 오늘은 어떻게든 이 책의 서평을 쓰고 싶은 날이었다.


상처 없이 사랑하고 싶다.”


선명한 핑크색에 ‘사랑’이란 단어를 당당하게 내 건 이 책을 드러내놓고 읽는다는 건, 마치 ‘난 그 동안 늘 사랑에 실패해 왔어요’를 만인 앞에 드러내는 듯해서 어떻게든 제목을 가리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인간은 다른 사람을 받아들임으로써 자기 자신과 마주하게 됩니다상대방에게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혼자서는 알 수 없었던 자신의 다른 면을 경험합니다이 사실은 둘의 관계를 더욱 값지고 흥미진진하게 만들어주지만한편으로는 위험에 빠뜨립니다자신이 가지고 있는 인간관계의 문제점과도 대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상대방의 뿌리 깊은 갈망자기도취적 측면높은 요구결합 욕망갈등에 대한 우려자신의 부족함에 대한 두려움과 상대가 부족한 사람일 위험성 등 인간관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문제점과 맞닥뜨리게 됩니다.(p76~77)”


공적이든 사적이든, 내가 만나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금씩 마음의 아픔이 있었다. 네 개의 의자다리 중 하나가 부러진 듯 휘청거리는 사람도 있었고 다섯 개 중 하나의 다리가 부러진 듯한 사람도 있었다. 튼튼한 다리가 여러 개 있어서 하나 정도 부러져도 금세 회복하는 사람과 있으면 나의 마음도 어딘가 안정이 된다. 반면 균형을 잃은 다리로 간신히 서 있는 사람과 함께 할 때면 나마저도 혼란에 빠진다.


이 책에서 말하는 ‘사랑’이 반드시 연인간의 사랑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친구, 가족, 동료 등 모든 관계에 대해 말하고 있다. 하지만 가장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고 그대로 느끼고 또한 그대로 흔들리고 마는 시기는, 아무래도 이성간의 사랑일 것이다. 타인인 두 사람이 만나 하나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서로를 탐하는 그때, 그때 우리는 우리 모습 그대로를 거침없이 드러내게 되지 아닐까.


사실 책을 읽기 시작해서 중간 정도에 이르렀을 때까지는 조금 화가 나기도 했다. 자기만 사랑하는 자기중심적 사람들, 자기애적 결핍을 가진 사람들. 그런 어딘가 불안한 사람들의 사례를 읽을수록 나마저도 불안정해짐을 느꼈다.


파트너의 마음에 들기 위해 자신을 어떤 모습으로 만들려 해서도 안 된다. 불안정한 상대를 돕는 역할이 지나치면 상대를 의존적으로 만들기 때문에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또한 상대의 관심을 끌기 위해 상대를 유혹할 필요도 없다. 나에게 부족한 것을 파트너로부터 채우려고 기대해서도 안 된다.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된다면, 도대체 어떻게 하면 상처 없이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따지듯 저자에게 묻고 있는 내가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

그 답은 어쩌면 이미 내 마음속에 들어있던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알아야 한다. 당신은 지금 그대로의 모습 그대로 충분히 아름다우며 사랑받기에 충분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지금 자신의 모습 그대로로 충분하며 그대로의 마음을 표현해도 거부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러한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사랑에 대한 경험이 필요하다. 슬픔을 슬픔으로 표현했을 때 내 슬픔을 존중받은 기억이 있을 때, 또 다른 슬픔이 찾아왔을 때에도 숨기지 않고 슬픔을 슬픔으로 표현하고 해소할 수 있다.


자신의 감정에 대해 자신조차 모르는 한 아이가 있다. 엄마의 빈자리를 대신 해 주던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슬픈 감정을, 슬픔이란 단어로 느끼지 못하고 ‘싫음’이라고밖에 표현할 줄 모르는 아이다. 외로움이나 불안함을 그대로 느끼지 못하고 자신의 팔에 상처를 내며 육신의 아픔으로 바꾸어 표현하는 아이이기도 하다.

반면 또 다른 한 아이는 모든 감정을 분노와 화로 표현한다. 그 아이는 세상의 모든 것들로부터 오로지 혼자서 자신을 지켜야만 한다고 생각하며 폭발적인 분노로 사람들을 대한다. 그 아이들을 생각할 때면 목이 멘다.


