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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훈 Jul 07. 2024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가 좋았다는 걸 알게 될 거야”

 아내가 임신 중일 때 허구한 날 들은 이야기는 “출산하고 나면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가 좋았다는 걸 알게 될 거야”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임신 중일 때 보다 출산하고 난 다음이 훨씬 좋다. 임신 중일 때는 불확실성의 연속임에 비해 설영이가 태어난 후는 명확히 볼 수 있는 아이의 실물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아이를 돌봐야 하거나 울거나 젖을 먹을 때도 분명하게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 임신 중일 때는 아내에게 해줄 수 있는 것도 명확하지 않고, 했다고 한들 효과가 없는 것도 많았다. 그에 비하면 육아는 내가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

 물론 내가 지금 맥락과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출산 후 보다 임신 중일 때가 좋다’는 이야기는 육아의 버거움을 표현하는 말이다. 아이가 태어난 후에는 부부가 자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도 없고 밥도 제대로 먹을 수도 없고 잠도 제대로 잘 수도 없다. 오늘부로 태어난 지 27일이 된 설영이는 수시로 울고 특히 어제부터는 밤에 품 안에 있어야만 잠을 잔다. 침대에 내려놓으면 10초 안에 울음을 터트린다. 두 시간마다 한 번씩 수유를 하고 수시로 기저귀를 갈아준다. 트림을 시키는 것도 쉽지 않다. 내가 못하는 건지 우리 설영이가 트림을 잘 안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마 전자일 것이다. 그리고 요즘 설영이는 먹은 것을 많이 게워낸다. 트림을 시키고 몸을 세워놓고 있어도 재채기를 하거나 딸꾹질을 할 때, 아니면 이유가 없이도 게워낸다. 이제는 수유시간이 세 시간 텀으로 늘어났지만 트림을 시키고 젖병을 닦고 소독을 하고 게워낸 옷을 갈아입히고 기저귀를 교체하고 나면 어느덧 수유 시간이 30분 남는다. 하루 두 번 이상 아기 빨래를 돌리고 건조기를 돌리며, 이틀에 한 번꼴로 목욕도 시킨다. 눕혀 놓고 글을 쓰려 했는데 눕지를 않아서 지금 글도 스마트폰으로 작성하고 있다. 집 안이 정신이 없다. 아기 침대가 하나, 바닥에 역류 방지 쿠션이 하나가 있고 기저귀 갈이대랑 아기 물품이 보관된 트롤리가 있다. 주방은 수유 물품으로 가득하고 방 하나에는 아기 장이 차 있다.


 아내의 출산 후 둘이 같이 누워본 적이 없다. 우리는 집에서 교대 근무를 한다. 내가 10시 즈음부터 1시 ~ 3시가량까지 아이를 보았고, 아내가 2시부터 아침까지 아이를 돌본다. 평일 9시가 되면 정부지원 산후 도우미 선생님이 오셔서 17시까지 아이를 봐주신다. 토요일과 설 연휴는 어머님께서 오후에 와주셨다. 나는 지금 육아가 힘들다고 티를 내는 게 아니다. 육아를 하며 부부의 자유가 상당 부분 제한되는 것은 맞지만 육아가 기술적으로 어렵다고 느낀 적은 없다. 수유도, 젖병 소독도, 기저귀 갈이도, 아이를 돌보는 일도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위에 말한 것과 같이 나의 자유가 제한되며, 무엇보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게 가장 힘든 대목이다. 다만 이 모든 일들이 있음에도 우리 설영이와 함께 있는 모든 시간이 좋다. 아이와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드린다. 요즘 나의 중심은 내가 아니다. 나의 중심은 설영이다. 지금은 그 안에 내가 없어도 된다. 신생아를 돌보는 건 당연히 그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자유로운 시간을 찾은 건 그다음 일이며, 육아의 버거움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나는 그저 설영이가 무사히 태어나고, 설영이를 키울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행복하다. 그래서 ‘아이를 키우면 뱃속에 있을 때가 좋다는 걸 알게 된다’ 따위의 말을 듣고 싶지 않다.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 내가 뱉은 말은 나의 사고를 구성하는 현실이 된다. 그래서 그 말을 하는 순간 아이는 나를 괴롭히는 현실로서 작용한다. 모든 순간 사랑스러운 아이를 눈에 담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체력이 닳고 잠을 못 자 두통이 생기고 일상생활을 똑바로 할 수 없는 건 나의 ‘아이’ 때문이 아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 그러한 것이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인생이 힘들다고 인생이 나의 짐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인생과 인생을 살아가는 것을 구분해야 하는 것과 같이 아이와 아이를 키우는 일도 구분해야 한다.

 안 그래도 육아는 훈수 두는 사람이 많다. 선배랍시고 다들 한마디씩 던지는 와중에 좋은 이야기, 천사같은 나의 아이를 키우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본인이 육아 선배인 티를 굳이 내고 싶다면 육아 후배를 환대해 주자. 신생아일 때 나의 아이가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내 인생의 행복과 삶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너와 함께 육아의 세계에 들어와서 얼마나 좋은 지를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굳이 찾아와서 “이제 아이가 기어다니기 시작하면 정말 미쳐" 이런 말을 하지 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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