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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Oct 17. 2020

김애란의 <침이 고인다>,

도도한 생활

김애란의 단편 <도도한 생활>을 읽으며 그 단편의 주인공이 그러하듯 나도 그녀처럼 내 기억 속 피아노 이야기를 떠올려본다.

처음으로 내가 다닌 학원은 미술학원이다. 아마도 5학년쯤이 아닐까 싶다. 미술학원에 다니는 게 참 좋았다. 방학 때면 아침 9시부터 학원이 문 닫는 6시까지 학원에 내내 있었다. 원장님은 하루 종일 있는 나를 귀찮아하지 않으시고 반겨주시고 선생님들과 같이 점심도 먹으며 방학을 보내곤 했다.

미술학원에서는 피아노도 가르치고 유치원도 운영하고 있었다. 방학이면 하도 오랫동안 학원에 머물렀기에 원장님의 호의로 피아노를 배우라고 하신 것인지, 아니면 엄마가 피아노도 등록을 한 것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어쨌든 그쯤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기억은 불분명하지만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 오랫동안 머무니까 피아노도 배워보렴, 이었다는 느낌은 선명하다. 체르니 100번의 한 두장을 시작할 쯤 피아노는 그만두었다.

피아노 선생님은 늘 무서웠다. 레슨 받을 때 옆에 앉으셔서 모나미 볼펜을 들고 탁탁 박자를 맞추시며 건반을 잘못 누를 때면 손가락을 탁 치셨던 듯한 기억이 잊혀지지 않는다.

10번 연습하고 동그라미를 쳐야 하는데, 연습곡이 아닌 다른 곡을 내 마음대로 연주하고 동그라미 치다가 혼난 듯한 기억도 나고 너무 치기 싫어서 피아노 위에서 자다가 혼난 듯한 기억도 난다.


그림그리기는 그에 비하면 나에게 너무 즐거웠다.

한번은 공항이라는 주제로 그림을 그리라고 원장님이 말씀하셨다. 하지만 몇 시간을 앉아 있어도 도저히 그릴 수 없었다. 공항에 한 번도 가 본적이 없었으니까. 상상할 수도 없었고 그릴 수도 없었다. 그렇게 몇 시간을 꼼짝 않고 눈물만 뚝뚝 흘리며 버티었던 듯한 기억이 난다. 그럼에도 난 그림 그리는 게 너무 즐거웠다.

수채물감이 잔뜩 물들어 까맣게 된 수건의 눅눅한 냄새나, 파레트를 들고 화장실에 가서 씻고 물통을 비우려고 오갈 때 바라봤던 언니, 오빠들의 그림들, 바닥에 떨어진 지우개 가루들. 그 순간들이 여전히 떠오른다.

아마 나의 학원 생활은 1년 남짓이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미술학원 원장님은 참 나를 아껴주셨다. 대학생이 되고 그 미술학원에서 유치원 아이들을 돕는 보조 선생님으로 아르바이트 하기도 했다. 그리고 발그레한 볼에 수줍어지면 새빨개지는 게 나의 컴플렉스였는데도, 핑크색 스웨터를 입고 간 날, 내 얼굴에 참 잘 어울린다고 칭찬해주셨다. 나는 지금도 핑크색을 보면 그 원장 선생님이 떠오른다.

생활공간과 미술학원, 피아노 학원, 유치원 이 모든 것이 하나였던 곳. 반항기의 덩치 큰 아들 셋에게 미술을 가르치며 생계까지 거의 담당하셨던 원장 선생님. 분명 넉넉하지 않으셨음에도 나의 가정의 넉넉하지 않음을 아셨던 것인지 나의 고집스러움을 아셨던 것인지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봐주셨던 기억이 잊혀지지 않는다.


나에게 피아노는 야단맞음, 서투름, 재능없음을 알려주는 표식이었다.

그것은 초등학교 때 다닌 학원에서만은 아니다.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교, 대학생이 될 때까지 다니던 교회에서 피아노를 쳤다. 혼자 취미로 치기도 했고 작은 교회라 피아노를 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반주를 하기도 했다. 물론 그 이면에는 내가 치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재능이 없었기 때문에 한 시간 예배를 위해 매일 여섯 일곱 시간씩 연습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밴드에서는 늘 박자가 안 맞는다고 야단맞기 일쑤였다. 재능이 없었던 탓이다. 백 번을 친 곡일지라도 나는 그 코드를 외울 수 없었고 기분에 취해서 박자가 제멋대로 된다고 언니, 오빠들에게 지적을 받아도 난 그걸 내 스스로가 느낄 수 없었다. 곡을 조금이라도 변형해서 연주하면 나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다.

피아노는 오로지 나 자신만을 위한 연주밖에 될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나에게 피아노는, 두려움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재능 없는 자는 따라갈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걸 깊게 알려준 것이기도 하다.

지금은 피아노에 대한 미련은 없다. 책을 읽을 때 서평을 쓸 때 피아노곡을 틀어놓고 집중하면 어느 샌가 그 곡이 들리지 않게 되며 문자에 들어가 있는 '나'가 보인다. 그렇게 내가 글 안으로 들어가게 해 주는 열쇠로 남아 있을 뿐이다.


이런 나의 어린 기억들을, 김애란의 단편 <도도한 생활>에서 떠올렸다.

그녀의 단편을 읽고 그녀로 인해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나고 담담하게 적고 있다.

한때는 아팠던 기억들을 이렇게 그녀로 인해 그녀처럼 담담하게 쓸 수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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