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출산과 동시에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 중 하나는 "아내분의 육아를 많이 도와주세요." 다. 서사 없이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왜 내가 이런 말을 사람들에게 들어야 하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내가 결혼 생활을 하며 아내와 어떻게 집안일을 분배해왔고, 내가 어떤 성향으로 어떻게 집을 꾸려 나가는지, 아내에게 어떻게 하는지 알고 말을 한다면 왜 나에게 그런 말을 하는 이유를 들어볼 요량은 있다.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엄밀히 말해 아내 본인, 그리고 자기 딸을 염려하는 장모님 정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장모님은 그런 이야기를 하시는 분이 아니다.)
도와준다는 것은 주체성이 없는 대상이라는 뜻이다. 주체성이 없는 대상은 스스로 능동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거나 행동의 주가 되지 못하고 타자의 지시에 의한 행동을 통해 소극적으로 행한다. 주가 되지 못하고 주를 보조하는 사람, 그게 도와주는 사람이다. 다시 말해 "아내분의 육아를 많이 도와주세요."라는 말은 남편이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 능동적으로 행동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고, 그나마 그렇게 주어진 보조의 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할 것이라는 인식이 들어 있다. 도와주는 사람이 조직이나 집단을 끌어가는 일은 없으며, 그를 넘어 도와주는 사람은 아예 그룹 내 일원으로 인정받지 못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이 말은 남편이 집안일을 포함한 아이를 키우는 일을 내집단으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을 뜻한다.
남편이 '도와주지도 못하는 사람'이 된 것은 역사 속에서 남편들이 실제로 육아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참여자는 참가하고 관여하는 사람으로 도와주는 사람에 비해 적극적이고 능동적이다. 우리나라는 돈을 버는 일을 하는 조직, 즉 회사에 대한 충성을 중요시 해왔고 노동자들은 실제로 회사에 소속감을 가진 채 집안에서 발생되는 일을 출산을 한 아내에게 일임 시켜왔다. 그래서 '집'은 가족을 위해 노동을 하고 온 내가 대우받는 곳으로 설정되었다. 집에서의 역할이 부재한 남편은 손윗사람으로의 대우와 돈을 벌어온다는 권위를 앞세워 집의 식구들을 위계로 통제한다. 그리고 자식들은 가족 내 역할이 제대로 설정되어 있지 않은 아빠를 보며 가부장제를 경험해 역할을 계층적 지위로 습득하게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공적 영역을 담당하는 남성, 사적 영역을 담당하는 여성으로 분리된 역할 구분은 가족 내 구조를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나눈다.
내가 2024년이 된 지금 "아내분의 육아를 많이 도와주세요"라는 말을 듣는 이유는 우리 사회 내 가부장제가 온전히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내 주변만 보아도 대부분의 아내가 육아를 전담한다. 남편은 매일 야근에 시달려 밤이 되어서야 집에 오고 잦은 출장으로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다. 야근과 출장을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니 아내들도 딱히 뭐라고 말을 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만큼 육아가 온전히 아내의 몫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돈을 버는 곳을 자신이 속한 주된 집단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은 조직 문화를 피폐하게 만든다. 충성도가 곧 능력으로 치환되어 인사권과 고과에 반영되며 돈을 벌기 위해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가정보다 돈을 버는 집단을 더 신경 쓰게 된다. 그 와중 조직은 온전한 운영을 위해 결혼한 채로 임신 가능성이 있는 여성과 육아를 위해 회사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는 여성의 채용을 꺼린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30대 미혼 여성의 고용률이 75.7%임에 비해 유배우 여성의 고용률은 53.6%로 나타가 격차가 무려 22.1%에 이른다. 여성의 연령이 20대에서 40대 사이일 때, 배우자가 있는 여성은 결혼한 적이 없는 미혼 여성이나 기혼 무배우 여성보다 고용률 수준이 낮으며, 최근까지도 일관되게 관찰되는 특성이다. (최선영 등, [여성고용과 출산 - 선행연구 동향과 과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보고서(수시) 2022-04, 2022, pp.45)
