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과 진심 사이.
언니에게는 언니가 있고 나에게는 언니가 있지만 또 없지. 언니는 원래부터 언니가 아니었고 또 이제 더 이상 나의 언니가 아닐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부러는 아니지만 어쩌면 사는 게 고달프다는 핑계로 언니를 명백하게 지루하게 만들고 언니는 제법 슬퍼졌어. 누군가를 실망시킨다는 건 여전히 무서운 일이고 난 언니에게 솔직하고 당당하고 자랑스러운 동생으로 남고 싶었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어.
그건 노력으로 되는 일이 아니더라. 누군가에게 좋은 기억으로만 남겨지는 일이 주변에서 알게 모르게 훼방을 놓기도 하는 거 같아. 언니는 웃으며 그건 너의 피해망상이라고 할 거지만 예전에는 그런 거 믿지 않았는데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들도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이 점점 더 많아진다는 걸 분명하게 느끼는 순간들이 있어. 난 분명 직선으로 걷고 있었는데 한참을 걷다 뒤를 돌아보니 내가 걸어온 길이 곡선이더라고 처음엔 너무 놀라서 눈을 감았다가 뜨기도 해 보았지만 곡선을 따라서 내가 굴러왔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어.
글쎄 난 컴퍼스에 달려있는 연필 같아서 아무리 걷고 달려도 언제나 제자리에서 원을 그리는 것과 같아. 그건 누가 날 꺼내 주기 전에는 멈추지 않고 계속될 거야. 원을 그리는 일은 너무 쉽기도 하고 어렵기도 해. 동그란 원을 잘 그리는 동그란 사람이 내가 될 가능성이 있는지 스스로 점을 쳐보기도 했어. 언니 탓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차라리 동그란 원을 그리는 일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이라고 언니가 얘기해주었다면 나는 돌멩이같이 살았을지도 모르겠어. 어쨌든 난 도형을 그리는 일이 크게 대단한 일이라고 최선을 다해 나 자신을 타일렀지.
결국 나는 언니에게 거짓을 일삼고 다양한 핑계를 대며 모든 상황에서 유연하게 빠져나가려 했지. 그게 나를 지키는 일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어. 어항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가 있고 가끔은 손을 넣어서 물속을 휘젓기도 했거든. 난 내가 있는 곳이 바다라고 상상하며 모든 걸 견디어야 했어. 그냥 모든 게 꿈이었으면 했어. 내가 바다 위에 비친 구름이어서 실제로는 구름조차 될 수 없다는 게. 비참해 보이겠지만 실은 별로 아무렇지 않아. 겨울에도 바다는 얼지 않으니까. 난 모든 게 점점 무감각해져 가나 봐. 언니 그래도 언니를 만나서 너무 다행이었어 진심으로. 난 언니의 진심을 진실을 고스란히 믿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