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스트레스가 꽤 심했습니다. 설영이가 태어난 후 불안증이 심했던 적이 없는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런지 불안정한 상태가 지속되었습니다. 건강하지 못한 정신 상태로 여럿을 피곤하게 하기도 했습니다. 스트레스를 받고, 예민해져서 하지 않아야 된다 생각한 행동을 하고, 그것으로 또 스트레스를 받는 악순환이 반복되었습니다. 신경 쓰는 것마다 제대로 되는 게 없고, 세상 모든 일이 다 피곤하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제가 몸이 약한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설영이의 탄생 후 알게 된 건 스트레스가 취약해서 컨디션이 떨어지는 사람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설영이를 키우다 보면 정신적 스트레스로 힘들 때가 거의 없었습니다. 아이를 돌보는 건 때로는 지치지만 늘 사랑스러운 존재와 함께 한다는 게 커다란 행복이었습니다. 설영이를 보고 집안일을 하고 육아 용품과 집을 정리하다 보면 다른 생각에 빠져 스스로 힘들어할 시간 자체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여러 사건들로 스트레스를 받아 헤롱헤롱하며 지났습니다.
사실 그럴만하긴 합니다. 설영이는 아직 통잠을 자지 않습니다. 저는 눈을 뜨면 출근 준비를 하고 회사에 가 일을 하며, 집에 돌아오면 집을 정리하고 아내와 돌아가며 저녁을 먹습니다. 그 후에는 육아를 하다 설영이를 목욕시키고 재웁니다. 재우고 난 후에는 마무리하지 못한 집안일을 하고 작업을 합니다. 잠자리에 들다 설영이가 울면 침대에 가서 설영이를 보고 다시 재우기도 합니다. 주말 이틀은 거의 육아에 전념합니다. 자는 시간이 유일한 휴식 시간인데 제대로 자고 있지를 못합니다.
최근 설영이는 태열이 더 심해졌습니다. 태열은 얼굴뿐 아니라 팔과 다리가 접히는 곳까지 늘었고 얼굴의 심한 부분에는 진물이 나기도 했습니다. 설영이의 태열을 없애기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했는데 크게 효용이 없었습니다. 한동안 많이 좋아졌는데 갑자기 나빠지는 아이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너무 속상했습니다. 그 속상함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속상했습니다. 천식과 알레르기성 비염이 있는 제 탓인 것만 같아 더욱 속상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과 후는 많이 다릅니다. 저는 쉬는 시간도 없고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도 거의 없습니다. 친구들을 만나려면 주말에 집으로 불러야 되는데 사실 쉬운 일은 아닙니다. 책을 읽는 시간도 현저하게 줄었습니다. 설영이가 태어나고 두어 달은 설영이를 안고 책을 읽고 영화를 봤는데, 요즘 설영이는 졸릴 때를 제외하고 품에 안겨 있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장난감으로 놀거나 뒤집기 위해 바닥에서 용을 쓰며 낑낑대는 걸 더 좋아합니다. 그래서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집중하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설영이가 자는 시간은 대략 8시에서 8시 30분 정도입니다. 정리가 다 끝나면 9시 30분이 넘어가는데 그 시간에는 이미 저의 정신력은 바닥을 보입니다. 그 시간을 털어가며 책을 읽고 작업을 하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주말은 평일보다 더 바쁩니다. 한 시간 정도 산책을 하는 게 회복을 위한 시간의 전부에 가깝습니다.
최근에는 집 구조를 바꿨습니다. 이제 우리 집에는 서재가 없습니다. 이 집을 매매한 이유가 서재였지만 그렇게 되었습니다. 지금 서재는 설영이 방이 되었고 큰 테이블은 거실로 나왔습니다. 육아는 건 저의 공간과 시간, 체력과 정신력, 돈을 덜어 아이에게 주는 일입니다. 저의 것이 사라지고 가족과 아이의 것이 늘어나는 게 육아라고 생각합니다. 부부 생활의 주요점은 따로 또 같이,의 독립성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육아를 하는 지금 우리의 독립성은 없습니다. 삶의 목표가 바뀌었습니다. 우리 부부의 목표는 이제 설영이를 잘 키워서 따뜻한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독립된 사고나 가치관을 갖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제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하며 함께 힘들어하고 함께 행복해합니다. 나의 모든 기쁨도, 모든 슬픔도 우리 설영이에게 귀결됩니다.
오늘 설영이는 태어난 지 100일이 되었습니다. 설영이와 함께 한 모든 시간이 환희와 열락입니다. 육아의 피로와 힘듦 같은 건 행복을 위해 부수적으로 생겨나는 것들에 가깝습니다. 일을 하는 이유도 우리 가족, 밥을 먹는 이유도 우리 가족, 잠을 자는 이유도 우리 가족,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이유도 우리 가족입니다. 가족을 위해 살아갈 수 있다는 건 커다란 축복입니다. 설영이가 없었다면 이 마음을 알 수 있는 방법도 없었겠지요. 설영이는 너무나 사랑스럽습니다. 설영이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내 마음을 주체할 수 없습니다. 힘들어도 괜찮은 게 아닙니다. 설영이, 혜영이와 함께 살아가기 때문에 힘든 일 자체가 행복입니다. 오늘 설영이는 100일이 되었습니다. 우리 사랑스러운 설영이가 태어난 지 100일이 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