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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이상 Dec 27. 2016

매일 메일쓰는 M씨


"매일 매일 메일만 써." M씨가 말했다. "그러다보니 이상한 문장 습관이 생겼어. 그게 너무 싫고 버리고 싶은데 잘 안돼. 다른 걸 써보려고 노력해도 쓸 시간도 없고."

"쓸 시간이 정말 없어?" L이 물었다.

"촌철살인." M이 L에게 손가락질하며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그래, 시간이 없는 건 아니지. 쓰고 싶은 시간, 혹은 쓸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는 거겠지. 예전에는 글도 많이 쓰고 그랬거든. 오히려 글을 쓰지 않으면 참을 수 없었어. 계속해서 쏟아져나오는 문장들을 참을 수 없었다고 할까. 시든 소설이든, 장르를 가리지 않고 배설하듯이 계속해서 적어내려갔지. 이제는 그 때가 그리워. 지금도 뭐." M은 가만히 잠시 생각에 잠긴듯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말을 이어갔다. "많이 쓰긴 쓰지. 단어 수로 따지면 요새 쓰는 양도 만만치 않을거야. 하지만 그건 좀 다르니까."

"그건 그렇지." L이 말했다. "나도 그래. 그리고 되게 반복적인 표현들이 두드러지잖아. 그건 문학적인 수사도 필요없고, 이상하게 목적을 호도하게 되는 경어를 버릇처럼 쓰게 되고 말야."

"맞아!" M이 눈을 크게 뜨며 동의했다. "그리고 자꾸 간접적으로 말하게 돼. 뭐뭐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라던가, 뭐뭐를 정리했으니 확인 부탁드립니다, 라던가. 자주 쓰는 단어들이 생겨. 부탁, 진행, 확인, 정리, 참고 등등. 비슷한 얘기를 빙빙 돌려서 얘기하게 되기도 하고, 분명히 의도가 있는데 의도가 없는 것처럼 표현하기도 하고, 깔끔하고 단순하게 얘기하면 너무 딱딱하거나 건방진게 아닐까 걱정이 되고 예의를 차리려다보면 어렵게 쓴 것 같기도 하고 말이야."

"어쩔 수 없긴 하지만." L이 말을 이었다. "메일을 쓴다는 일도 하나의 문학이 될 수는 없을까."

"나도 그렇게 생각한 적 있어. 하지만 잘 안되더라. 예전에 학교 다닐 때, 교수님이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 과제를 메일로 받는데, 문창과 학생들이 보낸 메일을 보면 메일 자체에 문장력이 뛰어나서 감탄하게 된다고. 나는 대체 어떤 말을 쓰길래 그런 걸까 생각한 적이 있어. 그 생각을 해보면 나도 지금 메일을 쓰는 일에 문장력을 업그레이드 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 하지만 그게 잘 안돼."

"왜 그럴까." L 이 무심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M이 다시 시무룩하게 말했다. "실력이 없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해."

"설마." 

"아냐, 정말이야. 내가 참을 수 없이 많은 문장을 써내려간 적이 있다고 했잖아. 사실 그 때는 배설처럼 쓰던 거였어. 읽고 보고 듣는게 많았던 시절이다보니, 먹는게 많아서 싸는 게 많았다고 할까. 배설 이외의 목적을 가진 행위가 아니었던 거지. 그러다보니 누굴 만족시켜야한다는 의지도 없었고, 그걸 통해서 뭔가를 표현하고 싶다는 의지도 없었던 거야. 그러니까 마음 편히 써내려갔던 것 같아. 하지만 메일은 그런게 아니잖아. 실제로 주제가 있고 소재가 있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전형적인 방식이 있는데, 나는 그런 정형화된 틀에 맞춰 글을 쓰는 것에 너무 취약했던 거야. 결국 '글을 쓴다' 는 일을 잘 하는 사람은 아니었던게 아닐까."

"너무 자괴감에 빠지는 거 아니야?" L이 말했다. "굳이 그렇게 까지 생각할 일은 아닐 수도 있는데."

"그건 그래." M이 말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긴 든다니까."

그리고 M은 가만히 전화기 액정을 들여다보았다. 화면이 밝게 켜지면서 M의 손가락이 분주히 움직였다. L은 그런 M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메일 왔어?" L이 물었다.

"응." M이 대답했다. "잠깐만, 이거 하나만 보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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