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투병기

나에게 투병이란 무엇인가

by 한승훈

2015.09.14


나에게 투병은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 걸까? 완치된 다른 젊은 환자들을 마주친 적이 별로 없다 보니 다른 사람들이 어떨지 알 수가 없다.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생활을 하면서 잘 이야기를 하는지, 트라우마는 없는지, 괴로운 건 어떠한 것인지 정말 궁금한데 이야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일단 나는 나의 이야기를 적어보고자 한다.

나는 내가 아팠다는 사실을 잘 오픈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게 사실 나는 아팠다는 사실만 오픈하는 건 아니다. 사실 내 블로그를 보면 알겠지만 들어오자마자 내 사진이 있고, 글을 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나와 있고, 나이 직업, 어디서 일하는지, 어디에 사는지, 취미는 무엇인지 성격은 어떠한 지도 여기에 다 나와 있다. 오프라인 친구들보다 내 블로그를 쭉 보는 사람들이 나를 더 잘 알 정도라고 할까

나는 온라인에서 알다 실제로 만난 사람들이 몇 있는데, 그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온라인이나 블로그에서 나와 오프라인에서의 나는 차이가 거의 없다고 한다.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감추거나 꾸미거나 하는 모습이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내가 스스로 거리낄게 없는 사람이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내 블로그를 와서 글을 봐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많이 한다. 그리고 오프라인에서의 나도 역시 당연히 물어보는 것만 대답하겠지만 누군가 나에 대해 물어보면 가능한 모두 알려주려고 한다.

그런데 이게 크게 아팠던 사실을 오픈하는 건 사실 다른 문제이지 않을까? (심지어 나는 직장을 잡기 위한 자기소개서에도 모두 나의 투병 사실을 작성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가진 불리한 부분을 감추고 싶어 한다. 나도 대부분을 오픈하는 편이긴 하지만 정말 감추고 싶은 부분들, 그런 밑바닥 같은 부분들은 공개하지 않는다. 공개를 한다고 해도 한 명,, 정말 딱 한 명뿐이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내가 투병을 하고 스스로 극복해냈다는 것을 당당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투병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보통은 그 이야기를 듣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 나 자신이 어떠한 이유에서든 투병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가볍게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도 보통은 상대방에게 있는 불행한 일이 자신에게 다가올 때 어떠한 액션을 취해야 하는지를 잘 알지 못하니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사회에서도 내가 아팠던 사실을 이야기하는 건 당연히 불리하게 작용할 때가 많다.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더 건강한 사람을 선호할 것이고, 크게 아픈 적이 있는 사람보다는 더 건강한 사람을 사랑하고 싶을 것이다. 여자의 부모들도 당연히 건강한 사람을 더 좋아하겠지, 내가 앞으로 결혼을 할지 못할지 모르겠지만 만약 결혼을 한다고 하면 당연히 상대의 부모가 반대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나는 굳이 왜 아팠던 사실을 공개하고,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나의 투병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주기를 바라며 심지어 손목에 타투까지 한 걸까? 전 여자친구가 이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오빠는 아직 아팠던 것을 극복하지 못한 것 같다. 그에 상처가 많이 남아있는 것 같다는 말을 했었다.

그렇다 나는 아직 나의 상처를 직면할 자신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사람들에게 호소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거 봐요 내가 이렇게 힘들었어요. 나의 괴로움을 알아줄 사람 있어요?" 이렇게 나는 비겁하고 약한 존재이다 그냥 사랑받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아팠을 때의 기억은 사실 나에게 좋게 남지 않은 것이 맞을 테니까

하지만 투병으로 인하여 인격적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또한 사실이다. 나는 그 일들을 겪으면서 정말 많은 것들을 깨달았고 세상을 관조하는 법을 알았으며, 사물에 숨겨진 의미나 뜻을 알고 그것을 내 것으로 습득하는 방법도 찾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많은 상념을 하게 되면서 어떻게 해야 나 자신이 더 성숙해질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고 고민이 투영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이것도 전 여자친구가 해준 말인데. 나는 오빠가 아프기 전이라면 만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했었다. (물론 그 친구를 만난 게 잘한 건지 못한 건지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는 제외한다.)

결국 나는 투병을 겪고 난 후의 내 모습을 많이 사랑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사람들이 나를 많이 사랑해주기를 바라고 있기도 하다. 투병은 나에게 많은 것을 잃게 하고, 앞으로 잃을 것도 더 있어 보이지만 그만큼의, 아니면 그보다 더 많은 '나아짐'을 준 것 같기도 하다.

이제 나는 투병이라는 저주를 조금 떼어버릴 수 있을 것 같다. 시간이 더 난 후 나는 나의 투병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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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거의 처음으로 쓴 글이라 봐도 무방한 나의 괴로움이 섞인 암투병기를 처음으로 다시 읽어보았다. 재미있는 사실은 지금은 투병 사실을 이야기 하는 것도,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것도, 내가 이 글을 읽는 것도 아무렇지 않다는 데 있다. 이는 더 이상 나에게 약점도, 단점도, 괴로움도, 강점도, 더 나은 사람이 되는 발판도 되지 않고 있으며 그저 내가 겪었던 단순한 경험으로만 존재하게 되었다. 나는 그래도 더 나은 방향으로 변하고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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