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지금노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쌩전 Aug 22. 2023

하다보면 뭐가 되겠지

그게 무엇인지는 내가 어떻게 알겠어 


내 의지로 꾸준히 하는 걸 잘 못한다. 그래서 남의 의지를 빌어서 뭔가를 꾸준히 해낸다. 그게 꾸준히라는 의미에 부합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여튼 그렇게 자꾸 남의 의지에 나를 밀어넣고 그것을 지키는 방식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다. 그게 내가 말하는 실존주의적 노동자의 일상이다. 뭐가 되기 위해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을 하다보면 내가 될거라 기대하는 것이다.


가끔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을 얘기하다보면, 그걸 어떻게 해? 라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 어떻게 하긴 그냥 하는 거지, 싶어서 어떻게 하고 있는지는 얘기해봤자 별 의미도 없고 이게 뭐 자랑도 아니고 내가 그렇다고 잘하는 것도 아니고 잘 모르겠다. 그래서 어떻게 하는 지는 제껴두고 무엇을 하는지만 기록하려고 한다. 그걸 왜 기록하냐? 그것도 잘 모르겠다. 그냥 그러고 싶다. 사실 일하기 싫어서 다른 일을 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쉽다. 해야할 일이 많고 오늘 밤을 새야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튼 그렇다. 원래 하기 싫은 일을 앞두고 있을 때, 갑자기 창의적 생산성이 급증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게 창의적인 일이라는 뜻은 아니다.)


1) 스타트업 브랜드 마케팅

다회용기 서비스를 제공하는 환경 스타트업 브랜드마케팅팀에서 리더로 일하고 있다. 리더라고는 하지만 그냥 경력직일 뿐이다. 13년차 마케터가 정직원 50명도 아닌 회사에서 플레이어로만 있기는 약간 민망한게 현실이다. 물리적인 몸도 무겁지만, 시간에 따라 쌓여버린 경험도 어느덧 무거워져버렸다. 이제는 내가 가볍게 생각한다고 해서 가벼운 사람이 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물론 20년, 30년차 분들이 들으면 기가 찰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광고, 마케팅, 스타트업의 생태가, 그리고 내가 경험한 업계의 분위기가 그렇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여튼 이곳에서 채널 운영이나 콘텐츠 기획, 전략을 짜는 등의 일을 하지만 최근 몇개월 동안 집중했던 것은 조직문화를 만드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문화를 막 만들었다! 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경영진을 대상으로 수개월 동안 워크숍을 해왔고 그게 어느정도 형태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잘 되고 있는거 같냐고 묻는다면 고개를 세차게 저을 것이다. 아니라고 말하기 보다는, 모른다는 의견에 더욱 힘이 실린다. 모른다, 하지만 뭔가 해결되지 않는 의문들이 가슴에 가득 차있다. 그래서 참 답답한 요즘이다. 


2) 브랜드 런칭 콘텐츠 전략

이름을 대면 알만한 회사의 브랜드 런칭에 대한 콘텐츠 전략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단기적으로 하는 일이고 아마 가을에는 끝날듯하다. 시작한지 그래도 한달 정도 된 것 같다. 초기 전략 키워드와 슬로건이 통과되고 이제는 세부적인 콘텐츠 기획을 업데이트하고 있다. 오랜만에 예전에 했던 것처럼 스토리보드도 짜고, 영상 흐름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전체적인 흐름에 맞춰서 타겟에게 주고 싶은 감정에 적합한 스토리와 텍스트를 정리한다. 그리고 그것에 맞는 영상의 레퍼런스를 찾아서 톤앤매너를 정하고 디테일한 구성을 짠다. 익숙하게 해왔던 일이지만 늘 그래서 문제다. 익숙한 문법대로 하다보면 이렇게 하면 안될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익숙하게 해왔던 일 때문에 경력이 쌓여서 새로운 일이 들어오지만, 그럴 땐 나의 익숙함을 벗어나야지만 일이 또 하나의 레벨로 갱신될 거라는 생각이 들고, 그래야 시장에서도 기능할 거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결국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사실 내일이 마감이다. 


