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는 봄날 같은 것

일단 봄을 즐겨도 되요

"퇴사하고 나서 뭐 할 건데요?"

퇴사한다고 하면 이 질문 많이 받는 건 인지상정.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 질문 때문에 퇴사를 못 한다. "다음에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계획이 없어서", "막막해서".

근데 왜 퇴사하고 나서 꼭 뭔가를 '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

퇴사하고 나서 꼭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바로 이직 준비해야지, 공부해야지, 자격증 따야지, 창업 준비해야지, 포트폴리오 만들어야지.


아니다.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

아니, 정확히는 '생산적인' 걸 안 해도 된다.


그냥 쉬어도 된다. 늦잠 자도 된다. 낮에 카페 가도 된다. 영화 보고, 책 읽고, 산책하고, 친구 만나고, 맛있는 거 먹고.

그게 퇴사 후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이다.


봄날 평일 오전 산책

3월 평일 오전 11시.

공원에 사람이 없다. 벚꽃 피기 시작했다. 목련도 피었다. 개나리도 노랗다.

벤치에 앉아서 커피 마신다. 햇살이 따뜻하다. 바람이 살랑살랑 분다. 새들이 지저귄다.

이게 퇴사 후 처음 느끼는 자유다.


평일 낮인데 회의실에 앉아 있지 않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지 않다. 상사 눈치 보고 있지 않다.

그냥 벤치에 앉아서 봄바람 쐬고 있다. 아무 생각도 안 하고. 그냥 커피 마시고. 햇살 즐기고.

이게 얼마 만인가.


가벼운 것, 즐거운 것, 휴식이 되는 것

퇴사하면 여유가 생긴다. 시간이 생긴다. 에너지가 생긴다.

그걸 바로 '생산적인' 데 쓰려고 하지 말고, 일단 나한테 쓰세요.


가벼운 것, 즐거운 것, 휴식이 되는 것.

평일 낮 영화관 가기. 아무도 없는 상영관에서 팝콘 먹으면서 영화 보기. 웃기는 영화, 가벼운 영화, 마음 따뜻해지는 영화.

책방 구경하기. 급하게 뭘 사려는 게 아니라 그냥 천천히 둘러보기. 예쁜 표지 보고, 첫 페이지 읽어보고, 마음에 드는 책 몇 권 사서 카페 가서 읽기. 창가 자리에 앉아서 오후 햇살 받으면서.

시장 구경하기. 평일 오전 시장은 한가하다. 과일 가게에서 딸기 맛보고, 꽃집에서 튤립 사고, 빵집에서 갓 구운 빵 사고. 집에 가서 창문 열고 꽃병에 꽃 꽂고 빵 먹기.

요리해보기. 시간 없어서 못 만들었던 거. 손 많이 가는 거. 봄나물 비빔밥, 딸기잼, 레몬청. 레시피 찾아보고, 마트 가서 장 보고, 천천히 만들어보기. 음악 틀어놓고.


내가 안 해본 것들

퇴사 후에는 평소에 안 해본 것들 해보는 것도 좋다.


도자기 만들기. 흙 만지는 게 이렇게 재미있는지 몰랐다. 물레 돌려서 컵 만들고, 색 칠하고, 굽고. 내가 만든 컵에 커피 마시는 기쁨.

그림 그리기. 수채화 클래스. 봄꽃 그리기. 못 그려도 괜찮다. 물감 번지는 거 보는 게 재미있다. 색깔 섞는 게 재미있다.

베이킹 클래스. 쿠키 만들기, 마들렌 만들기, 스콘 만들기. 오븐에서 나는 냄새. 갓 구운 거 먹는 행복.

플라워 클래스. 꽃다발 만들기, 꽃바구니 만들기. 봄꽃으로. 튤립, 프리지아, 라넌큘러스. 집에 가져가서 창가에 놓기.


"이거 배워서 뭐해", "돈이 되는 것도 아닌데" 하지 말고.

그냥 재미있어 보여서, 해보고 싶어서, 봄이니까, 그 이유로 충분하다.


일상이 아닌 것들

전시회 가기. 평일 낮은 한산하다. 천천히 둘러보기. 좋아하는 작품 앞에서 오래 서 있기. 뮤지엄숍에서 엽서 사기. 카페에서 여운 즐기기.

동네 탐방. 가보고 싶었던 동네. 성수동, 연남동, 을지로. 평일 낮에 천천히 걸어보기. 예쁜 카페 들어가기. 맛있는 빵집 들어가기. 골목 구경하기.

친구 만나기. 퇴근 후 저녁이 아니라 낮에 만나기. 브런치 먹고, 산책하고, 카페 가고, 또 다른 카페 가고. 시간 제약 없이 수다 떨기.

자전거 타기. 한강 따라 쭉. 벚꽃 터널 지나가기. 바람 맞으면서. 아이스크림 사 먹고. 잔디밭에 누워서 하늘 보기.


봄은 짧다. 퇴사했으면 봄을 즐겨야 한다.


그러다 보면 생각이 정리된다

신기한 건, 이렇게 쉬다 보면 생각이 정리된다는 거다.

"다음에 뭐 할까" 책상 앞에 앉아서 고민하면 답이 안 나온다. 근데 벚꽃 보면서 산책하다가, 카페에서 커피 마시다가, 영화 보다가, 요리하다가, 꽃 만지다가. 그때 생각이 떠오른다.


"아 나는 이런 게 좋구나", "이런 거 할 때 즐겁구나", "이런 삶을 살고 싶구나".

여유가 생각을 만든다.


회사 다닐 때는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주말 이틀은 숨만 쉬기도 바빴다. 근데 퇴사하고 나서 시간이 생기고, 에너지가 생기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그때 진짜 생각이 된다.

봄바람 맞으면서, 햇살 받으면서, 꽃 보면서.


생산적이지 않아도 괜찮다

퇴사하고 나서 한 달 동안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다.

이력서 안 써도 된다. 공부 안 해도 된다. 자격증 안 따도 된다. 창업 준비 안 해도 된다.


그냥 쉬어도 된다. 늦잠 자고, 산책하고, 영화 보고, 책 읽고, 친구 만나고, 꽃 사고, 맛있는 거 먹고.

그게 당신한테 제일 필요한 거다.


몇 년 동안 회사 다니면서 쌓인 피로, 스트레스, 번아웃. 이거 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한 달도 짧다. 두 달, 세 달 쉬어야 할 수도 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이제 뭔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시작하면 된다.


퇴사는 봄날 같은 거다

퇴사를 '다음 직장 가기 전 짧은 공백'으로 생각하지 말고, '내 인생의 봄날'로 생각하면 좋겠다.

계속 겨울처럼 차갑게 달려왔잖아. 대학 졸업하고 취업하고, 회사 다니고, 승진하고, 이직하고. 쉴 틈도 없이 달려왔잖아.

이제 봄이 왔다.


퇴사하고 나서 뭐 할 건지 걱정하지 말고, 일단 봄을 즐기세요. 벚꽃 보고, 햇살 쐬고, 봄바람 맞고, 가벼운 것, 즐거운 것, 휴식이 되는 것 하세요.


여유되는 대로 내가 안 해본 것들, 일상이 아닌 것들, 내가 즐거운 것들 하세요.

그러다 보면 생각이 정리되고, "다음엔 이걸 해야지" 하는 게 보입니다.


퇴사하고 나서 뭐 할 건데요?

일단은 봄을 즐기려고요. 그게 제일 먼저 할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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