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0.17
암투병 이야기를 쓰기 위해 싸이월드 다이어리에 있는 투병일기를 보고 있는데, 거기에 있는 거의 모든 글에 전 여자친구의 댓글이 달려있다. 그 친구 이야기도 여기에 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좀 많이 늦었지만 미안하고 잘 살았으면 좋겠다.
4월 18일부터 항암치료가 시작되었고, 세밀하게 약을 조절하는 기계가 항암제를 내 혈관으로 아주 천천히 넣고 있었다. 혈관을 통해 들어오는 역한 맛이 느껴지는 항암제를 보고 있자니 아주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의 나는 이미 수많은 검사로 체력이 떨어져 제대로 걷지 못하는 상태였다. 또한 나의 병실은 항상 엄마가 지키고 있었는데, 엄마는 나보다 더 슬퍼했고, 나보다 더 힘들어했으며, 나보다 더 많이 울었고, 나보다 더 많이 괴로워했다.
그런 엄마를 보며 나는 최대한 밝고 괜찮아 보이려고 노력했다. 사실 그 때문에 나의 투병생활이 더 힘들어진 것도 사실이나 나는 엄마를 이해할 수 있다. 얼마나 괴롭고 힘들었을까, 우리 엄마는 나와 함께 투병을 했고 나와 함께 괴로워했고 나 때문에 늙었다.
나 때문에 마음고생을 하고, 혼자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하고 혼자 밥을 차려 드시고 혼자서 주무신 우리 아버지도 나 때문에 늙었다. 그와 더불어 나 때문에 말없이 힘들어하며 매일 출근과 퇴근, 식사를 혼자서 하시는 아버지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그렇게 항암치료를 하면서 담당 교수가 아닌 경력이 짧은 의사들이 주치의로 배정되어 있었다. 담당 교수와의 면담시간은 항상 너무나 짧아 나는 나의 자세한 병의 진행 상황을 한 번도 듣지 못하여 주치의에게 병의 진행 상황을 설명해 달라고 여러 번 요청했으나 들어주지 않았다.
그렇게 담당 주치의에게 나의 병에 대한 설명을 해달라고 여러 번 요청한 끝에 설명을 들을 수 있었는데 아직도 똑똑히 기억하는 나의 첫 주치의는 바빠 보이는 발걸음과 말투, 표정으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미 전이가 되어서 3기고요, 치료는 어렵습니다. 여기 보시는 이렇게 다 전이된 거예요"
멍청하게 그 말을 듣고 있던 내가 다시 질문을 했다.
"그러면 완치는 될 수 있는 건가요?"
"완치는 될 수 없고요, 계속 가지고 사셔야 해요"
26살의 본인이 암 환자인지 깨닫게 된지 한 달이 된 내가 듣기에 그 말은 이 세상에서 더 할 수 없이 충격적이었다. 그렇게 충격을 받고 있는 나를 두고 담당 주치의는 다시 바쁜 발걸음을 재촉하며 떠나갔다.
눈물이 너무 많이 날 것 같아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없어서 잠시 병실을 떠나 복도를 지나가며 그렇게 서럽게 울었다.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그 장면은 나와 함께 충격을 받은 엄마가 내 뒤에 있었고, 우리 형과 형의 여자친구는 병실에서 주치의의 설명을 같이 듣기 위해 나오고 있었다.
그렇게 잊을 수 없는 항암치료의 밤이 나가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