3) F&B 브랜드 마케팅 기획 및 운영

유명한 브랜드는 아니지만 카페 공간을 중심으로 커피 브랜드가 되고자 하는 곳과 벌써 한 2년 째 업무를 계속하고 있다. 플래그십 스토어 런칭부터 꾸준히 진행하고 있고 최근에 계약도 연장했다. 소셜 채널을 통해서 어떤 메시지를 내보낼지 월단위로 기획하고 콘텐츠 포스팅하는 일들이 지속적으로 있지만, 내가 느끼기에 주요한 일은 내부적으로 필요할 때 기획안의 형태로 문서를 만들어주는 일이다. 브랜드 스토리를 정리하기도 하고, 입점 제안서를 정리하기도 하고, 콜라보를 하기 전에 파트너사에 보낼 콜라보 제안서를 만들기도 한다. 가끔 내가 브랜드에 도움이 되나 싶은 마음에 작아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꾸준히 쓸모가 있으니 관계가 계속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여튼 유명하게 만들고 싶고 더 잘되게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 함께 성장하는 것이 가장 좋은 그림이라고 늘 생각한다.


4) 브랜드 컨설팅 및 기획 업무

나름 브랜딩으로 유명한 스튜디오와 함께 종종 단기 업무를 하고 있다. 꽤 큰 규모의 파트너사와 일을 한다. 일년에 1-2회 정도 일을 하는 것 같은데, 올해 두번째 일이 이제 막 시작됐다. 보통 글로벌 브랜드 전략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이번에는 새롭게 시작되는 서비스의 네이밍업무이다. 사실 어찌보면 브랜드 이름을 다 말해도 상관 없을 것 같지만 굳이 안하는 이유는, 그냥 굳이 안하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나 편하자고 읽는 사람의 궁금함을 자아내는 것이 약간 무례한 일이 아닌가 싶으면서도 우선은 내가 편해야지 멈추지 않고 글을 써내려갈 수 있기 때문에 생각나는 대로 쓴다. 왜 이렇게 쓰냐면, 이것이 나의 솔직한 느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와 일할 땐 솔직한 느낌이 아주 중요하다. 그리고 서로 그것에 대해 생산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관계라서, 늘 함께 일하고 나면 뭔가 배웠다는 느낌이 든다. 일하는 것이 즐거운 사이면서, 동시에 응원하게 되고 또 지켜보게 된다. 여튼 결과적으로 말하면 대대행 외주라는 뜻인데, 덕분에 큰 회사와 일할 수 있는 기회가 나에게 온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이다. 


5) 가구 브랜드 마케팅

아주 작은 인원이 시작한 (1인) 가구 브랜드의 초기 멤버로 함께하고 있다. 그래도 꾸준히 비용을 받으며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거의 1.5주에 한번씩 비대면이나 대면으로 만나 회의를 하며 유지중이다. 그런 관계 속에서 켜켜이 쌓은 감정들이 있지만, 그래도 더 잘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솔직히 말하면 그럴 수 있는 재능이 많은 브랜드라는 생각이 들지만, 모두가 n잡의 형태로 소속되어있다보니 구심점이 크지 않은 것이 늘 아쉽다. 그럴 때, 내가 구심점이 되어야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도 n개로 쪼개진 나 자신의 열정 속에 포개어지는 것이 한계다. 디자인이 매우 예쁘고 세련되고 (좋은 의미에서) 마음이 쓰인다. 분명 좋은 계기들이 더 생길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그곳에서 '텍스트'를 중심으로 하는 일을 하고 있다. 보통 제품 소개글을 쓰거나 브랜드 소개글을 정리하거나, 기획안을 쓰거나 우리의 생각과 이야기들을 글로 정리한다. 텍스트로 소통하는 것은 나에게 꽤 익숙하고 또 즐거운 일이다. (잘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6) 야마자키 료 씨 유튜브 자막 달기

커뮤니티 디자인이라는 책을 쓴 일본의 야마자키 료씨의 유튜브 채널에 자막을 다는 일을 비정기적으로 하고 있다. 료씨에게 허락을 받아서 유튜브 채널 권한을 받았고, 종종 시간과 여유가 있을 때 자막작업을 해서 진행하고 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보는 것 같진 않지만 나 스스로 관계를 이어가고 공부를 계속한다는 의미에서 지속중이다. 실제 내 일본어 실력이 그정도까진 뛰어나지 않아서 청음과 번역은 크몽을 이용하고 있고, 나는 최종 감수와 업로드, 운영 정도의 일을 하고 있다. 그정도는 어렵지 않다. 돈을 쓰는 일이지만, 그만큼 의미가 있어서 즐겁다. 오히려 생산적인 쇼핑을 하는 것 같아서 기쁘다. 


