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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사람 Dec 27. 2020

이방인, 알베르 카뮈

시공간을 초월하는 세계를 향해.

어쩌면 우리 모두가 단면적으로는 부조리하다고 생각했다면 너무 큰 착각이었을까. 사실 너무나 유명해서 말이 필요 없는 책. 어디서든 자연스럽게 분위기에 녹아들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제법 시커멓고 우울해서 (표지도 내 거는 검은색) 그 때문에 더 마음에 쏙 들지만. 우리는 이방인과 현지인으로 나누어진 행성에 각각 존재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이방인들은 서로를 알아채기도 하지만 부러 모른척하기도 한다.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이방인들의 공통된 특징인 것 같았다. 섞일 수 없다는 걸 알지만 가끔은 함께이고 싶기도 하고 영원히 혼자이고 싶기도 한데 그 안에 교집합은 커다랗게 구멍이 뚫려 아무것도 담을 수 없다.


이방인, 알베르 카뮈



별이 반짝이는 하늘을 보며 이 세상의 다정한 무관심이 처음으로 내 마음을 사로잡는 것을 느꼈다. 이 세상이 나와 다름없는 형제 같았으니, 나는 그동안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다. 모든 것이 성취되고 내가 사형 집행을 받게 되어 많은 구경꾼들이 증오에 찬 아우성으로 날 맞아주기를 바라는, 내게 남은 그 소원이 이루어질 때, 나는 비로소 외롭지 않으리라. (이방인 본문 중에서)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았다고 해서 담배를 피웠다고 해서 슬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 실존에 부재하는 존재에 대해 재판할 권리를 가진 사람들이 가득한 곳에서는 강렬한 햇빛 때문에 살인을 저지를 수 있다는 건 도덕적인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나는 왠지 정말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주인공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시각과 장소 당시 분위기가 묘하게 맞물린다면 되돌릴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게 될 수도 있는 게 아닐까 싶어서. 아마도 내 안에서 조금씩 나를 갉아먹고 있는 어떤 것들이 한꺼번에 폭포처럼 밀려오기 시작하면서부턴 걷잡을 수 없게 되어 버린 채로 현실세계와는 단절되어 무형의 영원을 향해 시간이 멈춰버리고 모든 건 결코 그 이전으로 되돌아가지 못한 채 결빙되어버린다. 그렇게 되면 절반 정도는 시간을 초월하는 세계에 도달했다고 보아도 무방해 보였다.

우리는 저항하려 해도 현실이 낯설고 마음 붙일 곳은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모든 걸 제쳐두고 매달려하고 싶은 일도 없고 하루 종일 바라보고 있기만 해도 흥미로운 일들은 어디론가 날아가버렸고 손안에 잡히는 듯한 네모난 세상 속으로만 의미 없이 꾸역꾸역 들어가고 또 들어간다. 더 이상 재미있는 건 현실세계에서는 점차 불투명해져 가기에 다른 즐거움을 찾아 몸부림치고 있다. 그러다 여기도 저기도 속하지 못하고 붕떠버린 채로 공기도 없는 공간을 애처롭게 떠다니고 만다. 숨을 쉴 수가 없다고 생각될 때쯤 자비로운 누군가가 한 줌의 공기를 넣어주면 그로 인해 다시 하루를 버티고 마는 계속해서 어딘가의 끝을 기다리는 삶이 가까이 오고 있다. 의도치 않게 우리는 반항적으로 나아가는 것이 어느새 옳은 방향이라고 느낀다.

사는 게 제법 무섭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 우리는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알고 있는 자도 알려주는 이도 없기에 외롭고 쓸쓸하지만 목적이 없는 여행을 계속해야만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시점에는 우리에게 어떤 모드가 필요한지 알 수 있게 되는 순간이 꼭 올 것만 같다. 과분하게 희망차 보일 수는 있겠지만 그럼에도 말도 안 돼 는 내일을 믿어야만 한다. 그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한계이기에.




이방인이 없는 행성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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