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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너 Dec 28. 2019

취미도 연습이 필요해

주말에만 그리는 초보작가의 그림일기 - 4

사실 미술학원을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전에도 그림을 아예 안 그린 것은 아닙니다. 버릇처럼 빈 종이만 있으면 알듯 모를듯한 낙서를 했죠. 회의시간에 앞에서 말하고 있는 사람을 그리는 버릇 때문에 지난 업무노트를 보면 같이 근무한 사람들의 얼굴이 꽤 많이 남아 있습니다. 어쩌면 그림이라는 건 긴장을 풀기위해 제가 본능적으로 즐겼던 일종의 놀이였는지도 모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미술학원은 그 놀이를 조금더 체계적으로 할수 있게 해준 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첫번째 수업 이후에 지칠때 까지, 적어도 일이년 이상은 계속 학원을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런데 생각과 달리 미술학원과의 인연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일주일 만에 찾아온 두번째 시간부터 저는 벽에 부딪혔습니다. 무엇을 그려야 하나. 


사실 막막했습니다. 첫번째 미술학원 수업이 끝나고 행복했던 일주일의 시간이 무색하게 느껴졌습니다. 학원 입구에 붙어있던 그림 중에 인상적이었던 그림 한편을 가리키며 저런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고 했더니 선생님이 도록 한권을 가져다 주셨습니다. 어반스케치라고 해야 하나요. 유럽 도시의 집과 풍경을 담은 외국 작가의 그림이었습니다. 풍경을 꼼꼼하게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그림이 아니라 전체적인 특징과 분위기를 잡아내 독창적으로 재해석한 그림이었습니다. 저는 무작정 한번 따라해보겠노라 하곤 그림을 흉내내 보았습니다. 펜으로 기본을 잡은 후에 채색을 해야 완성이 되는 그림인지라 꽤 어려웠습니다. 무엇보다 사물을 자기 방식으로 해석하는 능력이 필요한 그림인데 저에겐 그런 능력이 부족하다는 걸 느꼈거든요. 


펜화는 연필과 달리 잦은 수정이 어렵습니다. 한번 선을 긋더라도 그 두께와 강도에 따라 느낌이 확 달라보였습니다. 몇번을 새로고쳐가며 윤곽을 잡다가 보니 유튜브 같은데서 풍경을 쓱쓱 그려나가던 작가들의 역량이 어느정도의 훈련끝에 나온 능력인지 알겠더군요. 간신히 한 장을 그려냈습니다. 


미술학원 두번째 시간에 그린 펜화. 원작을 따라 그린 그림이라 내 그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그림이다. 

그림을 다 그리고 나서 선생님에게 이건 내 그림 같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똑같이 따라그리는 건 내가 원하던 수업이 아니었거든요. 선생님은 똑같이 따라그리는 것이 그림의 가장 기초단계에서 필요한 연습이 될수 있다고 했습니다. 자기의 그림체를 가지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그림체를 많이 따라해보는게 중요하다는 이야기였죠. 

두번째 펜화 모작. 같은 작가의 그림 같았다. 나에겐 첫번째 모작보다는 이 그림이 더 맘에 들었다. 세부묘사가 필요한 창문이나 나뭇잎 등을 내 마음대로 그렸거든. 


두 번의 펜화 모작 수업을 통해 내가 느낀 건 사물을 보고 해석해내는 나만의 능력이 필요하다는 사실, 그리고 그 능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결국 취미라고 해도 노력없이는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걸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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