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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훈 Jul 28. 2024

결혼 일주년

 결혼 일주년이 되었다. 결혼 일주년이 되었을 때 셋이 되어 있으리라고는 결혼 준비를 할 때는 물론 결혼을 하고 난 후에도 상상을 하지 못했다. 원래 결혼 일주년이 되는 날에 내가 프로포즈를 했던 식당에서 다시 식사를 하기로 했었는데 우리의 삶이 그때와 톤이 사뭇 달라 더 현대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다. 임신 중 임산부의 옷만 입어서 아이를 낳은 후인 지금 입을 옷이 마땅치 않은 아내의 옷을 구매하고, 더 현대를 가보지 못한 아내의 구경을 겸한 목적이었다. 설영이를 돌보는데 에너지를 거의 다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결혼 일 주년이라고 해도 특별히 무언가를 찾아보거나 할 정신은 없었다. 설영이를 임신하기 전이었다면 평범한 데이트 중 하루가 되었을 것 같은 식사 후 쇼핑, 짧은 카페에서의 시간은 이제 우리가 보내는 특별한 하루가 되었다.

 나는 2월 말부터 3월 8일까지 배우자 출산휴가를 사용했다. 배우자 출산휴가 기간 동안 우리의 생활 패턴은 내가 열한 시나 열두시 즈음 조금 일찍 잠들어 다섯 시나 여섯시 정도 일어나고, 내가 잠든 사이에 아내는 설영이를 돌보다 설영이가 잠들면 침대에 들어와 잠을 자는 것으로 정립되었다. 물론 아내는 잠을 잠이 든다 하더라도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어야 하기 때문에 완전히 잠이 들 수는 없다. 반면 나는 잠을 완전히 자거나, 아예 자지 않거나 둘 중 하나다. 나는 그 중간 어딘가의 선잠을 자지는 못한다. 그래서 저녁부터 밤 시간 동안에는 주로 내가 설영이를 돌본다. 아내는 내가 깬 아침 다섯시에서 여섯시 사이에 잠이 들어 열두시 정도에 일어난다. 결혼 일주년이 되는 날, 설영이는 어머님께서 봐주시기로 하셨다. 어머님께서는 열한시가 되기 전에 우리 집에 오셨고 우리는 곧 외출했다.

 다른 동네에 가는 게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더군다나 둘이서 같이 다른 동네에 가는 건 정말 몇 달 만이었다. 나름대로 찾아간다고 간 프랑스 음식을 하는 식당의 음식이 괜찮았지만 둘 다 너무 피곤했다. 나는 다섯시에 일어나 열한시 반까지 아이를 보다 나와서 피곤했고 아내는 아침에 잠이 들어 오전 중에 일어나 피곤했다. 밥을 먹는 동안에도 우리는 설영이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리고 아내의 옷을 사기 위해 더 현대 백화점을 돌았다. 왜 그렇게 넓은지 계속 걸어 다니면서 우리는 정신이 나갔다. 지하 2층에 있는 우리 형의 매장에 들어가 아내의 옷을 하나 고르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 카페에 가니 어느덧 시간이 세시 반이 넘어 있었다. 30분 정도 케이크와 커피를 마시고 우리는 곧 다시 집으로 향했다. 결혼 일주년 기념이고 뭐고 너무 피곤했기 때문이었다.

