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쌩전 May 25. 2017

소가 된 연인


 나의 연인은 너무 게을러서 소가 되어버렸다. 그는 늘 사랑에 게을렀다. 옛날 이야기에서는 일 하지 않고 놀기만 하는 게으른 사람이 소가 된다. 노동이 중요한 시절, 일하지 않는 건 여러모로 손해였고 죄였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사랑에 게을러빠졌던 나의 연인이 소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지금은 사랑이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이라서 그랬던걸까.


 그는 늘 사랑을 주는 척만하고 이기적인 연애를 추구했다. 마치 자기 자신을 버릴 수 있을 정도로 나를 사랑한다 말하고 행동했지만, 결국 중요한 순간에는 자기 편할 데로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버리고 내 약점을 잡아 탓하며 혼자서만 우리가 뜨겁게 사랑하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건, 자신도 모르게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뜨겁게 사랑하고있다는 핑계로 자신을 보호하는데만 급급한 연애였다. 처음에는 내가 사랑을 제대로 주지 못하고 있는걸까 하는 죄책감에 시달려 늘 그에게 미안했다. 목숨까지 바쳐 사랑하는 것 같았던 연애 초반에는 내가 질질 끌려가는 기분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어 발걸음을 맞춰주었다. 그러고나니 적나라하게 드러나서 날 것이 되어버린 앞서가는 그의 얼굴 표정과 시선의 방향을 발견하고 말았다. 자그마한 연못의 바닥을 긁어 흙을 잔뜩 일으켜서 속이 안보이게 해놓고, 원래는 깨끗한 물이었다며 자만하고 자랑하고 다녔던 것 같은. 정작 그는 전혀 깨끗하지 않았고, 뜨겁지도 않은 사람이었다. 그에게 마치 연애는 악세사리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그가 누군가 (사실상 상대는 중요하지 않다)에게 연애 감정을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연애는 시작됐고, 감정을 잘 받아주는 사람과는 더 오랜시간 만났다. 어쩌다 우연히 얻어걸린 나는, 신기하게도 그와 꽤 잘 맞아서 다른 이들에 비해 긴 시간 동안 만났던 것 뿐이고 그러다 보니 그의 이런 모습까지 보게 된 것이다. 그의 연애감정은 끊임없이 자라나는 쥐의 앞니 같았다. 어디든 갉아 없애야지만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그래서 그는 끊임없이 상대의 마음을 자신의 이기적인 연애관으로 갉아댔고 그것을 뜨거운 사랑이라 우기며 상대의 연애가 자신만큼 상처를 주지 못하는 것에 대해 불평했다. 이런 이기적인 사랑은, 결국 사랑이라 불릴 수 없는 것이 되었고, 연애에만 치중했던 그의 사랑은 너무나 게으르고 나태한 사랑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그는, 소가 되고 말았다.


 어느 날이었다. 그의 방에서 함께 밤을 보내고 일어났더니 원래 그의 몸집과 비슷한 크기의 송아지가 침대 옆에 서있었다. 잠이 덜 깬 상태로 얼른 옷을 주워입고 (맨 몸으로 짐승 앞에 서있는 것은 왠지 부끄러운 일이다) 혹시나 그가 남긴 메모가 있나 집을 샅샅이 뒤져보았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그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침대 맡에 흩어져있는 옷가지 속에서 울려대는 전화기를 찾을 수 있었을 뿐이었다. 망연자실하게 침대 끝에 걸터앉아 멍하니 소를 바라보고있다가, 혼잣말 하듯이 말을 걸어보았다. 헌데 고개를 끄덕끄덕 한다던가 음머어 하는 소리를 낸다던가 하면서 어떻게든 대답을 하는게 아닌가.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꼬치꼬치 캐물었더니, 아니나다를까, 소가 바로 그였다! 나와의 기억들, 그에 대한 기억들, 그리고 사람과 비슷한 지능, 겉모습이 다르고 말을 못하는 것뿐, 소는 분명히 그였다. 나는 그때부터 소가 된 연인과의 생활을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서 소를 연인으로 삼고 사는 것은 생각보다 행복했다. 물론 우리는 섹스가 없는 커플이 되기는 했지만 (그도 별로 원하지 않았다, 평소와는 다르게) 아주 조용하고 정이 깊은 연인이 되었다. 우리는 인근 교외로 집을 옮겼고, 일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와 그와 대화를 하면서ㅡ일방적이긴 하지만ㅡ시간을 보냈고 이내 잠이 들었다. 그는 가끔 나를 등에 태우고 집 주변 언덕에 올라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곤 했으며 보드라운 털로 나를 간지럽히고 커다란 눈으로 사랑을 속삭이고는 했다. 우리는 마치 반백년을 함께보낸 노부부처럼, 그렇게 영롱한 옥구슬같은, 은은하게 아름다운 사랑을 했다.


