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마음이 숨 쉬던 자리
초등학교 4학년 즈음이었다.
국어 시간에 선생님이 말했다.
“도서실에 가서 국어사전 한 권씩 가져오세요.”
아이들은 달리듯 도서실로 향했다.
나는 늘 그랬듯 조금 늦었다.
도착했을 땐, 책장은 이미 비어 있었다.
그래도 혹시 남은 책이 있을까 싶어
구석을 뒤지고 있을 때,
한 남자아이가 다가와
자기가 들고 있던 사전을 내밀었다.
나는 그때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냥 줬으니 받았다.
고맙다는 말도, 왜 주는지 묻지도 않았다.
그리고 혼자 교실로 돌아왔다.
그날의 장면이 오래 남았다.
시간이 지나서야 알았다.
그건 단순한 호의가 아니라,
마음의 손짓이었다는 걸.
그 아이는 책을 빌려준 게 아니라,
‘기다려주는 마음’을 건넨 것이었다.
그 마음을 나는 너무 늦게 읽었다.
사소한 배려는
그때는 작고 가볍게 느껴지지만,
기억 속에서는 오래, 무겁게 남는다.
배려는 지나가는 일이 아니라,
남아 있는 온도다.
그 온도는 마음이 열릴 때 비로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