 집에 와서는 인터넷 사이트를 뒤져가며 아내에게 어울릴만한 옷을 골랐다. 아내는 옷에 그다지 관심이 없기 때문에 아내의 옷은 주로 내가 골라 입힌다. 설영이를 임신하는 동안 아내는 두어 벌의 니트와 두어 벌의 재킷으로 가을과 겨울을 보냈다. 아내는 설영이를 낳는 날에도 그러했지만 설영이를 낳은 것이 설영이와 떨어졌다 생각을 한 것 같았다. 유축을 그만하기로 한 날에도 아내는 많이 울었는데 남아 있던 연결성이 끊어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나의 아이와 연결이 끊어지는 기분이라는 건 나는 잘 모른다. 나는 설영이가 태어난 후 피곤하고 힘든 일은 많아도 항상 기쁘고 즐겁기만 했다. 지금도 잠이 든 설영이 옆에서 글을 쓰는 게 큰 행복이다. 다만 아내의 감정이 졸업해야 하는 기분이라는 건 알 것 같다. 뱃속에 있던, 내가 유일했던 아이를 세상의 공기 속에 보내고 또 다른 새로운 연결성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아내도 이 감정을 누구보다 잘 알겠지만 아는 것과 되는 것은 엄연히 다른 일이다. 그래서 아내에게 임신, 출산, 육아와 관계없는 물건을 사주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지난번 아내는 너무 힘들었던 밤, 홀로 외출해 카페에 다녀온 적이 있다. 그날이 힘듦의 끊어짐과 새로운 전환에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결국 육아는 아이가 신생아이건, 다 큰 자식이건 나와 별개의 독립된 인격체인 자식을 인지하는 일이지 않을까? 이는 아이에게 돌봄이 필요한 것과 또 다른 영역이다. 아이도, 부모도 완전히 독립된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임산부가 입는 옷을 예뻐서 입는 사람은 없다. 필요하니까, 그리고 그게 편하니까 입는다. 육아를 할 때도 당연히 편한 옷이 필요하지만 몸이 제대로 회복되지 않은 지금 마음에 드는 옷을 입고 외출하는 건 사소해 보이지만 사소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카페에 있던 3시 30분부터 밤 12시까지 아내의 옷을 골랐다. 아내는 옷에 그다지 관심은 없지만 마음에 드는 옷은 입고 싶고 또 취향도 뚜렷하다. 다만 자기의 취향을 자기 자신이 잘 모른다. 그래서 옷을 골라주기 어렵다. 그렇게 후드 하나, 스웨트셔츠 하나, 재킷 두 개, 스커트 하나, 바지 하나 총 여섯 벌의 옷을 샀다. 왠지 모르게 내 옷을 산 것보다 더 뿌듯했다.

 결혼 일주년이라고 하기에 결혼기념일스러운 것은 마치 전생같이 느껴지는 우리의 웨딩 영상을 본 것뿐이었다. 그것마저도 설영이가 울어서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그래도 우리 둘 모두 참 좋았다. 오늘 우리의 생활상 자체가 결혼을 기념하는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결혼 후 두 달인 5월에 설영이를 임신해 1월에 설영이가 태어나고 정신없이 육아를 하는 지금 모습이 참 새롭고 신선하고 재미있다. 나도, 아내도 서로가 덜 힘들었으면 하는 마음에 설거지를 내가 더 하고, 아이 분유를 내가 한 번 더 주고, 기저귀를 내가 한 번 더 갈고, 네가 조금 더 편하게 잠을 잤으면 하는 마음의 선의가 있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둘 다 안다. 우리가 선의를 가진 채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 '선의' 자체가 무엇보다 중요한 선물이자 행복이다. 이 마음이 없다면 결혼 생활도, 임신도, 육아도 하지 못할 것이다. 결국 가족을 행복하게 만들고 힘듦을 힘들지 않게 할 수 있는 것은 서로에 대한 선의, 즉 행동적으로 표출되는 부부 사이의 의리다.

 나는 오랫동안 선의를 가진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그리고 그 상대가 내가 펼치는 선의를 잘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이기를 바랐다. 아내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에도 아내와 내가 그럴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믿음이 아니라면 다른 말로는 설명이 안된다. 믿음의 근거는 나의 생각뿐이었으니까. 선의를 주는 것도 어렵지만 선의를 받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누군가의 선의가 불편하고 필요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선의를 받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주는 마음이 자신에게 짐이 아니어야 하며 그 마음에 다른 목적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선의가 자신의 마음을 게으르게 하거나 스스로의 가치를 낮추게 하지도 않아야 한다. 결국 선의는 상대를 넘어 자신에 대한 신의를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내가 오랫동안 생각했던 사람과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있다.

 결혼을 하며 얻은 가장 좋은 점은 선의를 가진 사람을 만나 나의 선의를 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과 함께 살고 있는 게 가장 큰 선물이다. 우리의 결혼생활은 이제 초입이지만 이미 많은 것이 달라졌고 많은 시험을 거쳤다. 임신과 출산을 무사히 겪은 것은 굉장히 큰 소득이다. 앞으로도 많은 시험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의 삶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지만 우리 부부가 가진 선의와 신의가 있다면 어떻게든 좋게 되지 않을까? 결혼 생활을 하며 모든 날이 좋았다. 또한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결혼 일주년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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