 나는 사람이었을 때의 그보다, 소가 된 후의 그와하는 연애가 너무 좋았다. 하루하루 행복했고,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 신경쓰이지 않았다. 마치 하루는 멈춰있는 것 같았고, 내일이 되어도 그저 오늘로만 느껴질 뿐이었다. 그는 나만을 사랑할 수 밖에 없었다. 그의 사랑은 더이상 불타오른다거나 뜨겁다는 말로 포장되지 않았고, 아주 맑은 계곡물처럼 깨끗하고 시원했다. 그의 게을렀던 사랑이 부지런해진 것은 아니지만, 아주 여유있고 넓고 조용해졌다. 이런 그의 사랑은, 너무나 향기로웠다. 인간이었던 그의 사랑은 아주 화려하지만 향기가 퍼지지 않는 동백꽃이나 모란과 같았다. 하지만 소가 된 후의 그에게 받은 사랑은, 너무나 진하고 행복한 향기가 퍼져서, 이 세상에 어느 꽃과 견주어봐도 그 향기의 반도 못따라올 것 같았다.


 그는 늘 조용했다. 같이 음악도 들었고, 내 이야기에 반대하지도 않았으며, 심하게 장난치지도 않고 투정부리지도 않고 나를 무시하지도 않았다. 나도 그를 더욱 깊이 사랑해주었다. 모든 그의 생활을 내가 책임지고 있으면서도 불평하지 않았고, 씻겨주었고 먹여주었으며 그와 함께 있는 것을 귀찮아하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 어떤 의무감도 없이 순수한 행복을 위해 시간을 함께 보냈으며,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눈이 부시도록 반짝이고있다는 것을 의심없이 굳게 믿었다.


 그런 평화롭고 아름다웠던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 날 아침이었다. 이른 아침,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오고 햇살이 창문으로 쏟아져들어와 방 안을 환히 비추어가기 시작할 때 쯤, 문을 두드리는 낯선 사람의 인기척에 잠이 깨고야 말았다. 이런 아침에 누구일까 하고 문을 열었을 때, 등 뒤에 눈부시는 햇살을 받으며 나체로 서있는 그를 발견했다. 아니,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온 그를 발견했다. 머리는 부시시하고 몸 곳곳에는 흙이 묻어있었다. 나는 여전히 가슴에 남아있는 향기로운 사랑으로 그를 가슴으로 껴안았고, 우리는 이내 서로의 몸을 씻겨주고 너무나 오랜만에 사랑을 나누었다. 아주 길고 진하게, 서로의 몸이 하나가 된 것처럼 숨결을 느끼고, 그동안 만지지 못했던, 입맞추지 못했던 곳을 여기저기 찾아서 정성들여 사랑을 새겼다.


 그리고 나는 그와 헤어졌다.


 우리는 서로 충분한 사랑을 했다. 교육받고 성장했다. 결국, 우린 변했다. 내가 그와의 섹스 후에 그에게 이별을 이야기하자, 그는 아주 놀란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얼마지나지 않아 굳이 변명하지 않아도 쉽게 스스로 이해하고 수긍했다. 우린 기뻤다. 서로가 충분히 사랑을 받았다는 걸 느끼게 되어서 행복했고, 이젠 그런 이기적인 사랑의 상처가 완벽하게 아물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아주 오랜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쩌면 나도 이기적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린 둘 다 사랑에 게을렀고, 둘 중의 한 명은 필시 소가 될 운명이었다. 그가 먼저 소가 된 것은 그저 운이 나쁜 탓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리는 연애하고 사랑했으며 변했다. 그는 나에게, 이젠 다시는 보지 말자고 이야기했다. 길가다가 마주쳐도 미소조차 날리지 말자고. 나는 납득했고 웃으며 포옹하고, 다시 한 번 섹스했다. 그리고, 영원히 헤어졌다.


 나의 연인은 소가 되었다. 그리고 소만이 연인으로 남았다. 그가 그립지는 않다.

 하지만 가끔 음머- 하는 소리가 환청처럼 희미하게 귓가에-



작가의 이전글 오색팔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