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너 Dec 04. 2019

날벌레의 죽음

귀에 작은 날벌레가 들어갔군요. 기름을 넣어 먼저 죽인 후에 석션으로 빨아내겠습니다. 머리에 두건을 쓴 의사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날벌레라니.


허공을 이리저리 날아다녀야 할 날벌레가 왜 이토록 작고 음습한 구멍에 파고든걸까. 더욱이 날벌레는 빛을 향하여 움직이는 습성이 있지 않은가. 삼일 전부터 귀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 그냥 귀지이겠거니 했던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원래 동양인들은 따로 귀지를 파내지 않아도 돼. 그냥 두면 알아서 빠져나올거야. 결벽증이야. 진짜.


랜턴으로 귓구멍을 들여다보던 아내 역시 심드렁했다. 하루종일 귀를 파내고 파내다가 고통을 참지 못해 아내의 무릎을 베고 누웠던 나는 아내의 타박이 야속했다. 타인의 고통에 무감한 사람들은 세계대전의 전범들만이 아니다. 아내의 무성의와 귀 안에서 들려오는 바스락거림이 불편하긴 했지만 할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병원이 문을 여는 월요일까지 이틀을 더 버텼다. 날벌레였다니.


그렇다면 그 좁은 구멍안에서 며칠을 살았단 말인가. 미물치곤 참으로 생존력이 강한 친구로군. 침대에 모로 누워 간호사가 귀에 기름을 들이붓는 동안 눈을 감고 생각한다.


생존을 향한 작은 몸짓이었겠구나. 출구를 찾지 못해 방황했을테지. 미로처럼 좁고 어두운 구멍 속에서 작고 투명한 날개를 펼치려 버리적거리는 녀석이그려졌다. 간호사의 당부대로 기름이 흘러내리지 않게 휴지로 귀를 막고 있자니 녀석의 마지막 몸부림이 온몸에 느껴졌다. 하긴 그냥 귀지였다면 이렇게 생동감있게 움직이지 않았겠지. 죽기 직전까지 살아보려 발버둥치는 작은 날벌레의 움직임이 점점 잦아들면서 세상은 이내 평온해졌다. 지난 삼일간 녀석은 그 안에서 나의 모든 것을 알아버렸겠구나. 내가 들었던 음악, 아내의 잔소리, 아이의 노랫소리까지. 삶은 덧없고 덧없는 것이리.


기름에 젖어 축 쳐진 날개를 매달고 석션에 빨려나온 티끌같은 날벌레의 마지막을 본다. 살아서는 나올 수 없었던 운명이었구나. 너에게 세상이란 그런 곳이었겠구나. 맘껏 날개를 펼쳐 날아보려해도 도처에 어둠만 가득한, 그래, 어쩌면 내가 살고 있는 이 곳도 누군가의 귓구멍 속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무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