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만 하다 시간이 가는, 아무일 없는 일상
아시다시피 도시락을 자주 먹었다. 근래의 일이다. 그것도 변화라면 변화지만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고작 도시락이라니.
헌 책방은 한 번 가고 그 뒤로 가지 못했다. 여섯권 파는 걸 시작으로 고령의 고소득 전업 작가가 되겠다는 야무진 꿈을 꾸었으나 그 때 번 칠천원도 흔적이 없다.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라지만 그 한걸음은 천리를 다 가고 난 후에야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매일 한 걸음을 떼다 주저 앉는, 이를테면 나 같은 인간에게는 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어쩌면 그건 기적같은 일인지도 모르겠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아침엔 항상 힙겹게 일어나야했다. 버스에서는 쏟아지는 잠에 취해 정신이 없었고 커피대신 물을 마셔보려 노력하였지만 그 작은 습관조차 바꾸지 못했다.
주말엔 늦도록 침대에서 뭉개다가 겨우 점심을 먹고 출근해서 주중에 하던 일을 계속 했다. 간간히 혼자 멍하니 쏘다니거나 옷구경을 다니기도 했다. 영화를 볼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내키지 않았다. 찬 바람이 부는 거리에서 돌연 버스비 한푼 없이 길을 잃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어떻게 집을 찾아갔더라.
무작정 걸었겠지.
걷다가 깨달았다. 무념으로 살고 있구나. 일하고 멍때리다가 밥먹고 일하고 또 잠들고. 가끔 지구 평면설이나 일루미나티 같은 이야기에 낄낄거리고. 기분이 좋아보이는 기아팬 부추겨서 소주나 얻어마신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가운데 사무실 의자에 기대 일하다 먹는 견과류의 텁텁한 맛이 이빨에 낀 땅콩 껍질처럼 남았을 뿐이다.
이젠 좀 빠져주였으면. 그럴 날이 오겠지. 치실에 딸려나온 땅콩껍질처럼 조금은 구차하게 조금은 애처롭게. 그래도 사무실에서 간식 먹는 맛에 버틴다. 요즘은 작은 재미에도 행복하다. 무념으로 살다보니. 이런 날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