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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훈 Jul 13. 2017

동네의 냄새

나는 강원도 원주에 여섯 살 때 이사를 와서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살았다. 그 후 우리 가족은 서울로 이사를 왔지만 나는 대학도 강원도 원주에서 다녔기 때문에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전 학년을 지방에서 보낸 셈이다. 지금 나를 포함한 우리 가족은 모두 서울에 살고 있고 나도 이미 서울에 익숙해졌다. 이십 대 후반 즈음에는 서울은 편리한 곳, 원주는 편안한 곳이었으나 지금은 서울도 편안한 곳이 되었다.

서울에만 살아온 사람들은 지방이 가진 매력을 잘 알지 못한다. 흔히 말해 사람이 적고 한산하며 차를 세워둘 곳이 많다거나, 사람들끼리 모두 알고 지내며 인사를 한다거나 (이건 단점이 될 수도 있지만) 하는 부분은 알려져 있지만 사실 가장 큰 장점은 다른 곳에 있다.

지방의 시내에는 (지방은 시내라는 특정한 지역이 존재한다.) 예전의 가게들과 새로운 가게들이 혼재해 있다. 새롭게 지어진 건물들과 20년이 넘은 건물이 같은 공간에 있고 20년 된 가게와 새로운 흐름에 따라 만들어진 가게가 함께 있다. 오래되어 색이 바래고 촌스러운 가게와 익숙한 손놀림과 말을 보여주는 아주머니와 모던하고 건조하며 단순한 느낌의 카페와 소품샵과 가게와 어울리는 무채색 계열의 옷을 입은 젊은 사람들, 약간은 너저분하면서 과한 장식이 되어 있는 가게들과 머리를 올려 화려한 색을 띤 가게 주인들이 같이 장사한다. 그에 따라 오는 손님들도 다양하다. 70대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40~60대의 어머니들, 2~30대의 젊은 공간을 찾는 사람들, 10대의 중고등학생들이 모두 한 공간에 모인다. 그들은 모두 같은 공간을 돌아다니며 같은 곳에 돈을 쓰고 같은 곳에서 밥을 먹는다. 나이대별로 가는 식당이 크게 나누어져 있지 않다.


맛있는 음식을 파는 가게에는 지역의 시민들이 나이대를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 물론 모던한 느낌의 카페나 술집에 따라 오는 손님은 일정하게 나누어져 있겠지만, 그 가게들은 모두 같은 자리에 있다. 다 같이 얼굴을 보고 다 같이 물건을 사며, 다 같이 시내를 다니며 자연스럽게 섞인다. 그에 따라 시내와 시장도 활기를 띤다. 건물의 주인들도 다양한 연령대와 성별을 가리지 않고 세를 주고, 쫓아내지 않는다. 그 가게들은 장사가 되는 이상 같은 자리에 그대로 있다. 10년이 지난 후에 가봐도 그 구조는 바뀌지 않는다. 다만 몇몇의 가게들이 새로운 흐름에 따라 바뀌어 있을 뿐이다. 구조가 바뀐다고 하더라도 예전의 가게들과 새로운 가게들이 섞여 있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대화한다.

반면 서울은 나이대 별로, 취향별로 가는 장소가 정해져 있다. 젊은 사람들은 홍대, 연남, 합정, 망원, 이태원에 가고 누군가는 종로에 자주 가기도 한다. 강남에 자주 가는 청년들은 강남을 비롯한 비슷한 지역에 가고, 그 지역에는 오는 타입의 사람들과 연령에 따라 비슷한 가게들이 모인다. 소비의 타입에 따라 가게들은 바뀌고 원래 있던 가게들은 지역의 월세가 높아짐에 따라 쫓겨난다. 새로운 흐름에 따라 많은 가게들이 생겨났다 사라진다. 그 시기가 지나면 그 가게들은 또다시 바뀐다. 그리고 어느덧 유행이 지나가면 지금의 압구정처럼 황망한 거리가 된다. 해당 지역에 다른 연령대, 다른 타입의 사람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나이든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종로의 탑골공원에 모이고, 경동시장에 모인다. 교외에는 가족 단위나 나이 많은 사람들이 가고, 산 밑에는 비슷한 사람들이 또 모인다.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져 서로에게 관심이 없다. 가게 주인들도 사람들을 쫓아내는데 거침 없고 거리의 구조는 쉽게 바뀌어 버린다. 이후 유행이 지나가면 들어올 가게가 없을 것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당장의 돈을 벌기 위해 오래된 가게를 버린다. 
동네의 표정은 사라지고 냄새가 바뀐다. 비슷한 느낌의 비슷한 가게들이 비슷한 곳에 모인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유행하는 표정이 새로워지면 새로운 지역에 새로운 가게들이 생기고 사람들은 그쪽으로 몰려든다. 이번 유행 지역은 성수라며? 그럼 성수에 가야지.

지난주에는 파주출판단지에 갔고, 다시 가지 않기로 했다.  파주 출판단지는 한 사람이 기획한 듯 모두 같은 색의, 같은 구조를 지닌 건물이 같은 간판을 달고 있었다. 인위적으로 만든 공간에 인위적으로 들어와 있는 출판사들과 인위적인 냄새를 풍기는 동네가 거기 있었다. 삭망하고 황량했다. 나는 부자연스러운 공간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여행을 가도 만들어 놓은 관광지는 잘 방문하지 않는다. 사람이과 자연은 모두 한 곳에 섞여 있어야 한다. 그게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다. 인위적인 냄새를 풍기는 만들어진 공간은 목적에 맞는 사람들만이 방문하고 목적을 달성하면 떠나버린다. 그 사람들은 그 공간에 애정을 갖지 않는다. 지금 당장 필요하기 때문에 갈 뿐이다. 그건 자연스럽지 않다. 다양한 부류의 사람이 자연스럽게 혼재되어 있지 않다면 인간은 서로에 대한 이해를 하지 못하고,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요즘 물건은 쓰면 쓸수록 너절해진다. 책도 새롭게 표지가 꾸며져 예쁘게 나오고, 전자기기도 깔끔하고 새롭게 출시된다. 옷은 유행을 타고 낡은 옷은 쉽게 버림 받는다. 오래되면 보기 싫고 바꾸는 게 당연해졌다. 하지만 정말 필요한 물건은 두고 쓸 수 있는 것이다. 제품을 만들고 파는 사람들도 물건을 갈아치워서 또 파는 데 목적을 두지 않아야 하고, 물건도 시간이 지나 쓰는 사람에게 익숙하게 변해가는 것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한다. 지역도, 사람도 이와 같다. 새롭게 버리고 갈아치우는 게 아닌, 두고 볼수록 익숙하게 변해가는 것, 그리고 다같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는 것. 때로는 고치고 기우고 색이 바라고 변하더라도, 그게 더 예쁘고 좋은 지역이 정말 인간에게 필요한 곳이다. 동네와 사람의 냄새가 남아 있고 시간이 지나 바뀌어 가지만 여전히 그 냄새가 기반에 남아있는, 그러한 곳이어야 한다. 
과연 오늘 서울의 냄새는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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