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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훈 Jul 21. 2024

정말 생각대로 되는 게 없더라

 아이에게 맞는 물건이 무엇일지 한치도 예상할 수 없다. 우리 부부는 임신 기간 중 많은 물건을 구매했고 아이가 지낼 위치와 침대를 고심 끝에 배치했다. 그리고 산후조리원에서 돌아온 날, 우리는 마음먹고 마련한 아기 침대가 생각 외로 불편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 침대는 보통의 침대에 부부가 아이와 한 공간에서 자는 경우에 적합하지만 우리는 한 명씩 돌아가면서 잠을 자는 데다 침대도 저상 침대라 아이를 돌보는데 적합하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산부인과에서 준 깔개 겸 아이 싸개에 아이를 놓고 지냈다. 그러다 내 친구가 준 역류 방지 쿠션(나는 받을 땐 이게 뭔지도 몰랐다.)에 아이를 놔둬 보았는데 막상 사용해 보니 꽤 편하고 잘 맞아서 집에 온 후 한동안 설영이는 역류 방지 쿠션 겸 침대에서 생활했다. 그러다 아이가 바닥에서 생활하는 게 안전하다고 느껴져 아이용 원형 러그를 샀다. 하지만 우리 설영이는 생각보다 먹은 걸 많이 게워냈다. 그래서 바닥 러그에 아이를 놓을 수 없었고 들고 있거나 역류 방지 쿠션에 놓아야 했다. 그래서 그 러그는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언젠가는 쓰긴 하겠지만 굳이 지금 샀어야 하나? 하는 물건이 되어 버렸다. 그러다 설영이가 먹은 걸 게워내는 횟수가 점점 많아지면서 더 본격적인 역류 방지 쿠션을 샀다. 거기에 설영이를 두면 게워내지도 않고 잠도 잘 자서 그 이후 새롭게 구매한 역류 방지 쿠션에 다시 정착했다. 그러던 중 아이가 역류 방지 쿠션에서 자꾸 아래로 꺼지는 게 느껴졌다. 그러다 보니 아이의 허리 부위가 아래로 들어가고 있어 새롭게 구매한 역류 방지 쿠션을 제일 처음 구매했던 아기 침대 위에 놓고 사용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이게 이제 오늘 일이다. 조리원에서 나온 게 태어난 지 18일째 되는 날이고, 오늘이 이제 태어난 지 36일째 되는 날이다. 아이가 지내는 공간 하나에서만 벌어진 이 모든 일이 단 18일 만에 생겼다. 그 사이에 아이의 침대에서만 네 번의 시행착오를 겪었다. 심지어 이 조차도 중간 과정일 수 있다.

 임신 기간 중 아이 옷을 많이 선물 받았다. 옷을 물려준 사람도 있었고 새 옷을 보내준 사람도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받은 옷이 많아 누가 무슨 옷을 줬는지 나는 잘 기억하지 못한다. 아내는 친구가 준 옷들을 기억하는 걸 보면 내가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게 문제인 것 같긴 하다. 아무튼 배냇저고리를 많이 받았고, 처음 집에 왔을 때 배냇저고리를 입혀봤는데, 끈으로 되어 있는 게 너무 불편했다. 그래서 배냇저고리를 며칠 쓰고 똑딱이 단추로 채우는 옷들로 바꾸었다. 지금도 그 옷을 많이 입는다. 또한 아기는 팔 다리를 마구 움직여 아기 스스로가 불편해하기 때문에 속싸개로 아이를 싸놓는데, 집에 오니 속싸개의 개수가 부족해서 두어 개를 급하게 새로 구입했다. 그러고 나서 이삼일 정도 지나자 설영이가 생각보다 힘이 세서 속싸개로 아이를 싸놓 아도 팔다리를 빼고 나와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구매한 속싸개도 지금은 바닥 깔개처럼 사용하고 있다. 지금은 스와들업(불가사리처럼 생긴 옷)을 많이 입힌다. 이 스와들업도 우리 생각한 것보다 아이가 더 빠르게 자라 작아져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제품들이 많다. 아이에게 맞는 사이즈를 생각해 구입했는데 생각보다 설영이가 죽순처럼 빨리 자랐다. 선물을 주고 싶다는 사람이 있다면 시간차를 두고 필요한 걸 말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때 받았던 게 며칠 지나면 쓸모 없어지는 사태가 생길지도 모른다.

 이 외에도 많다. 이미 아이가 지내는 공간은 우리가 준비한 곳이 아니라 서재가 되었고, 젖병 세척기 겸 소독기로 구매한 제품이 생각보다 건조가 잘되지 않아 찝찝한 마음에 거의 건조기로만 사용한다. 새롭게 산 분유는 설영이가 자꾸 게워내서 구토를 잘 하지 않는다는 분유로 바꾸었는데, 그 분유가 또 물에 잘 녹지 않아 고민이 많다. 다 사용해서 새로 구매한 기저귀도 벌써 작아져 사용하지 못하게 될 예정이며 아이가 사용하는 장을 놓은 방에서 아이가 생활하지 않으니 아이 따로 아이 짐 따로가 되어버렸다. 호기롭게 보건소에서 대여한 유축기는 작동이 안 되고, 반드시 필요하다 생각해서 준비한 가습기도 정말 의외로 사용할 일이 없다. 집안 습도가 이렇게 잘 맞는지 우리는 몰랐다. 천 기저귀는 아이가 있는 모든 침대와 역류 방지 쿠션에 게워내는 걸 막아주는 용도로 아래에 깔려 있다. 대부분의 물건과 용품이 생각한 것과 다른 용도로 사용된다.

 이 와중에 아이를 돌보면서 한가롭게 책을 읽고 출간 준비 중인 원고를 수정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게 지금 생각해 보면 오히려 신기할 따름이다. 할 수 있는 게 화면을 보는 것 밖에 없어 의외로 영화를 많이 보고, 매일 뉴스를 틀어서 본다. 아이가 화면을 제대로 보기 전까지는 이렇게 지낼 것 같다. 그러다 가끔 이렇게 설영이가 깊은 잠을 자는 날이 있으면 글을 쓴다. 언제 깰지 모르는 아이를 두고 글을 쓰는 것도 나름 스릴 있다. 깰지 말지 고민하는 듯 소리를 내는 설영이를 옆에 두고 나는 오늘 이 글을 마무리할 수 있을까?

 얼마 전 십 대에서 이십 대 초반이 주류인 커뮤니티에서 "엄마 아빠도 엄마 아빠가 처음이라 그래"라는 말이 무책임한 말이라는 글을 읽었다. 많은 댓글이 그 글에 동조하고 있었다. 근데 막상 애를 낳아서 키워보니 정말 준비한 대로 되는 게 없었다. 준비할 수 있는 건 내 마음뿐인데, 내 마음도 여유가 없어지면 짜증이 솟구쳐 올라 나도 모르게 젖병에다 대로 신경질을 내고 있는 나를 볼 수 있다. 아이는 울고, 젖병은 잘 준비가 되지 않으면 울음소리가 커진다. 그렇게 초조한 마음이 해일처럼 밀려와 짜증을 참지 못한다. 하지만 그렇더라. 정말 생각대로 되는 게 없더라. 무책임해서가 아니라 준비해도 준비한 대로 되지 않는 게 아이를 키우는 일이더라. 심지어 태어난 지 36일째, 산후조리원에서 나온 지 18일째임에도 그렇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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