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생을 감으며.
눈을 감고 열 걸음을 걸어야지 하고 내디뎌 보았다. 단 세 걸음에 존재하지 않는 실체와 그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저절로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나약함이란 실질적으로 몹시 대단해서 언제나 나를 이런 상황으로 몰고 간다. 아무리 애를 써보아도 이 정도면 행복하지 않아라고 반문해보아도 솔직히 도무지 행복이라는 감정을 좀처럼 모르겠다. 눈앞에 보이는 것 같기는 한데 도저히 잡을 수는 없는 뜬구름 같아서. 그렇다고 불행한 것도 아닌데 희한하다 희한해. 행복이란 건 철저하게 경험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닐까. 어린 시절의 나는 굳이 갖고 싶은 게 없었는데 그건 갖고 싶은 게 생기면 가지지 못했을 때의 실망감에 대해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던 때문이 아닐까. 순수하고 맑기보단 음흉스럽고 영악스러운 아이에 가까웠을지 싶다.
너는 늘 내가 작동하는 원리를 너무나 잘 알아서 고칠 수 있을 정도의 범위 내에서 줄곧 망가트렸다. 그리고는 다정하게 나를 고쳐주고는 또다시 망가트리기를 반복하고 마는 것이었다. 난 친절하게 망가져만 갔는데 다시 고쳐질 텐데 상관없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뭐든 한계는 있는 법인지라 오작동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줄곧 웃었다. 별일 아닌 일에서도 실소부터 박장대소까지 대체적으로 종잡을 수 없게 되었다. 세상은 너무 우스웠고 한도 끝도 없이 우스워졌다. 결국 너는 나를 두고 다니기 시작했다. 점잖게 미소 지을 수 있는 범위의 다른 것을 찾아 나섰고 나는 곧 전원이 꺼진 채로 옷장 구석에 처박혔다. 그곳에서 낡은 옷가지며 가방들 그리고 좀약과 함께 점점 잊혀갔다. 어느 날 너는 네가 살던 집에 방화를 했고 우리는 모두 함께 불타버렸다. 애초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내가 벼락같이 망가지고 사라지면 누군가는 최고가 되거나 미약하거나 아니면 대단하게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겠지.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누군가를 위해 좀 더 나빠지는 쪽을 선택하기로 한다. 아니 나 같은 거 증발해버린다 해도 세상은 1도 안 바뀔지도 몰라 역시. 사람들은 제법 아무렇지 않게 나아가고 있다. 집 한 채가 불타올라 온 데 간데 없어지고 말았지만 그들은 그러려니 하고 또 내일을 살아내고 만다. 살아내기 위한 사명감을 띤 채 그렇게. 짙게 칠해진 불안에 발목을 붙잡힌 채로 다들 보이지 않아도 기어이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전부 모두 타버린 후에도 지독하고 고요하게 외로움을 견뎌야 하는 게 그런 게 생이라는 현실이라면 더 일찍 사라져 버릴걸 그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