결과적으로 내가 생뚱맞은 사람들에게 육아를 도와주라는 말을 듣는 이유는 과거에서부터 사람들이 쌓아온 가부장의 관념과 실체가 무너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가정 내 역할이 없는 남편'은 회사와 조직에 충성을 바라는 한국 조직사회의 특성과 맞물려 있다. 이 대목은 남편의 육아휴직 사용과 이어진다. 2023년의 육아휴직 사용자는 총 12만 6천명으로 그중 남성 비율은 28.0%, 여성 비율은 72.0%였다. 육아휴직을 사용한 남성의 통계를 살펴보면 1~3개월의 육아휴직 사용자가 35.1%로 가장 많았고 12개월을 초과해 사용한 비율은 7.6% 밖에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응답자의 50.1%가 부담을 느끼거나 눈치가 보이기 때문에 육아휴직의 사용이 어렵다고 대답했다. (한겨레 뉴스, 오세진 채윤태 장수경, [남성 육아휴직자 50% “눈치보였다”…12개월 넘게 사용 7.6%뿐] 참조) 조직 내 대체자가 있는 큰 회사는 다르겠지만 중소기업 등 작은 조직은 상황이 다르다. 나는 총 10일간의 배우자 출산휴가를 아내 출산 후 3일, 산후 도우미가 끝난 후 7일을 사용했다. 그나마 일요일과 공휴일은 일자 산정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며칠을 더 확보할 수 있었지만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출산 육아 관련 휴가도 그것이 전부다. 육아 휴직을 사용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나 또한 작은 조직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이자 관리자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육아휴직을 낼 수 없다. 이번 7일 동안의 보호자 출산휴가 기간에도 직장에서 수많은 업무 관련 연락을 받았다. 생각해 보면 조직 내에 작은 부품이라는 건 좋은 점일 수도 있다. 누구든 나를 대체할 수 있고, 법적으로 육아휴직을 3개월 이나마 낼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나는 단 7일간의 출산 휴가에도 업무에서 단 하루도 벗어날 수 없었던 게 내가 겪고 있는 현실이다.
이번에 아내와 함께 육아를 하면서 딱 3개월 정도만이라도 육아휴직을 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설영이에게 3시간마다 수유를 하고 트림을 시키고 다시 눕히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사실상 밤에 제대로 잠을 자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부부는 번갈아가며 시간을 전담해 육아를 해야 한다. 하지만 한 명이 빠진 채로 온전히 한 명이 24시간 육아를 한다면 육아의 절대적인 난이도를 떠나 지치고 힘이 든다. 아이가 통잠을 잔다는 100일이 될 때까지는 두 명이 함께 육아를 하는 게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배우자 출산휴가를 내기 전에도 나는 퇴근 후 잠이 들기 전까지 두어 시간 동안 집안일을 하며 집을 정리하고 설영이를 돌보았다. 나는 설영이가 어떤 타이밍에 울고 어떤 울음소리를 내야 그치지 않는 큰 울음을 우는지 안다. 졸릴 때의 반응과 배고플 때의 반응, 그 외 힘들 때의 반응을 안다. 설영이에게 적합한 분유량은 어느 정도인지, 어떻게 해야 트림을 시킬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설영이가 안정을 취하고 잠을 자는지 안다. 기저귀를 가는 것과 옷을 갈아입히는 것과 빨래와 청소, 요리, 젖병 세척과 소독 등등 모두 나와 아내가 함께 한다. 내가 더 잘하는 것들도 많다. 나는 원래도 집안일을 좋아하고 잘했다. 누구보다 깔끔하고 깨끗하게 살림을 한다. 나는 사람도 잘 돌본다. 내가 사회복지사가 되어서 누군가를 잘 돌보는 게 아니라 내가 이런 성향이라 사회복지사를 하기로 했다. 내 장점을 살리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당연히 나는 지금 우리 설영이도 잘 돌본다. 설영이는 나와 안정 애착이 잘 형성되어 있다. 울다가도 내가 안으면 설영이는 울음을 그친다. 우리 부부가 설영이와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내가 '돕는 사람'으로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 갈등과 우울의 시초가 될 게 분명하다. 나는 능동적이며 주체적인, 육아 참여자를 넘어선 분명한 양육자다. 나는 육아를 돕는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다른 아빠, 또는 엄마들도 육아를 돕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가족 구성원의 내집단은 가정에 있어야 한다. 마을이 함께 아이를 키우고, 모두의 인식을 통해 아이를 키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