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좌표에 대한 기록.
인간은 도대체 어떤 존재인지를 또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충격적인 소설임에는 틀림없다. 문학적 가치가 인정되어 상을 받고 아마존 고전 베스트셀러 1위라는데 여러 가지 방향으로 사고의 폭을 넓혀주는 소설이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검증된 책 안으로 들어감으로써 자신에 대한 기대치를 높이려고 노력하는 게 아닐까 싶다.
스케치북을 온통 까맣게 칠해버리고 싶은 날에 어울리는 책으로 아마 20대에 도서관에서 빌려서 조금 읽다가 다 읽지 못하고 반납했던 기억이. 이번엔 기필코 끝을 봐야지 생각하고 시작을 했는데 내용이 무거워서 그런지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었다. 나한테는. 그런 이유 때문에 사람들이 읽지 않고도 읽었다고 거짓말하는 책 1위에 선정될 수 있었던걸 지도. 하버드생이 가장 많이 읽은 책이라고도 하니까 괜히 더 어렵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하하. (총•균•쇠는 읽을 엄두도 나지 않는 걸)
소설 안에서만 일어날 법한 일들이 21세기인 지금에 현실과 맞닿은 부분들이 있다는 생각에 울적해지고 그러다가 종종 멈추게 되었다 읽는 행동을. 모두들 쉽게 이 책을 수월하게 넘겼다면 지성인이라 가능한 게 아니었을지 싶고 머리를 장식품으로 사용 중인 나는 어렵고 의아하고 괴로웠다. 총 두 권으로 이루어진 책이지만 1권의 반 정도를 읽었을 땐 작가가 의도하는 것이 뭐지 궁금하기도 해서 중간에 평론이나 서평 등을 찾아볼까 고민하기도 했지만 찾아보지는 않았다. 오로지 내 안의 힘으로만 읽어내고 싶었다. 누가 보면 법전이라도 읽는 줄 알겠지만 말이야.
윈스턴은 이상주의자이기에 목숨을 걸고 자신만의 일기를 써내려 갈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살아가는 게 무의미하기 때문에 생을 내걸고 무심하리만치 꾸준하게 왜곡된 진실을 기록하는 자로 남고자 한다. 사실을 전하려는 자들이 밑바닥에서 힘겹게 그들의 생을 유지해나감으로써 한 나라가 그 안의 사회가 오늘을 지켜낼 수 있는 건 소설 안쪽의 세계이거나 아니거나 비슷해 보인다. 나쁜 일이 반복되다 보면 그에 대해 무뎌지게 되고 결국엔 별로 아무렇지 않게 느껴지고 자유를 박탈당한 삶이 원래의 생인 것처럼 그렇게 살아진다는 게 현실과 좀처럼 구별이 가지 않아서 책장을 넘기는 마음이 가볍지 않았다. 또한 지적인 열등감에 깊이 말려들어가고 말았다 당연하리만치 대범하게.
현대 생활의 진정한 특징은 잔인함이나
불안정이 아니라 그 자체의
삭막함, 추악함, 무감각이다.
프롤레타리아와 외부 당원들의 기존 사상과 이념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본질적인인 욕망을 차단하려는 지도세력을 뛰어넘는 일은 만만치 않은 일이지만 어디에든 다른 길을 가려는 사람은 존재하기 마련이고 사람은 결국에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되어있다. 사람을 지배할 수는 있어도 그의 마음까지 움직이는 일은 마법사 정도는 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1984는 판타지이지만 마법을 부리거나 주술을 외우는 심령술사가 등장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오로지 인간에게 내재되어있는 힘으로 그 세계를 깨어내고 부수고 나와야만 한다. 그러다가 내가 도리어 납작해지다 자멸한다고 해도 이런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을 주저하지 않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이들이 있기에 우리가 속한 우주는 어떻게든 조금이나마 괜찮은 방향으로 움직이게 되는 거라고. 책을 다 읽고 드는 생각은 저항을 하던 굴복을 선택하건 간에 상황이나 체제에 순응했다고 해서 그 사람을 마냥 비난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과연 저항만이 백 퍼센트 정답이라고 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낮은 곳에 위치할수록 저항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면 저항하지 않았다고 비난받을 수 있을지.
빅브라더가 진리일지 허상인지는 어느 시점부터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다만 실체에서 멀어질수록 그리고 진실의 반대편에는 본질적인 불행과 실패만이 가득하고 만연하게 존재할 뿐이었다. 누군가 현대 생활은 찬바람을 정면 돌파하는 거라고 했던가 아니면 측면 돌파라도 해보아야 하는 건지도 이왕 태어난 김에. 글쎄 허무한 돌파를 지속해야 하는 걸까. 이성적으로 판단하며 미래를 대비해야 하지만 중요한 듯 보이는 일은 실질적으로 하나도 그렇지 않았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결국엔 어느 순간 뒤통수를 치게 되는 일이 많아질까 봐 소용없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어제를 바라보며 과거를 다그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