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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겉멋든 나에게서 받은 숙제

— 스탠포드 MBA 잘 떨어졌다고 생각하는 40대의 내가 하고 있다

by 김희선

2000년대 중반, 나는 스탠포드 MBA 지원서를 붙잡고 며칠째 씨름 중이었다.

여러 질문에 각각 에세이를 써야 하는 다른 MBA들과 달리 스탠포드는 간지나게도 질문이 딱 하나였다.

“What matters most?” (진짜 간지!)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조금 멋을 부렸다.
이왕이면 ‘성숙하고 세련된 사람처럼’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마 “Making meaningful impact” 같은 말을 썼던 것 같다.
그게 그때 내가 생각할 수 있었던 제일 멋있는 문장이었다.


물론 떨어졌다.
(지금 생각해도 잘됐다.
그때의 나는 아직 ‘왜’를 설명할 준비가 안 된 사람이었다.)




그 후로 20년 넘게 테크 업계에서 구르고,
스타트업을 만들고, 망하고, 다시 만들고,
몇 번은 남의 회사에서, 몇 번은 내 회사에서
"의미”라는 단어를 수도 없이 꺼내며 살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화려한 단어들 사이에서
내 마음은 점점 더 흐릿해졌다.
팀을 이끌고, 지표를 보고, 펀딩을 받고,
매일같이 ‘의미 있는 일’을 하려 노력했는데
어느 날 문득, 내가 진짜로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더라.


그때 떠올랐다.
20년 전 그 질문. What matters most?




스탠포드의 에세이 질문은 결국
MBA보다 훨씬 오래가는 숙제를 남겼다.
지금도 나는 그 질문을 계속 써먹고 있다.
다만 요즘은 지원서가 아니라
내 퍼스널 플래닝 노트 위에서.


매년, 매 분기, 심지어 매달
그 질문에 다시 답을 써본다.
어떤 해에는 ‘성취’,
어떤 해에는 ‘건강’,
어떤 해에는 ‘평온’이 1순위였다.


그리고 이제는 안다.
정답이 자꾸 바뀌는 게,
틀린 게 아니라 살아 있다는 증거라는 걸.




젊었을 땐 인생의 방향을 ‘한 번 정하면 되는 것’이라 믿었다.
지금은 안다.
계속 업데이트하고, 다시 보정해야 한다.


퍼스널 플래닝은 그걸 가능하게 해주는 루틴이다.
완벽히 지키기 위한 게 아니라,
다시 정렬(alignment)하기 위한 시간.


내가 어디쯤 와 있는지,
지금의 ‘중요한 것’이 여전히 그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
그걸 묻는 시간이다.




스탠포드 MBA는 떨어졌지만,
그 질문은 여전히 내 인생의 핵심 커리큘럼이다.
20년이 지나도,

나는 여전히 그 에세이를 쓰고 있다.
이번엔 어드미션용이 아니라,
내가 나에게 매년 갱신하는 삶의 버전 관리 로그로.


What matters most — and why?
그건 여전히,
내가 하루를 살아내는 가장 개인적인 플래닝 질문이다.


#WhatMattersMost #퍼스널플래닝 #자기확신 #MePlan #LifeDes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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