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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너 Oct 26. 2016

시스템사회의 이모저모

일본 여행에서 본 것들.

일본에 대해 경험과 지식이 풍부한 분들이 많다. 평소 관심도 없다가 고작 이박삼일 구경하고 와서 일본이 어떻더라 말하는거 자체가 우스운 일이라는 거 잘 안다. 비웃으셔도 좋다. 그래도 내가 느낀거 그냥 쓰겠다.


태어나 처음으로 지진을 체험했다. 마침 우동을 먹던 중이었는데 무척 불쾌한 느낌이었다. 우당탕탕이나 우지끈뚝딱은 아니었지만 지구가 나를 무중력 공간으로 슬며시 밀어내는 그런 느낌이었다. 갑자기 핸드폰에 알수 없는 일본어가 뜨면서 싸이렌이 울렸다. 관광객 폰으로도 비상경보가 울려오나 싶어 확인해보니 동행인의 폰에도 알림이 울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삼분쯤 지나고 나서 돗토리현에 강도 6.3의 지진 소식이 언론에 떴다. 지진이 나고 몇시간이 지나서야 지진경보가 발동되는, 그마저도 관계부처 홈페이지가 마비되어 오히려 더 큰 혼란을 초래하는 우리나라의 경우와 너무 달랐다. 그 짧은 시간 별별 생각이 다 떠올랐으나 먹던 우동그릇을 물리지는 않았다. 식당 안에 있던 누구도 그러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주 겪는 일이라서일지도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 일본인들은 지진에 대한 단계별 대응요령을 숙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거대한 시스템 사회라는 일본의 일면을 지진경험으로 처음 느낀셈이다.


지나고 생각해보니 일본이 자잘하고도 촘촘한 시스템에 의해 돌아가는 사회라는 건 파출소에서 먼저 느낀 것 같다. 첫날 게스트하우스를 찾지 못해 헤매던 중에 빈 파출소를 발견했다. 교번이라 적힌 파출소에 가보니 아무도 없었다. 우리로 따지면 치안센터 같은 곳으로 문이 열려있었는데 기척이 없었다. 포기하고 나오려는데 문 옆으로 작은 폐쇄회로 카메라가 보였고 카메라 밑에 달린 작은 버튼을 누르자 일본 여성의 안내음성이 흘러나왔다. 일본어를 못하는 나로써는 할수 없이 짧은 영어로 도움을 요청하였는데 일분도 지나지 않아 스쿠터를 몰고 영어전담(정확히는 '영어 가능'이라는 표시를 달고 있는) 경찰관이 도착했다. 커다란 지도책 두권을 들고.. 물론 전담이라고 해봐야 그 친구의 영어실력이나 나나 크게 다를게 없을만큼 만족스럽진 않았지만 출동 시스템 하나만큼은 나무랄데가 없었다. 일본 경찰이 안내해준 곳을가 보았으나 숙소를 찾지 못해 삼십분 정도 더 고생을 해야 했다. 나중에 자력으로 찾고 나서야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내심 이 친구가 우리를 숙소 앞까지 안내해주지 않을까 기대를 했었나보다. 그러나 그들의 매뉴얼이 딱 거기까지였던것 같다. 우리 경찰 같았으면 숙소 앞까지 안내해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에 대한 세부 매뉴얼이 없기 때문에 숙소 앞까지 안내를 해주지 않았을수도 있다.  매뉴얼이라는게 그런것 같다. 합리적인 선이 어디까지인지 정해놓고 철저하게 지키는 것. 그리고 선을 넘어서까지 일을 벌이지 않는 것. 

사실 파출소라고 되어 있는 곳에서 상주하는 경찰관을 본 적은 없다. 좁은 지구대에서 피의자와 민원인 경찰관이 한데 섞여 지지고 볶는 풍경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파출소에 경찰관 한명 없다는 건 좀 이상했다. 아무래도 치안보다는 봉사에 중점을 두는 지역경찰이니 신속 출동체계만 갖추어놓고 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방편인 듯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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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대비와 치안 같은 사회기반 영역 뿐 아니라 노동여건 같은 경제 영역에서도 이들의 시스템이 얼마나 합리적이고 잘 정비되어 있는지느낄수 있었다. 튀김음식을 파는 식당의 화장실에 붙은 구인광고였는데 일본어를 못하는 내가 한자로만 대충 봐도 시급 950엔에 22시 이후 야간에는 1,188엔을 준다는 내용임을 알수 있었다. 그 밑에 깨알같이 교통비, 제복, 식사비 등의 내용도 눈에 들어왔다. 950엔이면 우리돈으로 1만원이 조금 넘는 돈이다. 야간으로 치면 1만3천원에 가깝다. 주야 공휴일 할 것 없이 한 시간에 6천원 남짓한 시급으로 버티는 우리 청년들과 비교할 수 없는 처우다. 야간수당도 예산의 한도내에서 지급받는 우리 경찰관의 수당보다 오히려 합리적인 셈이다. 일본에서 담배 한갑이 450엔 정도(우리돈 5천원)이고 수제맥주 한잔이 700엔 정도(우리돈 8천원)니 우리보다 물가가 엄청 더 높다고 볼수 없다. 나야 정규직으로 따박따박 월급받는 입장이지만 비정규직 처우에 대해서도 정확하고 합리적인 기준을 정해놓은 이들이 부러웠다.

동행한 교수님 한분이 시스템 사회가 반드시 좋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의 경직성을 초래할 수 있다는 취지의 말씀도 하셨다. 그럼에도 우리사회는 이 기본적인 시스템조차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수는 없었다. 그때 그때마다 임기응변으로 대처하고 상상하지 못할 일들이 벌어지고 수습하느라 전력을 쏟는 다이내믹 코리아도 좋지만 이제 좀 차분하고 촘촘하게 국가의 기본을 만들때가 아닐까. 이게 꼭 일본 따라하자는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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