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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사람 Dec 28. 2020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프랑수아즈 사강

달콤하지만은 않다 해도.

프랑스의 천재 작가. 천재라는 단어가 이렇게 절묘하게 잘 어울리기도 흔치 않을 것 같다. 20대 초반의 나이에 이런 글을 쓰기 위해서는 어떤 것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며 자라나야 하는지 그녀의 과거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역시 천재는 타고난다는 말이 그냥 있는 얘기가 아니었다.

너무 옛날 일이지만 나의 10대는 너무 일차원적이다 못해 유아적이어서 맛있는 걸 (그래 봤자 핫도그나 떡볶이 아니면 KFC비스킷 정도니 제법 귀여웠네)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쉽게 화가 났다가 또 금방 신이 나고 즉흥적이면서도 가볍던 낮의 시간을 아까운 줄 모른 채 펑펑 소비해댔고 또 학생에게 주어지는 밤은 지루하고 길었기에 대부분의 시간은 라디오를 듣거나 편지를 쓰는 등 깊은 생각 같은 건 전혀 하지 않았던 거 같다. 지금도 별로 다르지 않지만.



샤갈의 그림과 이질감없이 어울리는 느낌적인 느낌.



사강의 글에 샤갈의 그림을 조합한 표지는 클래식한 느낌이지만 완벽한 파라다이스 같아서 예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주인공인 폴로부터 정신분석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 시몽은 정서적인 면에서는 나와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고 아주 잠깐 동안 생각했다. 사강의 책 안에서 시몽처럼 솔직하게 생을 이어나가는 사람을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내가 가질 수 없고 나는 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세계를 지켜보는 일이 그게 좋아서 예전부터 소설을 좋아하는 것 같다.

프랑스의 청년들이 인생을 대하는 방식은 지금의 우리와는 다르긴 한데 어디가 어떻게 다른지 설명하기에는 애매한 느낌이다. 서정적인 하루들이 조용하게 흘러가는 고전영화를 보고 있는 착각에 빠졌다. 지나치게 과장된 자유를 추구하는 그래서 더 매혹적인 사강의 소설적인 세계로 더 깊이 빠져들기 위해서는 작가에 대해 더 알아야겠지 싶었다.

사강은 어린 나이에 성공해서 굉장히 사치스러운 삶을 살고 도박과 마약에 중독되어 결국엔 파산을 했다고 하니 한편으론 극단적인 작가의 모습이 작품에도 슬쩍 묻어있는 것 같다. 심각한 빚더미에 올라 법정에 섰을 때는 김영하 작가가 쓴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는데 정말이지 지금으로 말하자면 걸 크러쉬쯤 되려나. 말을 이어나가지 못할 만큼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그에게 욕설을 퍼붓고 자기 잔을 그의 얼굴에 던지고 싶었다.


하지만 이렇게 뒤얽힌 삶 속에서 그런
정직성만으로는 누군가를 제대로 사랑하고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없는 게 아닐까 하고 그녀는 자문했다.




폴은 사랑하는 그대 로제를 위해 차라리 창녀가 되고 싶다고 생각을 한다. 사랑의 모양도 참 가지가지 다양하며 내가 알지 못하는 더 많은 형태로 어디에서든 끊임없이 존재하고 있겠지.

모순적이지만 매력적인 주인공들을 보며 우리의 현실도 소설 같다면 좋겠다고 한심하게도 아무도 없는 곳에서 구조를 기다리게 된다. 매일이 드라마틱할 수는 없겠지만 어떤 날은 너무나도 비현실적이라는 착각이 들 만큼 눈을 비비고 볼을 꼬집어 볼 수 있을 정도의 환상 같은 게 필요한 순간들에 잠시 잡을 수도 없는 그것들을 붙잡고 있을 수만 있다면 사랑이라는 거 절대로 시시하지 않다고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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