7) 기타 종종 들어오는 일들

부탁을 받으면 되도록 거절하기 어렵다. 사실 거절하기 싫다는 말이 정확하다. 할 수 있는데, 왜 거절해야해? 만약 내가 거절한다면 정말로 할 수 없거나 안되는 일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 일은 하지 않는다. 할 수 있다면 되도록이면 해낸다. 소모되는 일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래서 여러가지 일들을 도와주기도 하고 가르쳐주기도 하고 이어주기도 한다. 그건 어려운 일은 아니다. 카페를 창업하는 분의 창업 준비에 도움이 되기도 하고,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컨설팅을 해주기도 하고, 필요하면 디자인을 하기도 하고 마케팅 도움을 주기도 한다. 실질적 도움이 되려면 더욱 깊이 들어가야 한다. 나는 그 전의 일을 하는 것 뿐이다. 어쩌면 10월에 시작될 카피라이팅 강의도 그것과 유사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게 내 삶에 어떤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듣고 함께하는 분들에겐 도움이 되길 바랄 뿐이다. 그게 내 삶을 기능적으로 업데이트해줄거라 믿는다. 그리고 그렇게 업데이트 되지 않으면 도태 될 거란 두려움도 있고. 


8) 소설 습작

이것은 나에게 취미도 아니고 일도 아닌 그 경계에 있지만,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2020년부터 처음 시작했고 그 후로 습작을 하면서 소설을 쓰고 있다. 매해 완성된 작품을 신춘문예나 문예지에 내고 있지만, 아직까지 좋은 결과는 없다. (당연한가!) 최종심에도 든 적 없다. 하지만 소설을 쓰면서 내 인생은 나름의 변화를 맞이했고 나는 그 변화가 싫지 않다. 사람에 대해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으며, 특히 나 자신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되었다. 나는 나를 바라보는 일을 두려워했던 것 같다. 깊은 곳에 있는 나를 드러내는 것을 꺼려했다. 사실 그 마음은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꺼내고, 나를 보고, 나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그건 아주 내밀한 곳에 있는 나와 넓은 세상이 똑같은 의미로 연결되어있다는 사실을 감각적으로나마 짐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과정 중의 깨달음으로는 만족스럽지 않다. 여전히 등단을 목표로 하고 있고, 내 작품이 누군가에게 읽히길 바란다. 이걸 쓰고 있는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럽고 작고, 이 문장을 적는 것이 슬프다. 하지만 그렇다. 부정할 수 없는 마음이다.


그 외에도 또 뭐가 있나?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이런 걸 다 하고 있다. 물론 매일매일 하는 것도 아니고 하루에 막 다 쌓여있는 것도 아니다. 일정을 조정하고 시간을 빼고, 휴가를 쓰면서 이리저리 채우다보면 어떻게든 가능하다. 지금까지도 그렇게 살았다. 회사 다닐 땐 안그런가? 프로젝트를 동시에 일곱개씩 돌리면서 했다. 광고대행사 있을 때는 하루에 제안서 두세개씩 쳐내는 건 예사일이었다. 대단해서 그런게 아니라, 해야하니까 했을 뿐이다. 그렇게 하다보면 또 내가 되겠지. 이런 내가 내일의 나랑은 같으면서도 다른 나일 것이다. 우리 모두는 테세우스의 배나 다름 없다. 계속해서 고민해야할 것이고, 끊임없이 분절될 것이다. 


안되면 말고, 하지만 기왕 하는 거면 끝까지 하고 잘 하고 싶으니까. 

아, 시간이 지나면 어떤 내가 되어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나를 보는 나의 변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