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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훈 Apr 21. 2017

사랑의 역설

2017.04.21


인간은 상대를 알기 때문에 사랑하지만 상대를 모르기 때문에 사랑에 빠진다. 내가 애정 하는 상대방의 모습을 보고 호감과 호의를 갖고 저 사람과 함께하고 싶다는 욕구를 느끼며 또한 나와 같은, 또는 나에게 없는 모습을 상대방의 모습을 보며 그 사람을 좋게 느끼고 닮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내가 호감을 느끼는 이 사람이 어떠할 것인지 궁금해 함께 만나 알아가고 싶어 한다. 이는 기본적으로 모두 예측이고 뭉뚱그린 내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상대의 모습이며 동시에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상대에 대한 궁금증이다. 나와 동질성을 가진, 또는 이질적인 모습을 가진 이 사람이 궁금하고, 부분으로 표출되는 모습들에 호감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만난 사람은 서로에 대한 애정을 느껴 잘해주고자 한다. 상대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은 것은 인간의 당연한 바람이며 내가 호감을 느끼는 사람, 내게 호감을 보이는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기 때문에 가능한 나의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내가 모르는 상대방의 모습에 대한 자신의 예측이 틀리지 않았음을 다행이라 여긴다. 그렇게 인간은 각자의 머릿속에 나와 연애하는 이 사람에 대한 모습에 색을 칠해간다.

하지만 인간은 관계가 좋아질수록 자신을 더 보여주고 싶어 한다.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높아질수록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않았던 나의 모습, 때로는 내가 싫어하고, 슬퍼해하고, 안타까워하는 나의 모습을 내가 사랑하는 이 사람이 받아주기를 바란다. 그렇게 자신을 점차 오픈하고 자신에게, 그리고 상대방에게 솔직해진다. 뭉뚱그려진 모습들이 둘 사이에 훤히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상대방을 위해 잘해주고 좋은 모습을 보이고자 했던 욕망은 나를 알아달라는 욕망에 휩쓸려 뒤로 밀려난다. "나는 분명 네가 좋고, 너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지만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의 솔직한 모습을 보여준다." 
라는 역설적인 욕구가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서로는 서로가 보이는 모습에 당황한다. 내가 좋아하는 이 사람은 내가 그동안 그려왔던 모습이 아니게 된다, 나와 같아 좋아했던 모습은 나와 달랐고, 나와 달라 좋아했던 모습은 나와 같아진다. 내가 좋아하는 이 사람이 나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한 욕망이지만 서로를 노출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많이 알수록 실망은 늘어나고 좋아함은 사그라든다.

많은 것을 노출하고 서로 많이 아는 사람끼리 사랑에 빠지는 경우가 적은 이유도 비슷하다. 나는 이미 상대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고 그 사람이 궁금하지 않다. 그 대화의 과정에서 상대방에 대한 애정이 생기지만 나와 같고, 또는 나와 달라 궁금하며 함께 지내고 싶어 하는 에로스적인 애정과는 모양을 달리한다. 많이 알고 느낀 이 사람이 인간으로서 좋고 나와 어느 상황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파악한다. 나와 삶을 공유할 수 있는 애인과는 모양을 달리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내가 좋아하고 궁금해했던 이 사람이 더 이상 궁금해지지 않는다. 그리고 궁금증이 줄어들면 함께 하며 좋은 부분 외에는 굳이 함께 하지 않고자 한다. 사랑의 불은 그렇게 사그라지고 꽃은 저문다. 그리고 어느덧 그를 깨닫는 순간 내 사랑과 상대에 이질성을 느낀다. "내가 이 사람을 왜 사랑하고 만나고 있지?" 그렇게 사랑은 끝난다.

결국 사랑이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모르는 것은 모르는 채로 놔둬야 한다. 이 사람이 모든 부분에서 나와 함께 할 수 없음을 인지해 오해하지 않아야 한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할 수 있도록 지켜보아야 한다. 상대가 나를 알아주기를 바라고 나를 표현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이 사람이 나의 모든 부분을 알아주기를 바라서는 안된다. 서서히 드러나는 이 사람의 모습에 실망하지 않기 위해 상대방을 그대로 바라보아야 한다. 이 부분은 이렇게 의미가 있고, 저 부분은 저렇게 의미가 없는 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이 모습을 이렇고, 저 모습은 저렇다는 채로 받아들여야 한다. 인간은 모든 부분을 함께 하지 못하며 함께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그렇지 못하다고 하더라도 내 옆에 있는 이 사람은 충분히 사랑스럽다. 너와 나는 언제나 함께 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더 소중하고 빛난다. 이 소중함과 사랑스러움의 시선을 유지할 수 있다면
두 사람은  함께 하지 않으면서 언제까지나 함께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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