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의도적으로 멀리하던 소설책을 다시 펼쳤다.
신경숙의 소설은 나의 고등학교 시절을 함께 했지만 슬픔이란 단어로 기억되는 책이기도 하다. 그 슬픔에 압도되어 감성적이 되는 것이 두려워서 일까, 그동안 소설은 멀리해 왔다.
다시 소설책을 펼치게 된 계기가 있다.
장영희 교수의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라는 책을 읽으며, 장영희 작가가 말하는 문학의 필요성, 가치, 힘, 의미에 설득당하여 이렇게 다시 소설책을 펼치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
삶의 이유, 존재의 의미, 살아야만 이유를 찾고 있다. 그 이유를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방법을 알고 싶다. 장영희 교수의 책을 읽으며 어쩌면 문학에 그 답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두렵다. 소설이 가진 현실의 적나라함, 슬픔은 내 이성을 압도하고 내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다.
오랜만에 펼친 신경숙의 소설, <오래전 집을 떠날 때>.
역시 슬프고 허무하고 애잔하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의 소설은, 그녀의 문체는, 그녀의 생각은 매력적이다. 그녀의 글은 겨울과 어울린다. 한 여름의 폭염을 쓴 부분조차도 겨울을 느끼게 한다. 외롭게 만들고 고독하게 만들지만 나의 외로움과 나의 고독이 그녀의 외로움과 고독이 만나 외롭지 않게 된다.
문득 신경숙의 소설에서,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 소설을 떠올렸다. 요시모토 바나나도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다. 문득 두 작가의 문체나 글의 표현 방식이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오랜만에 읽은 옛사랑, 책을 만나 다시 한 번 사랑에 빠진다. 십년이 넘었건만 여전히 나를 설레게 만드는 이 책으로 인해 가슴이 뜨거워진다.
시간은 흘렀지만 이 책은 나를 거절하지 않았다. 다시 한 번 사랑에 빠질 수 있었던 기쁨과 신경숙 작가의 문체에서 느낀 벅찬 감동을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었다.
그 순간, 이 기쁨을 함께 할 수 있는 소중한 친구와 연락을 할 수 없다는 현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는 오늘이다.
지금은 소설이 필요한 시기인지 모르겠다, 나의 인생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