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투병기

2015년 정기검진

by 한승훈

2015.04.02


내일은 정기검진으로 CT를 찍는 날이다. CT 촬영은 하는 날과 그 전날은 아무리 아닌 척을 하려 해도 가라앉게 된다. 환자들에게 CT 촬영이라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처음으로 병명의 진단을 받게 되는 것도 CT 촬영 후이고, 그 이후 치료 과정에서도 끊임없이 촬영하게 되는 것이 바로 이 CT 검사다. 이 검사의 결과에 따라서 환자들은 매우 기뻐하기도 하고 한없는 좌절에 빠지기도 한다.


치료가 더 짧아지기도 하고 더 길어지기도 하며 나의 생명이 얼마나 남았다. 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그러니까 환자들에게 CT 촬영은 시험과도 같은 것이다. 내 목숨을 담보로 한 시험


이러니 내가 마음이 편할 리가 있나 더군다나 완치 날짜라고 손목에다 타투까지 해놨는데 재발하면 어쩌지? 라는 걱정은 당연히 가지고 있다. 병원에 가는 것이 싫다. 병원에 가면 6년 전 그 당시의 사람들이 나를 보던 눈빛, 내 주변 사람들이 사라져가던 기억, 다음 치료로 병원에 오면 이미 사라지고 없는 함께 치료받던 사람들, 수도 없이, 끝도 없이 토하던 나의 위액들, 그리고 아물지 않는 상처들까지 이미 사라지고 없다고 생각했던 그 당시에 느꼈던 끝없는 좌절감과 분노, 실망감의 기억들이 스멀스멀 내 등을 타고 나를 위협한다.


이런 기분으로 오늘 하루를 보내고 퇴근하던 중 센터에 계시는 수녀님께서 나에게 “좋겠다.” 라는 말을 하셨다. 그 이야기의 문맥이 전혀 이해되지 않고 황당하기도 해서 "뭐가 좋다는 거예요?"라고 물어보았더니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었던 듯 농담인 척 "자기 몸 보고 얼마나 좋아"라고 말씀을 하시던데, 정황상 원래하려던 말은 내가 내일 CT 촬영으로 연차를 내서 쉬는 게 마냥 좋다는 이야기였던 것 같다. 그 이야기를 듣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나는 병원에 좋은 기억이 없다고, CT 찍는 게 뭐가 좋아서 그런 말을 하냐고, 살면서 평생 그런 이야기 나한테 한 사람은 수녀님 밖에 없다고 말을 하고 나왔다.


그런데 뭐, 이야기를 듣고도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그냥 별거 아닌 농담을 했다고 생각을 했나 보다. 나는 정말로 기분이 나쁜데...


타인이 나의 기분이 상하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야 당연하고 나의 이런 기분과 감정을 이해하기를 바라지 않는 것이 이미 오래되었지만 그래도 기분이 나쁜 것은 어쩔 수 없나보다.


내일은 그냥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검사가 끝나면 진심으로 나에게 수고했다고, 올해도 괜찮을 거라고 한마디씩만 해주면 정말 기쁠 것 같다. 그러한 바람을 가지는 것도 역시나 사치라는 생각을 한지도 역시 오래되었지만 말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에게 투병이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