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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훈 Jun 11. 2017

불편하게 산다

2017.06.11


얼마 전 술자리였다. 신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승훈 형제, 나중에 북카페 차리고 나서 까칠하게 굴면 안 돼요. 손님들 다 떨어져 나가요" 같이 술을 마시던 형이 말했다. "승훈이 까칠해요? 안 그렇던데, 나는 애들을 가르칠 때 걔네들이 정말 잘 지내고 잘 됐으면 좋겠거든요. 그래서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애들이 학교에도 다시 찾아오고, 더 좋은 길을 찾을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나는 그런 면에서 승훈이가 나랑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고 확신해"

살면서 많이 들은 상반된 이야기 두 가지가 있다. "참 좋은 사람이에요"와 "시니컬하고 까칠하시네요"라는 이야기다. 좋은 사람이라면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좋게 웃어넘기며 해달라는 것을 다 해줄 것 같은 이미지를 지니고 있지만 나는 사물과 상황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짚을 것을 짚어 넘기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냥 넘어가면 무난하고 편할 수 있는 것을 굳이 이야기하고 꺼내 주지시키는 사람을 때로는 이렇게 부른다. "참 까칠하시네요."

술을 더 마시던 형이 말했다. "다음 주 토요일에 소금이 오는데, 그걸 성당에 구역마다 배달해야 된다네"
"그거 어디서 주문한 건데 왜 청년이 해요?" "여성 총구역에서 시킨 건데 그냥 주문만 하고 뒤에는 생각 안 한 거지 뭐, 그렇다고 청년들 불러서 다 시키기도 그렇고 내가 해야지" "그걸 형이 혼자 어떻게 해요, 시간 몇 시에요? 나도 같이 해요." 그렇게 어제 아침에 소금을 나르러 성당에 갔다. 성당 아저씨들 두 명과 그 형과 나, 그리고 따로 부탁을 받아서 온 다른 청년 한 명, 그렇게 다섯이 소금을 배달했다. 소금은 20kg짜리 총 80포대였고 배달해야 할 곳은 대략 15군데였다. 소금을 주문하고 배달을 미뤄버린 여성 총구역에서는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배달을 가던 중 만난 여성 총구역장은 아침에 소금이 올 때 자신이 소금을 받으러 나간 사실을 알리며 생색을 냈다. 그녀는 자신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당연히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소위 말해 까칠하게 굴었다. 배달을 가는 곳의 사람들의 반응도 다양했다. 감사함을 표하는 사람, 배달을 하러 와준 것에 미안함을 표시하는 사람, 집까지 가져다 달라고 말하는 사람, 우리가 택배기사인 양 동 호수와 이름도 알려주지 않고 "저 밖에 있는데, 그냥 경비실에 놔둬주세요"하고 끊어버리는 사람 등등. 예의를 지키지 않는 사람에게 나는 계속 까칠함을 표했다. 반면 감사함을 표시하거나 당연시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진심 어린 기쁨을 전달했다. 대략 세 시간이 지나 점심시간이 될 무렵 배달이 모두 끝났다. 사실 소금 배달 같은 거 얼마든지 마음 좋게 할 수 있다. 다만 나는 그 형이 독박을 쓴 게 마음에 들지 않았고, 주문을 하고 뒤의 일은 당연히 자신이 하지 않는 것처럼 구는 여성 총구역장의 행동이 싫었다. 그렇다고 내가 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미루어서 일이 오든 누군가가 손을 놓아서 일이 오든, 필요한 것들은 다 하면서 말을 더 붙일 뿐이다. 예의를 지키지 않은 사람이 마음이 편하지 않도록 말을 붙이고, 예의를 지키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기분이 좋고 마음 편할 수 있도록 말을 붙인다. 그래서 나는 까칠한 사람이기도 하고, 좋은 사람이기도 하다.

대학시절의 나는 사회문제에 적극적이고 많은 화를 담았다. 개인적인 시련을 많이 겪고 난 지금은 사회 시스템에 대한 분노에서 개인이 겪는 고통을 줄이는 방향으로 많이 변모하긴 했지만 대상의 개체가 바뀌었을 뿐, 행동의 근원적인 사고는 변하지 않았다. 얼마 전 노무현입니다를 보고 쓴 후기에는 함께 화를 내주는 사람의 중요함과 사랑스러움을 담았다. 사람들은 분명 이기적이고 편을 갈라 내 편이 이기기를 바라지만 마음 한켠으로는 분명 바람직함을 추구하고 그를 위해 애쓰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한다. 나는 그러한 인간의 선의를 믿는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에게는 까칠하고 시니컬한 피곤한 사람이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는 필요하고, 좋은 사람이다. 나는 나 스스로에게 가치 있고, 내 주위에 있는 수많은 사람에게도 가치 있다. 약자를 포함해 좋은 사람들에게 내가 좋은 사람이라면 된다. 그 외의 불합리한 상황에까지 좋은 사람일 필요는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당연하지 않은 일을 당연하게 여겨 넘기고 자신이 편하게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게 싫다. 약자를 무시하고 누군가를 괴롭히는 게 싫다. 갑질을 하는 게 싫고 예의 없이 구는 게 싫다. 사람을 아끼지 않는 게 싫고,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게 싫다. 자신이 기분 좋기 위해 다른 사람의 기분을 망치는 사람이 싫다. 그냥 마음 편하게 다 놓고 지내면 괜찮을 것을 나도 안다. 사실 저 상황에서 내가 조용히 넘어가거나 아예 내가 참여하지 않으면 스스로 짜증이 날일이 없는 것도 알고 있다. 내가 굳이 나서서 까칠하게 굴면 내 이미지가 좋아 보이지 않는 것도 알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용히 있고, 조용히 있는 게 스스로에게 편안한 일이 된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굳이 전면에 나서서 까칠해진다. 그게 옳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옳지 않은 것을 옳게 바꾸고 싶은 것뿐이다.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분명히 불편해지고 나는 그게 싫다. 불합리는 불합리일 뿐이지 좋게 넘긴다고 정말 좋은 게 되지는 않는다.

바람직하지 않은 것을 싫다고 말하는 것뿐인데, 그 말이 나를 나쁜 상황으로 만든다면 나는 얼마든지, 앞으로도 계속 스스로를 나쁘게 만들 거다. 싫은 걸 싫다고 말하는 게 리스크가 된다면 나는 계속 리스크를 가진 채로 살겠다. 이유는 단 하나다. 그게 옳은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킬 것을 지키고 사는 사람이 불편하지는 사회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오늘도 그를 올바르게 바꾸기 위해 비판하고 불편하게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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