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내가 처음 글이란 걸 쓰기 시작한 건 치유를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물론 치유라는 어려운 단어를 떠올릴 만한 나이는 아니었다. 그때는 치유가 목적이란 것도 몰랐다. 누군가의 지시 없이 자신의 의지로 처음 쓰기 시작했던 일기. 숙제가 아님에도 어릴 때부터 계속해서 일기를 써온 것은 궁극적으로 치유를 원했기 때문이란 걸 이 책을 통해 알게 된다.
“치유는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만든다.(p98)”
어릴 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내가 글을 쓰고 싶은 이유, 쓰고 있는 이유는 나를 들여다보기 위해서다. 사람들 앞에서는 드러내지 못하는 감정들, 나 자신도 알지 못하는 분노나 불안, 우울의 이유를 알고 싶다. 그리고 그러한 감정들과 나를 분리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감정들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하고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서는 내가 그 감정들을 인정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된다.
“자신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또 공감하고 위로해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건강한 자존감과 치유의 저력을 가진 사람이다.(p84)”
나 자신도 그렇지만 나의 미래의 아이에게도 키워주고 싶은 것이 있다. 그건 바로 스스로 일어서는 힘과 건강한 자존감이다. 늘 행복하고 좋은 일만 있으면 좋겠지만 인생은 그렇게 한 가지 색으로 칠해진 그림이 아니다. 넘어지지 않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넘어져도 일어날 수 있는 힘을 가지는 것이다.
이러한 힘을 위해 저자가 제안한 것이 바로 시와 글쓰기다. 그녀가 진행하고 있는 ‘시와 글쓰기 치유반’에서는 사람들이 각자의 글을 서로 나누며 용기와 자존감, 우정, 기쁨을 주고받는다. 물론 혼자서 쓰기만 해도 쓰는 행위를 통해 어느 정도는 치유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혼자만 읽는 글에서 더 나아가 자신의 아픔과 기쁨을 타인과 교류하며 감정을 공감받을 때 평안함과 안정감을 얻을 수 있고 이를 통해 인간은 진정한 치유를 경험하며 성장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나를 돌아보아도 그렇다. 그저 쓰기만 해도 위로가 된다고 한다면 굳이 블로그에 서평을 올릴 필요도 없고 책소개도 아닌 개인적인 글을 공개적으로 적을 필요도 없다. 내 글을 기다리는 이도 없고 글로 먹고 사는 것도 아니니까. 그럼에도 누군가 한 명이라도 읽고 공감하길 원하며 굳이 쓰고 올린다. 아무도 읽지 못하도록 책상 속에 꽁꽁 숨겨 두길 바라는 심리와 정반대로 누군가에게 발견되길 바라는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취한다.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그러한 행동의 밑바닥에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감정의 나눔을 통한 진정한 치유의 갈망이 아니었을까.
시쓰기를 통해 내면을 들여다보고 치유되고 회복되길 바랐던 한 친구가 생각난다. 사실 나는 그 친구로 인해 오히려 시가 싫어졌다. 누구도 해석할 수 없는 시를 시란 이름으로 포장해서 꽁꽁 싸매고 있으면서 그걸 해석해주길 바라고 이해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 무거웠고 버거웠다. 피하고 싶었다. 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때도 저자의 ‘쓰기 치유’가 주로 ‘시’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자, 바로 거부감부터 들었다. 하지만 시든 글이든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고 표현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라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그 친구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를 썼던 것은 나와 마찬가지로 누군가가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 한 편에 들키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공존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결국 나는 또 다시 알게 된다. 내가 써야만 하는 이유는, 앞으로도 이 생을 건강하게 살아내기 위해서, 그리고 주어진 삶을 무사히 마치기 위해서, 쓰는 행위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