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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너 Jun 24. 2018

아버지, 세상을 보여준 사람

아이와 탄천을 자주 걸었다. 딱히 갈 곳이 없던 서울 인근의 도시였고, 축구공 하나를 들고 탄천길 산책에 나서면 다른 놀이가 필요 없을 정도로 충만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아이는 축구를 좋아했다. 개발에 가까운 나와 달리 초등학교 저학년생 답지 않은 발 재간을 보여줬다.


어느 날, 아이와 축구를 하다가 탄천에 공을 빠뜨렸다. 황급히 따라갔지만 물길 속으로 빨려 들어간 공은 제법 빠른 속도로 저 만치 멀어져 갔다.


어두운 밤이었고 아이는 아쉬움에 발을 동동 굴렀다. 월드컵 4강 기념 축구공이라 아까운 마음이 드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달래는 수밖에 없었다. 멀어져가는 공을 바라보며 탄천변 벤치에 앉아 아이에게 물었다.


"아들아. 공이 개천에 빠지면 어디로 갈까?"


울먹이다 말고 아이가 젖은 눈으로 답했다.


"바다로 가겠지?"


"맞아. 탄천은 한강을 지나 서해바다로 이어지니까 아마도 공은 몇 년 후에 태평양을 둥둥 떠다닐거야. 지금까지는 네 공이었지만 이제 공은 네 것이 아니지. 공은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 싶었나봐. 물론 가는 길에 너덜너덜 찢어질 수도 있고 색도 바래겠지만 공이 완전히 세상에서 사라지는 건 아니란다. 지금 너의 눈 앞에서 사라질 뿐이지. 언젠간 다 그렇게 멀어지는거야."


아이는 멀어져 가는 공을 바라보며 눈물을 훔쳐냈다.


지금도 아이는 가끔 그때를 회상한다. 태평양 한가운데를 유유히 떠다니는 공을 생각하면 뭔가 자신이 세상과 연결된 느낌을 받는 것 같다고 했다.


아마 아이에겐 자신이 태어나 자란 자신의 동네를 벗어나 다른 세상을 떠올린 첫 번째 경험이었을 것이다. 비록 아까운 공 하나를 잃었지만, 그로 인해 아이가 이별을 배우고 더 넓은 세상을 체감할 수 있었다면 나쁘지 않은 투자였다고 생각한다.


아버지의 역할은 그런 것 같다. 매일 끼고 챙겨주지 못해도 아이를 위해 자신의 어깨를 내어주는 것. 어깨를 밟고 올라간 아이가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것.


나에게도 그런 기억이 있다.


아버지는 늘 자는 날 깨워 산에 데려가셨다. 유달리 약하고 마음도 여렸던 아들을 '남자답게' 키우고 싶었던 아버지 마음을 이제 막 국민학교를 입학한 소년이 알 리 없었다.


싫은 내색을 하면 아버지가 서운해하실까봐 티도 내지 못했다. 가끔 깊이 잠 든 척도 해보았지만 통할 리 없었다. 주말에도 거의 직장에 나가셨던 아버지는 나와 함께 할 수 있는 유일한 주말 아침 시간을 등산으로 보내려했던 것 같다.


잠이 덜깬 눈을 비비며 부지런히 아버지 걸음을 쫒아가다보면 어느새 서울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중턱에 다다르곤 했다.


등산을 하며 아버지는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떡갈나무니 아카시아니 하는 나무의 이름과 서울을 둘러싼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 등의 이름도 그때 배웠다.


아버지는 항상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가르침을 주셨다. 어린 아이가 이해하기 다소 추상적인 단어의 의미를 묻곤 한참 동안 나의 대답을 경청하신 후에 설명을 하는 방식이었다. 이를테면, '책임감'이나 '도덕' 같은 단어들이 아버지의 설명으로 인해 비로소 제 의미를 찾았다.


아버지는 어린 내가 지각할 수 있는 사물에서부터 멀리 손에 잡히지 않는 지점까지 폭 넓게 세상을 보여주셨다.

어제는 어머니의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온 식구가 한 자리에 모였다. 아버지는 말씀이 없으셨다. 잘 들리지 않아 보청기를 하신지 꽤 되셨지만 외출을 할 때면 끼고 있던 보청기를 빼놓으신다. 온갖 주변 소음이 한꺼번에 들려 정신이 없으시다는 이유다.


보청기를 뺀 아버지는 묵묵히 식사를 하시다가 손녀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시기도 하고 혼자 빙그레 웃기도 하셨다.


처음 청력에 문제가 생기셨을 때만해도 목소리가 커지시고 안내던 화도 자주 내셨지만 이젠 익숙해지신 것 같았다. 그런 아버지를 볼 때 마음이 좋지 않다.


가파른 등산로를 앞장서 성큼성큼 걷다가 내 손을 잡아주던 사람. 나에게 꽃과 나무 이름을 알려준 사람. 더 큰 세상을 보여주기 위해 고개를 숙여 눈을 맞춰주던 사람. 그런 아버지가 이제 임무를 다 마친 사람처럼 가만히 앉아 소리 없이 웃기만 하신다.

안타까운 마음에 아버지의 거친 손을 잡아보았다. 공이 아이의 손을 떠나 물길 따라 멀어지던 장면과 그때 내가 아이에게 해준 말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공은 완전히 세상에서 사라지는 게 아니란다. 지금 너의 눈 앞에서 사라질 뿐이지. 언젠간 다 그렇게 멀어지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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