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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훈 Jun 29. 2024

아빠가

 2024년 1월 17일 오후 5시 19분, 3.19kg으로 너는 태어났다. 살면서 처음 느끼는 감정이었다. 그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너를 처음 만나던 순간을 나는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수술실 유리 벽 안에서 수술실 카트에 올려져 나를 향해 다가오던 너를, 그렇게 나는 39년을 기다려왔다. 초록색 천에 둘러싸여 하얀 얼룩이 묻은 채 간호사의 두드림에 큰 소리로 울던 너는 그렇게 나와 함께하게 되었다. 처음 아이를 만나면 기대했던 얼굴이 아니라서 실망한다고들 하던데, 너는 첫 만남부터 그렇게 예뻤다. 뽀얗고 동그란 얼굴에 가득한 볼을 갖고 옆으로 긴 눈과 코가 나를 닮은 듯도 싶고 엄마를 닮은 듯도 싶었다. 너를 너무나 만나고 싶었던 나와, 엄마를 걱정하는 내가 함께 있어 나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다. 그래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다. 너를 보고 있어도 눈물이 났고, 엄마를 보고 있어도 눈물이 났다. 너는 잠시 얼굴을 보여주고는 다시 내 눈에서 사라졌다. 마취에서 깬 엄마도 그렇게 섧게 울었다. 네가 태어났는데 우리는 너를 오래 볼 수 없었다. 너는 보호를 받기 위해 빠르게 신생아실로 들어갔다. 엄마와 아빠는 너무나 어설픈 사람이라 너와 함께할 수 없었다. 그날은 그게 그렇게 슬펐다.

 너는 곧 간호사에게 안겨 다시 나에게 왔다. 너는 하얀 천에 싸여 깨끗해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간호사가 너의 손가락과 발가락, 팔과 다리, 몸과 등, 엉덩이 모든 부위를 보여주고 이상이 없다고 설명해 줬다. 사실 나는 그 설명을 들을 수 없었다. 눈앞에 있는 네가 너무 신기하고 너무 아름다워서 너를 보고 있기에도 마음이 벅찼다. 너를 보고 있으니 다시 눈물이 났다. 갑자기 우는 게 부끄러워 마음속으로 울고 있었는데 볼에 눈물이 흘렀다. 나는 많이 울고 많이 웃었다. 엄마가 너를 무척이나 보고 싶어 했다. 엄마는 수술을 해서 너를 이틀 넘게 보지 못했다. 엄마는 많이 아팠고, 몸을 회복해야 했다. 많이 아프고 움직일 수 없었다. 엄마도 무척이나 많이 울었다. 너를 볼 수 없어서 울고, 네가 태어남에 감사해서 울고, 너와 함께할 수 있음에 울고, 지금 너와 함께할 수 없어 울었다.

 나는 너의 첫 번째가 되고 싶었다. 엄마가 너를 품고 있던 순간에 아빠는 문득문득 엄마가 부러웠다. 나도 너를 품고 싶었다. 그렇게 내가 너를 위하고, 네가 세상에 태어나는 데 의미를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너의 모든 순간을 보고, 너의 모든 순간을 돕고, 모든 순간을 너와 함께하고 싶었다. 너를 낳고 너와 함께 있고 싶었다. 너를 위해 몸과 마음이 변하고 온전히 너를 위한 경험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빠는 그럴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나는 그게 너무 속상했다. 내가 너를 위해 변할 수 있는 몸이 없다는 것, 내 의지와 관계없이 변하는 게 없다는 것이 싫었다. 모든 것이 나의 의지에 달려있다는 게 속상했다. 의지가 없이도 저절로 몸이 변하는 신비를 체험하고 싶었다. 너를 돌보는 주체는 왜 엄마일 수밖에 없을까? 하루가 다르게 네가 자라는 시간에 함께 하고 싶었다. 네가 먹는 것과 자는 것, 너의 용변까지 모든 것을 내 눈에 담고 싶었다. 네가 온전히 엄마와 아빠를 의지하며 자라는 다시는 없을 순간들에 내가 많은 시간을 함께할 수 없음이 속상했다. 왜 나는 일을 하고 돈을 벌어야 할까? 왜 내 모든 순간이 너일 수 없을까?

 그래도 나는 매일 너를 만나러 간다. 일을 하는 중에도 네가 생각나고 네가 보고 싶다. 네가 태어나고 바꿔 놓은 프로필 사진이 며칠 지나니 또 오늘의 너와 달라 사진을 다시 바꾸기도 했다. 너를 만나고 너를 품에 안고 있으면 세상이 너와 함께 둥실 떠오른다. 그렇게 떠오른 세상에는 너와 나 그리고 엄마밖에 없다. 그 세상에는 모든 게 젖 냄새로 가득하다. 공기도 물도, 옷과 침대에서도 젖 냄새가 난다. 엄마에게서 너의 젖 냄새와 같은 젖 냄새가 난다. 세상에 그 냄새만 있으면 좋겠다. 오늘 집에서 빨래를 하는데 어제 입은 나의 옷에서 네 젖 냄새가 났다. 나의 모든 세상은 너의 젖 냄새뿐이다. 오늘의 너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오늘은 두 눈을 모두 뜬 채 나를 바라봐 줄까? 나에게서도 젖이 나오면 좋겠다. 그럼 나의 젖 냄새가 너에게 가득할 텐데.

 네가 세상에 오는 날은 아침부터 눈이 내렸다. 그렇게 내린 눈은 나의 세상을 모두 덮고 너만이 나에게 있게 해주었다. 그날 이후로 너와 엄마, 나 이렇게 세 명만이 존재한다. 그래서 너의 이름을 눈 설(눈), 꽃 영(榮)으로 지었다. 그날은 눈꽃 같은 네가 온통 가득했다. 너와 엄마의 이름은 마지막 한자가 같다. 나와 같은 성, 그리고 엄마 이름의 마지막이 같은 너는 이름처럼 눈꽃이고, 영예롭고, 영화로우며 무성하다.

 너의 모든 순간이 나일 필요는 없다. 다만 나의 모든 순간이 네가 되면 좋겠다. 설영아, 아빠는 이제 나의 신비인 아름다운 너를 만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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