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상념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승훈 Sep 23. 2016

7층 7시의 그녀들

2016.01.29


  저는 매일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납니다. 출근 준비를 하고 집에서 나오는 시간은 보통 6시 55분에서 7시 사이에요. 지하철을 타고 도착해서 문을 열고 들어가면 7시 55분에서 8시 정도가 되죠. 


  저희 집은 10층입니다. 매일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데, 한 달에 20일을 출근을 한다면 그중 15일 정도는 7층에서 멈춥니다. 그리고 한 여자가 탑니다. 저처럼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을 하는 사람이겠죠.


  근데 매일 같은 시간에 7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는 사람은 매일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녀들은 총 네 명입니다. 네 명이 돌아가며 매일 같은 시간에 저와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네 명 모두 지하철을 타러 뜁니다.


  이쯤 되면 저는 궁금증이 생깁니다. 7층 사람들은 모두 같은 시간에 출근을 하나? 이 네 여자들은 서로 아는 사이일까? 자매들인가? 아니 자매들이면 왜 같은 시간이 나오지? 그보다 왜 사람이 바뀌어도 매일 뛰는 거지? 출근을 하는 것 같기는 한데 어디에 출근을 하는 걸까? 저는 저의 이 궁금증을 해결하고 싶은데, 네 명 모두 인사할 타이밍을 놓쳐서 어느 누구에게도 물어보지 못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을 하고 집에 오는 길이었습니다. 7층의 여성 4인조 중 1명이 무거운 짐을 들고 고생을 하며 아파트 주위를 걷고 있었습니다. 저는 또 고민했습니다. 짐을 들어준다고 해도 될까?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아니에요 됐어요. 라고 하면 어쩌지, 매일 얼굴 보는데 정말 뻘쭘할 텐데... 고뇌의 시간을 가지던 도중 4인조 중 1명인 그분이 저에게 먼저 말을 걸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기요 제가 지금 이걸 들어야 돼서 그런데요, 이것 좀 같이 옮겨주실래요?" 


  그렇게 저는 네 명 중 한 명과 안면을 트게 되었습니다. 간단한 인사와 소개를 하고 일하는 지역 정도만 이야기를 나누고 대화를 마쳤습니다. "다음에 만나면 커피 한 잔 살게요"라는 의미 없는 인사를 남기고 그녀는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궁금한 것들은 물어보지 못 했습니다. 처음 인사하는데 네 명은 누구예요? 하고 물어볼 순 없잖아요.


  그 후로 저는 그녀를 만나지 못 했습니다. 대신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다른 사람들만 오게 되었죠. "그분은 이직을 하셨나 보다. 아쉽네." 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오늘 아침 출근시간에 저는 평소보다 2분 정도 늦었습니다. 사실 저는 8시 40분까지만 도착하면 되는 터라 별로 상관없거든요. 그리고 엘리베이터는 7층에서 멈췄습니다. 오늘은 누가 탈까? 라며 기대 아닌 기대를 하던 도중 오늘의 탑승객은 그때 짐을 옮겨드린 그분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인사를 하고 출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녀는 신기하게도 제가 출근하는 곳 (교대역)을 아직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잊어버렸거든요) 늦지 않았냐 어쩌냐, 어디에서 타는 게 환승하는데 편하냐, 우리는 정말 여기서 잠만 잔다. 아무것도 안 한다,라는 이야기를 듣던 도중 그분이 먼저 "부모님이랑 같이 사시나 봐요"라는 질문을 하셔서 저도 물어보았습니다. 자취하시냐고! 그랬더니 "저희는 넷이서 같이 살아요, 다들 출근시간이 달라서 얼굴 보기도 어렵고 직장 동료들이에요" 라고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그래요 그녀들 네 명은 같은 직장을 다니면서 회사에서 얻어준 아파트에 함께 자취하는 동거인들이었던 겁니다. 사실 이렇게 생각을 하는 게 자연스러운데, 제가 그러한 것을 본 적이 없으니 거기까지 생각이 닿지 못 했던 거죠. 한가지 궁금증을 해결한 저는 무슨 일을 하시냐고도 물어보았습니다. 잠시 망설이던 그녀는 은행에서 근무를 한다고 답을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두 가지의 궁금증을 해결하고 각자 지하철을 타기 위해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은행에 근무하는데 왜 다 출근시간이 다르죠? 그럴 수도 있나요? 왜지? 삼교대 근무하는 은행이 있나? 삼교대가 아니라면 왜 돌아가면서 출근하는 거지? 저는 이 궁금증도 해결할 거예요. 다음에 만나면 명함을 주고 따러 커피 마실 시간을 만들어야겠어요. 저는 여전히 그녀들이 궁금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익숙하지만 새로운 사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