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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훈 May 28. 2017

'노무현입니다'를 보고

2017.05.28


대통령 노무현을 현명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언론과 싸우고, 야당 여당 가릴 것 없이 악의를 품고 나오는 사람들을 찍어 누르거나 압박하며 처리하지 못하는 모습이 어리석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화를 조절하지 못하고 마음속에 분노를 품고 살며 논란이 될 것을 알면서도 그에 해당하는 말을 던져야만 하는 대통령 노무현이 좋지 않았다. 좀 더 현명한 사람이 대통령으로 있어주기를 바랐다. 요령 있게 자기 앞가림을 하면서 더 많은 정책과 세상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있기를 바랐다. 내가 내 주변 사람들을 모두 컨트롤할 수 없듯이 대놓고 공격을 당하는 정치인은 주변의 모든 것에 흠결을 잡혀 공격당하게 되어 있다. 때문에 정치인은 필요할 때는 주변을 끊고 리스크를 줄여야 한다. 그래야지만 정치를 더 잘 돌릴 수 있고 자신이 바라는 바를 이루어나갈 수 있다. 정치인은 그래야만 하고,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분명히 노무현 대통령은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그런 딜레마 때문이었을까. 노무현 대통령은 재임 시절에 많은 부분에 공격을 당했다. 뜻을 관철시켜나가야만 하는 부분과 정치인으로서 택해야 하는 역할의 괴리가 있었다. 정치인으로 위협적이거나 존중받지 못하고 언론과 의원들에 적대적인 모습 때문에 모든 사람들의 공격과 지탄을 받았다. 그래서 본인의 생각과 다르기 진행된 법안이나 정책도 많았다. 대통령 노무현은 자기 편과 남의 편 모두에게 공격을 당했다. 요령 있는 사람이었으면 괜찮았으련만, 대통령 노무현은 괜찮은 길을 택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인간 노무현은 화가 많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화로 인하여 일을 그르치는 사람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화는 바람직하지 않은 것들을 향했고 인간과 인권을 무시하는 사람들과 적폐에 분노했다. 인간 노무현은 진심을 담아서 하는 행동과 말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대화하고 논의를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를 공격하는 사람들은 인간과 국민, 그리고 그를 기만하는 사람들이었다. 진심으로 인간을 대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그는 세상을 바르게 만들어나가고자 했다.

그는 현자 같은 사람은 아니었다. 현자라면 모든 사람을 끌어안고 다 이해하고 넘어가고자 하는 형태를 취했을 테지만 그는 그 정도로 마음의 여유를 가진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불의를 보며 화를 냈고 시스템과 구조를 개혁해 세상과 인간을 바꾸어 나가고자 했다. 하지만 세상은 그런 비주류의 개혁자에게 협조적이지 않았다. 그의 적은 너무나 많았고 그는 그를 감당할 수 없었다. 인간 노무현은 타협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고 그를 위한 삶을 살지 않았다. 하지만 정치인 노무현과 대통령 노무현은 타협을 해야만 했다. 때문에 그의 얼굴에는 사랑스러움과 안쓰러움이 함께 묻어 있다.

모든 사람과 세상을 감싸 안을 수 있는 현자는 세상에 있어야 한다. 그러한 존재가 말하는 모든 것에 대한 이해는 더욱 큰 사랑을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삶과 맞닿은 곳에서 거세게 화를 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분노해야 할 곳에 분노하고 관철해야 할 곳에 관철하며 이끌어 나가야 하는 곳에서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사람, 모든 것을 끌어안은 현자와 같은 사람이 아닌, 더 소중한 것을 위해 싸워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런 사람이었다. 보통 사람과 한 명의 시민을 위해 함께 울어주고 화를 내 줄 수 있는 사람, 본인이 괜찮지 않더라도 그를 택하여 나아갈 수 있는 사람, 정말 필요한 것을 위해 자신을 불태울 수 있는 사람. 자신이 아닌 약자와 인간을 위해 화를 낼 수 있는 사람. 인간 노무현은 그렇게 사람을 끌어당겼고 사람들을 일깨워주었다.

그는 그렇게 스스로를 불태우고 세상에서 사라졌다. 그가 사라졌음에도 세상에는 그가 그토록 바라던 약자를 위한, 인간을 위한 세상은 도래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자신을 불태우며 남긴 불씨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다. 그는 불타 사라졌지만, 그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 그의 분노는 각기 다른 형태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 그가 바라던 세상을 밝혀나가고 있다.

언젠가는 이루어질까? 인간의 이기적임과 어리석음을 넘어 인간과 약자를 위하는, 당연히 그래야만 하는, 그가 바라고, 또 내가 바라는 세상. 대통령 노무현은 앞으로 만들어질 올바른 세상의 첫걸음이자  불씨를 밝힌 프로메테우스였다. 나는 서글프고 사랑스러운 그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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