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너 Dec 02. 2019

무념

일만 하다 시간이 가는, 아무일 없는 일상

아시다시피 도시락을 자주 먹었다. 근래의 일이다. 그것도 변화라면 변화지만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고작 도시락이라니.

헌 책방은 한 번 가고 그 뒤로 가지 못했다. 여섯권 파는 걸 시작으로 고령의 고소득 전업 작가가 되겠다는 야무진 꿈을 꾸었으나 그 때 번 칠천원도 흔적이 없다.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라지만 그 한걸음은 천리를 다 가고 난 후에야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매일 한 걸음을 떼다 주저 앉는, 이를테면 나 같은 인간에게는 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어쩌면 그건 기적같은 일인지도 모르겠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아침엔 항상 힙겹게 일어나야했다. 버스에서는 쏟아지는 잠에 취해 정신이 없었고 커피대신 물을 마셔보려 노력하였지만 그 작은 습관조차 바꾸지 못했다.

주말엔 늦도록 침대에서 뭉개다가 겨우 점심을 먹고 출근해서 주중에 하던 일을 계속 했다. 간간히 혼자 멍하니 쏘다니거나 옷구경을 다니기도 했다. 영화를 볼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내키지 않았다. 찬 바람이 부는 거리에서 돌연 버스비 한푼 없이 길을 잃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어떻게 집을 찾아갔더라.

무작정 걸었겠지.

걷다가 깨달았다. 무념으로 살고 있구나. 일하고 멍때리다가 밥먹고 일하고 또 잠들고. 가끔 지구 평면설이나 일루미나티 같은 이야기에 낄낄거리고. 기분이 좋아보이는 기아팬 부추겨서 소주나 얻어마신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가운데 사무실 의자에 기대 일하다 먹는 견과류의 텁텁한 맛이 이빨에 낀 땅콩 껍질처럼 남았을 뿐이다.

이젠 좀 빠져주였으면. 그럴 날이 오겠지. 치실에 딸려나온 땅콩껍질처럼 조금은 구차하게 조금은 애처롭게. 그래도 사무실에서 간식 먹는 맛에 버틴다. 요즘은 작은 재미에도 행복하다. 무념으로 살다보니. 이런 날들이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위장의 본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