그렇게 어딘가 다리가 부러진 듯한 모습의 그 아이들이지만, 그럼에도 그 아이들은 지금 그대로도 충분히 너무나 사랑스럽다. 마음이 아픈 것인지 몸이 아픈 것인지도 모른 채, 불편한 마음을 이상한 행동으로 표현해서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하고 친구들에게 미움을 살지라도, 그 모습조차도 그 아이의 모습이기에 그대로 품어주고 싶다.


사랑받지 못하고 이해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주는 고통아무런 응답도 받지 못한 사랑에 대한 실망감 (중략누군가를 절실히 필요로 할 때 정서적으로 홀로 방치됨으로써 받은 상처와 응답받지 못한 사랑(p186)”이 어떤 것인지, 나의 과거가 알고 있기에 그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그 아이들이 상처 없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기도하고 싶어진다.


십 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잊지 못하는 나의 첫사랑이 남긴 선물은,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는 말이었다. 상대가 좋아하는 모습으로 있어야만 계속해서 사랑받을 수 있는 것인 줄 알았고, 내가 더 많이 사랑하면 나의 사랑이 줄어서 없어지는 것인 줄 알았고 그 아이가 나에게 말해 준 점보다 더 나은 점이 있는 사람이 나타나면 그 아이의 마음은 그 사람에게로 언제든 쉽게 변해버릴 것으로 생각했다. 언제 이 사랑이 끝날지 몰라 늘 불안했고 불안해서 화내기도 했고 불안함을 감추고 싶어서 이별을 말하기도 했다. 가장 사랑하는 순간이 온다면 이제 남은 것은 이별이라고 생각했다.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모든 것은 변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나 자신 그대로를 사랑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끊임없이 상대에게 나의 부족한 모습을 채우고 싶었고, 채워지지 않을 때 실망하고 두려워하고 이별을 그리곤 했다. 그가 변할 것이라는 두려움과 내가 변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었다.


이별을 결정하기 위한 마지막 질문으로 그 친구는 나에게, 자신과의 미래를 그릴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때 나는 그 친구와의 결혼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사랑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불안했다. 그 친구에게 늘 사랑스런 여자로 있을 자신이 없었고 나의 부족함을 채워줄 수 있는 그로 영원히 있어 주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도 있었다. 그때 그렇게 나는 한 사람을 떠나보냈다.


십 년 동안 나는 얼마나 성장했을까.

얼마나 나는 나 그대로를 그대로 드러내도 거부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믿게 되었을까. 또한 나는 얼마나 상대의 멋있지 않은 초라하고 비굴한 모습조차도 그 모습 그대로를 포용할 수 있게 되었을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일에 빠져 연락하지 않더라도 그것이 나에 대한 사랑이 변했다는 것이 아니라는 걸 믿어주고 함께 걸으며 다른 여자를 바라보아도 그것이 나에 대한 마음이 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믿을 수 있게 되었을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내가 얼마나 십년 전보다 성장해 있을지 아직은 모르겠다.

다만 마음의 상처를 가진 아이들을 통해 나를 보고, 그 아이들에게 내가 받고 싶은 그대로 사랑을 건넬 때, 오히려 내가 채워진다는 것은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아무리 퍼주어도 내 사랑의 샘은 절대로 마르지 않으며 오히려 더 가득 채워진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나의 솔직한 감정을 글로 말로 그대로 전해도 거부당하지 않고 오히려 나의 마음이 진심이란 것을 알아주고 기다려 주기도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이 책의 서평을 마치며 한귀은의 <그녀의 시간>(예담, 2015)에 나온 그림 한 장이 떠오른다. 남녀의 증명사진을 붙인 듯한 부부를 그린 그림이다. 그 그림에 대해, 그 책의 저자는 “두 사람은 ‘부부’로서 서로를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개별자’로서 정면을 향하고 있다”고 말하며 가장 자기 자신다운 표정을 짓고 있다고 덧붙인다. 그리고 그 부부에 대해 이런 표현을 한다.


“이런 편안한 표정을 지을 수 있는 이유는 옆에 있는 자기 배우자를 믿기 때문이다. 좋은 부부란 오누이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한귀은, <그녀의 시간>, 예담, 2015, p112)”


이 책의 ‘상처 없이 사랑하는’ 부부, 연인의 모습을 상상할 때, 한귀은의 책에 나온 '오누이 같은 모습’의 그 그림을 떠올리는 내가 있다.


오늘은 나에게 선물 같은 날이었다. 한 해의 선물을 한꺼번에 받은 듯 행복한 날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어떻게든 이 책의 서평을 꼭 쓰고 싶었다. 선물 같은 오늘이기에, 용기 내어 나에게 말하고 싶다. 상처 없이 사랑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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